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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34: 사라를 웃게 만든 하나님(창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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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610 2005.07.01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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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34: 사라를 웃게 만든 하나님(창 21:1-7)

창세기 21장 1-7절은 사라를 웃게 만든 하나님의 사랑이 물씬 풍겨집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라는 웃음을 멈출 수 없어서 연신 싱글벙글 입니다. 오죽하면 자식의 이름이 ‘웃음’이란 뜻의 이삭이겠습니까? 사라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어느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일이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일어났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은 지 25년 만에 이뤄진 축복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사라의 나이 90세 때, 자식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제로인 상태에서 얻어진 아들이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고, 죽음에서의 부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부활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였습니다. 그들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표적이었을 뿐 아니라, 사라의 몸에서 난 외아들이었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사라가 누렸던 충만한 기쁨, 봇물처럼 터져 나온 웃음, 억제하기 힘들었던 사라의 그 큰 기쁨이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라의 이 웃음은 사라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다 날려버린 치유의 웃음입니다. 사라의 웃음에서 고통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물씬 풍겨집니다.
사라의 잉태는 1절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사라를 권고하신 때문입니다. 여기서 “권고 하셨고”라는 말은 원어로 ‘파카드’이며 ‘그가 방문했다’란 뜻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위하여 방문하거나(암 3:14) 은혜를 주시기 위하여 방문하는 것에(렘 50:21, 룻 1:6) 사용됩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사라를 찾아와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파카드’란 말은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관심과 보호의 뜻을 함축하는 말이며, 특별히 선택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는 데에 쓰였습니다. 사라에게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은총이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미쁘시다는 뜻은 신실하다는 것입니다. 신실하다는 뜻은 약속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것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신대로 사라의 수태를 위해서 찾아오셨고, 이삭을 임신케 하셨습니다. 이것을 1절에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다”고 적고 있습니다.
사라의 믿음도 큰 몫을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1절에 보면,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라는 폐경 된지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불임여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뤄질 것을 믿었고,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위해서 사라의 태를 여셨고, 사라의 믿음 때문에도 그리 하셨습니다. 믿음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말씀입니다.
본문 2절 말씀은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주실 때에는 그 약속이 이뤄질 시기를 알고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므로 그 약속이 이뤄질 시기를 정확하게 알고 계실뿐 아니라, 그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시기 곧 하나님이 알고 계신 시기를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카이로스’란 ‘정해진 시간’이란 뜻입니다. 인간의 편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길 바라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이 이뤄질 분명한 시기가 정해져 있습니다. 스페인 속담에 “하나님께서 비록 지체하실지라도 결코 잊지는 않으신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응답을 조급하게 기다리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정한 시간이 되어야 비로소 이뤄집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약속은 25년이 지난 후에야 이뤄졌습니다. 그 긴 시간에 있었을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 중의 인내가 어떠했을까를 능히 짐작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에 돼서야 여명이 밝아옵니다. 겨우살이가 아무리 힘들어도 봄이 돼서야 새싹을 낼 수 있고, 꽃을 피워 뽐낼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에 뜸이 들어야 먹을 수 있고, 나무에 달린 감이 아무리 빨리 먹고 싶어도 때가 되어 여문 다음에야 그리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영양가가 많은 음식을 아무리 많이 먹여도 때가 되기 전에는 걸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사에는 다 때가 있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정해 놓은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습니다. 인간의 성급함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은 헛수고일 뿐, 하나님의 시간을 바꿔놓을 수 없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되, 겸손하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신실한 믿음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찾아와 약속하신 일들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웃게 만들어 주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게 만들어주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신실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3-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고, “이삭이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여기서도 돋보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뜻하던 일이 이뤄지게 되면, 쉽게 은공을 잊어버리고 배은망덕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명령대로 실천하였고,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노익장을 과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인한 것임을 확신하고 이삭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삭에게 행해진 할례는 그 아들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눈물을 웃음으로 바꿔주신 표적이라는 겸손에서 이뤄진 의식이었을 것입니다. 
 한자로 사람 ‘인’(人)자가 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인(人)’자는 앞으로 쓰러질 것 같은 남성을 상징하는 좌측의 부수와 그것을 힘겹게 받치고 있는 여성을 상징하는 우측의 부수로 이뤄져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성이 남성에 의지하여 사는 것 같고, 남성의 그늘아래 있는 것 같이 보여도, 잘 보면 여성이 남성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장막에 살면서 남편을 주인으로 모셨고 남편의 보호아래 산 것처럼 보여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브라함을 떠받쳐 준 것은 사라였습니다. 여자는 남자 없이 살 수 있어도 남자는 여자 없이 살 수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연약해 보여도 남성보다 더 강한 것이 여성입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동반자였고, 남편을 ‘주님’이라 부를 정도로 극진히 섬긴 현숙한 여성이었으며, 남편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남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두 번씩이나 이방 임금의 후궁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감수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녀와 함께 하셨고, 몸을 버리지 않고서도 남편도 살리고 재물도 얻곤 했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사라는 믿음의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믿음이었습니다. 사라는 후사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은 지 25년 만에야 비로소 아들을 얻었습니다. 과연 이런 긴 세월을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대망하며 인내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어 주십니다.
사라의 믿음은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그의 신앙고백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사라와 아브라함의 가정에 내려진 하나님의 축복은 이들 부부의 합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기적은 아브라함 혼자 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사라 혼자 잘해서 이뤄진 것도 아닙니다. 부부가 서로 믿고 사랑하고 존경한데서 이뤄진 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에 이뤄지는 이런 큰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의 가정에도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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