창세기 039: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창 24: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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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39: 합력하여 선을 이루다(창 24:1-67)
인간의 발명품 가운데 컴퓨터만큼 대단한 작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컴퓨터는 문명의 발전을 가속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묶고 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자신이 가진 정보를 기꺼이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하려들지 않는다면 인간문명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 자신은 컴퓨터를 통해서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고, 또 남에게 그 이익을 최대한 나눠주고 있습니다. 이 일에 수많은 시간과 상당량의 돈을 투자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인터넷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수를 셀 수없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전 세계에 흩어진 사람들이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서 합력하여 인류문명이란 공동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컴퓨터에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라 부르는 중앙처리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중앙처리시스템이 컴퓨터에 연결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고도의 수학과 논리연산을 수행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는 신경계통이 CPU 곧 중앙처리시스템의 일을 합니다. 신경계통은 몸의 각 기관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외부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체내의 모든 시스템의 활동과 기능을 조종하고 제어하여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창세기 24장에서 보게 되는 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아름다운 만남과 부부로써의 새 출발은 하나님의 섭리와 여러 등장인물들이 합력하여 일궈낸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을 보면, 먼저 아브라함이 있고요. 그의 늙은 종 엘리에셀과 이삭 그리고 리브가와 그의 오라버니 라반이 있습니다. 이들이 합력하여 일궈낸 일은 이삭과 리브가를 부부로 엮는 혼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도록 배후에서 조종하고 통제하는 중앙처리시스템과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창세기 24장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통솔하시고 지휘하시는 섭리를 보셨으면 합니다.
섭리란 우리 신앙인들이 갖고 사는 역사관입니다. 이 우주의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와 같이 이름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까지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관여하신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배후에 계시면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창세기 24장의 혼사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따라 이뤄진 일이란 사실을 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고백이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범사에 복을 주신 분’(1절)과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3절)으로 고백하였고, 이 하나님께서 자기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먼 약속의 땅으로 보내셨고, 이제 그 땅을 자기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이 당신의 천사를 자신의 늙은 종 엘리에셀의 앞서 고향으로 보내시고, 거기서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를 간택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7절)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습니다.
[7절]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혼사가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40절의 엘리에셀의 고백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에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믿음 가운데 가장 귀한 믿음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굳세게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성취될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 배후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개입하시고 관여하시어 일의 결말을 궁극적으로 형통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활동하시면서 우리들의 대소사를 궁극적으로 형통케 하시어 좋은 결말을 지어주십니다. 이 믿음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합니다.
둘째, 엘리에셀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이삭의 배우자를 순적히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12-14절).
[12-14절]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엘리에셀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가장 분명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고서는 드릴 수 없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큰일과 작은 일에 모두 미치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진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하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26-27,48절).
[26-27절]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친척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48절]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친척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엘리에셀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가 기도를 들어주심과 섭리하심에 대해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개입과 관여를 인정하며, 그분의 도우심으로 모든 일이 형통케 되었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만한 기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런 신앙고백적인 기도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라반과 브두엘의 신앙고백입니다.
라반과 브두엘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신앙이 있었는가라는 의혹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라반에게는 ‘드라빔’이라 부르는 일종의 우상이 있었습니다(19,30절). 그러나 라반은 야곱과 계약을 맺고 난 다음 행한 기도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고향에서 얻으려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을 포함해서 그의 친인척들의 신앙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야훼 하나님의 신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50-51절에서 라반과 브두엘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의심치 않고 인정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50-51절]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이상에서 우리는 이삭의 혼사에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등장인물들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땅의 모든 일에 미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기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하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며, 이뤄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된 것임을 알아서 그분에게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알아서 결정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결정하신 일들은 숙명처럼 반드시 이뤄지고 맙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결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나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와 같이 인간의 결단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성취되는 데는 하나님의 몫의 일과 인간의 몫의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를 세우시려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그 일을 성취할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아름다운 만남은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하심에 아브라함과 엘리에셀과 리브가와 라반과 브두엘이 모두 믿음으로 받아드렸고 인도하심에 순종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혼사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에 맡기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겸손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을 받들게 된 엘리에셀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지혜롭고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인을 맞이할 이삭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리브가를 맞이했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리브가를 맞이했습니다. 리브가 역시 친절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엘리에셀에게 보인 친절은 수고와 희생을 감수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리브가는 그가 베푼 친절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라반과 브두엘 역시 믿음으로 모든 일을 받아드렸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의 혼사가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와 신앙인들의 기도와 겸손과 수고로 이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이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의 발명품 가운데 컴퓨터만큼 대단한 작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컴퓨터는 문명의 발전을 가속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묶고 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자신이 가진 정보를 기꺼이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하려들지 않는다면 인간문명의 발전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제 자신은 컴퓨터를 통해서 많은 이익을 얻기도 하고, 또 남에게 그 이익을 최대한 나눠주고 있습니다. 이 일에 수많은 시간과 상당량의 돈을 투자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인터넷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수를 셀 수없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전 세계에 흩어진 사람들이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서 합력하여 인류문명이란 공동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컴퓨터에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라 부르는 중앙처리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중앙처리시스템이 컴퓨터에 연결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고도의 수학과 논리연산을 수행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서는 신경계통이 CPU 곧 중앙처리시스템의 일을 합니다. 신경계통은 몸의 각 기관들을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외부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체내의 모든 시스템의 활동과 기능을 조종하고 제어하여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창세기 24장에서 보게 되는 것이 바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장면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아름다운 만남과 부부로써의 새 출발은 하나님의 섭리와 여러 등장인물들이 합력하여 일궈낸 작품입니다. 등장인물들을 보면, 먼저 아브라함이 있고요. 그의 늙은 종 엘리에셀과 이삭 그리고 리브가와 그의 오라버니 라반이 있습니다. 이들이 합력하여 일궈낸 일은 이삭과 리브가를 부부로 엮는 혼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배후에서 조종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도록 배후에서 조종하고 통제하는 중앙처리시스템과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이 창세기 24장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통솔하시고 지휘하시는 섭리를 보셨으면 합니다.
