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31: 소돔성의 최후가 말해주는 역사적 교훈(창 19:1-29)
본문
창세기 031: 소돔성의 최후가 말해주는 역사적 교훈(창 19:1-29)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잔해들이 사해 남동지역에서 최근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의 현재 이름은 각각 밥 에드흐-드흐라(Bab edh-Dhra)와 누메이라(Numeira)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밥 에드흐-드흐라의 시신안치소 건물들의 지붕부분이 집중적으로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였는데, 지붕이 불에 탄 이유는 공중에서 떨어진 불덩어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곳의 토양이 아스팔트와 유사한 역청(bitumen)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역청은 다량의 유황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고고학자 프레더릭 클랩은 소돔성과 고모라성에 불비가 내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지진으로 인해 이곳의 역청 토양이 심한 압력을 받았고, 갈라진 토양의 틈을 통해 유황이 분출되었으며, 이때 분출된 유황이 대지 표면에서 불꽃에 점화되어 거대한 가스불덩어리로 소돔과 고모라를 덮쳤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주목할 것은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각판의 분기점에 고대 소돔과 고모라가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28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는 아브라함의 목격담이 나옵니다. 과학자들은 이 연기가 바로 유황가스를 강하게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옹기점 연기같이"라는 구절은 이 연기가 바로 지하토양이 거대한 압력으로 인해 갈라지면서 새어 나온 유황가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본문 창세기 19장 1-29절의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사람으로 변신한 두 천사를 영접한 롯은(1-3절), 하나님의 은총(16-22절)을 입고 구원을 받습니다. 롯의 생활이 경건했는지, 문란했는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범상치 아니한 두 나그네를 집안으로 영접하여 들여 대접하였으며, 소돔성민들이 집으로 달려와 완력을 쓰며, 위협공갈로써 나그네들을 집밖으로 끌어내 겁탈하려는 것을 몸으로 막았습니다. 롯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의 이 선행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돔성민들은 심히 패역하였으며(4-11절), 멸망당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받고서도 회개치 않았고(12-15절),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결국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뜨거운 불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23-29절).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노아의 때에 여덟 명밖에 구원받지 못했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성에서도 롯과 두 딸들밖에는 곧 세 사람밖에는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잘났다고하나 어리석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경고하심을 받고서도 회개치 아니함으로 다 멸망당하고 말았고, 주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때에 과연 몇 사람이나 구원에 이를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돔성의 멸망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예고하는 경고적인 성격을 띤다는데 있습니다. 또 소돔성의 멸망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장차 지옥의 불에서 받게 될 영벌에 대한 경고적인 성격을 띤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돔성 심판에서 나타난 무서운 장면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불바다의 모습이라는데 있습니다. 또한 소돔성의 멸망이야기는 먼 과거에 일어난 단지 지나가버린 역사적사건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모형이요 예표적인 사건이라는데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보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警戒)로 기록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말세를 만난 우리들은 소돔성 멸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거울삼고, 교훈삼아야 할 것입니다. 소돔성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소돔성과 고모라성의 심판사건은 신약성경에 세 차례나 인용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8-33절, 베드로후서 2장 6-9절, 유다서 1장 7절은 모두가 말세와 관련된 문맥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계시록에는 소돔성의 멸망을 암시하는 불과 유황과 연기로 표현된 인류에 미친 재앙이 여러 차례 쓰이고 있습니다.