섭리란 우리 신앙인들이 갖고 사는 역사관입니다. 이 우주의 역사는 물론이고, 우리와 같이 이름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크고 작은 일에 있어서까지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관여하신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의 배후에 계시면서 우리들의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창세기 24장의 혼사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따라 이뤄진 일이란 사실을 보셨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대한 고백이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범사에 복을 주신 분’(1절)과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3절)으로 고백하였고, 이 하나님께서 자기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 먼 약속의 땅으로 보내셨고, 이제 그 땅을 자기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한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이 당신의 천사를 자신의 늙은 종 엘리에셀의 앞서 고향으로 보내시고, 거기서 엘리에셀이 이삭의 아내를 간택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7절)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었습니다.
[7절]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아브라함은 이삭의 혼사가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40절의 엘리에셀의 고백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에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믿음 가운데 가장 귀한 믿음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굳세게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성취될 것이라는 기대와 신뢰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부르심을 입은 자들을 위해서 배후에서 이런저런 모양으로 개입하시고 관여하시어 일의 결말을 궁극적으로 형통케 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천지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활동하시면서 우리들의 대소사를 궁극적으로 형통케 하시어 좋은 결말을 지어주십니다. 이 믿음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합니다.
둘째, 엘리에셀의 신앙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의 늙은 종 엘리에셀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이삭의 배우자를 순적히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12-14절).
[12-14절]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엘리에셀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가장 분명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부정하고서는 드릴 수 없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큰일과 작은 일에 모두 미치기 때문에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경우에서든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은 자신의 기도가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진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송하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26-27,48절).
[26-27절]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친척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48절]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친척의 딸을 그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엘리에셀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가 기도를 들어주심과 섭리하심에 대해서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는 것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의 개입과 관여를 인정하며, 그분의 도우심으로 모든 일이 형통케 되었음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만한 기도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이런 신앙고백적인 기도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라반과 브두엘의 신앙고백입니다.
라반과 브두엘에게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신앙이 있었는가라는 의혹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라반에게는 ‘드라빔’이라 부르는 일종의 우상이 있었습니다(19,30절). 그러나 라반은 야곱과 계약을 맺고 난 다음 행한 기도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고향에서 얻으려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 자신을 포함해서 그의 친인척들의 신앙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야훼 하나님의 신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50-51절에서 라반과 브두엘은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의심치 않고 인정하고 있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50-51절]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이상에서 우리는 이삭의 혼사에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등장인물들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땅의 모든 일에 미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기도를 통해 이뤄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하심을 인정하고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며, 이뤄진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된 것임을 알아서 그분에게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알아서 결정하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합력하여 선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결정하신 일들은 숙명처럼 반드시 이뤄지고 맙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결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나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와 같이 인간의 결단과 협력을 필요로 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성취되는 데는 하나님의 몫의 일과 인간의 몫의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를 세우시려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그 일을 성취할 적임자였기 때문입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아름다운 만남은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하심에 아브라함과 엘리에셀과 리브가와 라반과 브두엘이 모두 믿음으로 받아드렸고 인도하심에 순종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혼사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에 맡기면서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겸손하게 준비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을 받들게 된 엘리에셀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충성스러운 종이었습니다. 지혜롭고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부인을 맞이할 이삭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리브가를 맞이했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리브가를 맞이했습니다. 리브가 역시 친절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가 엘리에셀에게 보인 친절은 수고와 희생을 감수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리브가는 그가 베푼 친절에 대한 보상을 톡톡히 받았습니다. 라반과 브두엘 역시 믿음으로 모든 일을 받아드렸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이삭과 리브가의 혼사가 하나님의 개입과 관여와 신앙인들의 기도와 겸손과 수고로 이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합력하여 선이 이뤄진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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