계시록 9장 13-21절에는 일곱나팔심판 가운데 여섯 번째 나팔재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천사가 나팔을 불 때, 2억 마리의 군마와 기수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합니다. 2억 마리나 되는 이 군마들의 힘은 불과 연기와 유황을 뿜어내는 그 입과 또 꼬리에도 있는데,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서 이것으로 사람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상당히 암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나먼 과거에 있었던 소돔성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의 장면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던가를 말해줄 뿐 아니라,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갈 자들이 받게 될 지옥의 무시무시한 형벌을 연상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록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재앙을 눈으로 보고 들었거나 배운바가 있는 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손으로 행하는 악행들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잡신들을 섬기거나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록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들이 생생한 역사적 교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건들이 보여준 처참했던 멸망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문제이고, 둘째는 우상숭배 곧 음행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첫 번째 문제의 결과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계시록의 말씀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로 인해서 심판을 받아 멸망당했던 선배들의 전철을 여전하게 밟다가 당하게 될 더 무시무시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성이 멸망을 자초하게 된 가장 큰 문제는 음행문제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음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적인 음행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음행입니다. 창세기 19장 4절 이하에서 볼 수 있듯이 소돔성의 사람들은 성적으로 심히 타락하였습니다. 그들은 소돔성을 찾아온 잘생긴 남성으로 보이는 나그네들을 무차별 겁탈하려 하였습니다. 그런 악행에 참여한 자들이 4절에 보면, 노소를 무론하고 사방에서 모인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그 악명 높았던 육체적 음행보다 더 무서운 죄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영적인 음행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는 행위, 곧 하나님을 배반한 행위를 성경은 치명적인 음란행위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이런 자들의 운명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것”(계 14:10)이며,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 19:20), 거기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것”(계 20:10)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제정치군사경제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할 때입니다. 그래서인가요? 태조왕건, 명성왕후, 영웅시대, 해신 장보고, 불멸의 이순신 등과 같은 역사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신청률도 높은 듯싶습니다. 우리의 정치경제현실이 매우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육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의 정신세계의 고갈상태, 특히 현대인들의 영적세계에 대한 공동화현상은 심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점차 소돔성처럼 문란해져 갈 때, 하나님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위에 굳게 서서 중보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야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은혜주시기를 바랍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잔해들이 사해 남동지역에서 최근 발견되었습니다. 이곳의 현재 이름은 각각 밥 에드흐-드흐라(Bab edh-Dhra)와 누메이라(Numeira)입니다. 고고학자들은 밥 에드흐-드흐라의 시신안치소 건물들의 지붕부분이 집중적으로 불에 탄 흔적을 발견하였는데, 지붕이 불에 탄 이유는 공중에서 떨어진 불덩어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곳의 토양이 아스팔트와 유사한 역청(bitumen)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역청은 다량의 유황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고고학자 프레더릭 클랩은 소돔성과 고모라성에 불비가 내릴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지진으로 인해 이곳의 역청 토양이 심한 압력을 받았고, 갈라진 토양의 틈을 통해 유황이 분출되었으며, 이때 분출된 유황이 대지 표면에서 불꽃에 점화되어 거대한 가스불덩어리로 소돔과 고모라를 덮쳤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주목할 것은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각판의 분기점에 고대 소돔과 고모라가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28절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는 아브라함의 목격담이 나옵니다. 과학자들은 이 연기가 바로 유황가스를 강하게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옹기점 연기같이"라는 구절은 이 연기가 바로 지하토양이 거대한 압력으로 인해 갈라지면서 새어 나온 유황가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본문 창세기 19장 1-29절의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사람으로 변신한 두 천사를 영접한 롯은(1-3절), 하나님의 은총(16-22절)을 입고 구원을 받습니다. 롯의 생활이 경건했는지, 문란했는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범상치 아니한 두 나그네를 집안으로 영접하여 들여 대접하였으며, 소돔성민들이 집으로 달려와 완력을 쓰며, 위협공갈로써 나그네들을 집밖으로 끌어내 겁탈하려는 것을 몸으로 막았습니다. 롯이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의 이 선행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돔성민들은 심히 패역하였으며(4-11절), 멸망당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받고서도 회개치 않았고(12-15절), 끝까지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결국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뜨거운 불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23-29절).
여기서 우리가 심각하게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노아의 때에 여덟 명밖에 구원받지 못했던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성에서도 롯과 두 딸들밖에는 곧 세 사람밖에는 구원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잘났다고하나 어리석었던 사람들은 주님의 경고하심을 받고서도 회개치 아니함으로 다 멸망당하고 말았고, 주님의 경고하심을 받고 심판을 면한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마지막 때에 과연 몇 사람이나 구원에 이를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돔성의 멸망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예고하는 경고적인 성격을 띤다는데 있습니다. 또 소돔성의 멸망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장차 지옥의 불에서 받게 될 영벌에 대한 경고적인 성격을 띤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소돔성 심판에서 나타난 무서운 장면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불바다의 모습이라는데 있습니다. 또한 소돔성의 멸망이야기는 먼 과거에 일어난 단지 지나가버린 역사적사건일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모형이요 예표적인 사건이라는데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보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警戒)로 기록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말세를 만난 우리들은 소돔성 멸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거울삼고, 교훈삼아야 할 것입니다. 소돔성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요? 소돔성과 고모라성의 심판사건은 신약성경에 세 차례나 인용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8-33절, 베드로후서 2장 6-9절, 유다서 1장 7절은 모두가 말세와 관련된 문맥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계시록에는 소돔성의 멸망을 암시하는 불과 유황과 연기로 표현된 인류에 미친 재앙이 여러 차례 쓰이고 있습니다.
계시록 9장 13-21절에는 일곱나팔심판 가운데 여섯 번째 나팔재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천사가 나팔을 불 때, 2억 마리의 군마와 기수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말들의 머리는 사자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뿜어져 나옵니다. 그리고 이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합니다. 2억 마리나 되는 이 군마들의 힘은 불과 연기와 유황을 뿜어내는 그 입과 또 꼬리에도 있는데,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서 이것으로 사람을 해친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상당히 암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나먼 과거에 있었던 소돔성과 고모라성의 멸망 때의 장면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던가를 말해줄 뿐 아니라,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들어갈 자들이 받게 될 지옥의 무시무시한 형벌을 연상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시록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런 재앙을 눈으로 보고 들었거나 배운바가 있는 자들이 여전히 그들의 손으로 행하는 악행들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잡신들을 섬기거나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이 계시록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들이 생생한 역사적 교훈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건들이 보여준 처참했던 멸망의 길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걷고 있다는 문제이고, 둘째는 우상숭배 곧 음행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첫 번째 문제의 결과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계시록의 말씀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숭배로 인해서 심판을 받아 멸망당했던 선배들의 전철을 여전하게 밟다가 당하게 될 더 무시무시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돔성이 멸망을 자초하게 된 가장 큰 문제는 음행문제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음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적인 음행이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음행입니다. 창세기 19장 4절 이하에서 볼 수 있듯이 소돔성의 사람들은 성적으로 심히 타락하였습니다. 그들은 소돔성을 찾아온 잘생긴 남성으로 보이는 나그네들을 무차별 겁탈하려 하였습니다. 그런 악행에 참여한 자들이 4절에 보면, 노소를 무론하고 사방에서 모인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그 악명 높았던 육체적 음행보다 더 무서운 죄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영적인 음행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섬기는 행위, 곧 하나님을 배반한 행위를 성경은 치명적인 음란행위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이런 자들의 운명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는 것”(계 14:10)이며,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 19:20), 거기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것”(계 20:10)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제정치군사경제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할 때입니다. 그래서인가요? 태조왕건, 명성왕후, 영웅시대, 해신 장보고, 불멸의 이순신 등과 같은 역사드라마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신청률도 높은 듯싶습니다. 우리의 정치경제현실이 매우 불안하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육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인들의 정신세계의 고갈상태, 특히 현대인들의 영적세계에 대한 공동화현상은 심각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점차 소돔성처럼 문란해져 갈 때, 하나님의 심판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때야말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아브라함처럼 믿음위에 굳게 서서 중보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발버둥을 쳐야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님들에게 은혜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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