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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29: 하나님과 천사들을 접대한 아브라함(창 1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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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0,259 2005.07.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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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29: 하나님과 천사들을 접대한 아브라함(창 18:1-15)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당신의 뜻을 나타나내 보이실 때 여러 형태의 모습을 취하십니다. 사람의 모습이나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이나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 등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가까워진 어느 날 정오쯤에 하나님께서 수행천사 둘과 함께 사람의 모습을 취하신 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길가는 나그네들인 줄만 알고 모셔서 극진히 접대하였는데, 그들이 다름 아닌 하나님과 수행천사들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큰 행운이었겠습니까? 이런 일이 우리들의 생애에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군다나 이 일로 아브라함과 사라는 후손 이삭의 출생에 대한 보다 확고한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까?
일찍이 수녀 테레사는 깨달은바가 있어서 일정한 거처 없이 길에서 구걸하여 먹고 지내는 노숙자나 부랑인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그들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테레사는 그들 노숙자나 부랑인들이 바로 그들의 모습을 취하신 하나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23개의 민화를 남겼는데요, 그 가운데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글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 톨스토이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인 마르틴이 추운 어느 겨울날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돌보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마르틴에게 나타나기로 한 예수님이었다는 말을 합니다.
아브라함은 길손들을 맞아들이고서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의 상황에서도 나그네들이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나무 아래서 쉬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리고 떡, 버터, 우유와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요리하여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이렇듯 적극적이고 극진하게 손님을 대접함으로써 하나님과 수행천사들을 접대하게 된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마므레는 지중해와 사해바다 사이에 위치한 지금의 헤브론지역인데,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일 백리 정도 떨어진 광야지역이었습니다. 상수리나무 숲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상황이 그다지 나빴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더라도 팔레스타인 남부사막지역의 한낮의 더위는 장정이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땡볕 속을 걷고 있는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른거리는 정오의 땡볕 속에서 신기루처럼 천막출입구 앞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들을 보자, 아브라함은 100세가 다 된 노구의 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 나가 엎드려 절하며 그들을 맞아드렸습니다. 광야에 거주할 뿐 아니라,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서 그들이 그대로 자신의 거처를 지나쳐 간다면 곧 탈진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을까요, 아니면 자기 앞으로 걸어오는 그들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우리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가 그들을 극진히 모셨고, 그러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그들 가운데 한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다른 두 사람은 수행천사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절을 보면,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접대한 것은 순수한 이웃사랑에서였습니다.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뇌물성 환대가 아니었습니다. 설사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이 범상한 인물이 아니란 점을 염두에 두었더라도 그의 태도가 진실하고 순수하지 못했다면, 그들을 접대하겠다는 아브라함의 요청을 하나님과 수행천사들이 받아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들을 보면, 아브라함은 정말 극진한 정성으로 그들을 접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재산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아랫사람이 많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란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 맥락에서 아브라함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을만한 족장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연령도 지위도 모르는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나그네들에게 “몸을 땅에 굽혀” 마치 종이 상전에게 하듯 최대의 예우를 갖춰 맞이했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우리는 아브라함의 겸손함이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남을 접대하면서도 오히려 접대 받는 자보다 더욱 겸손한 태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이웃사랑의 원리를 이미 터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실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마 6:3)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던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후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대접하면서 전혀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최상의 것을 최선을 다해서 정성껏 접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갈 길이 바쁜 길손들을 오래 붙잡아둘 수 없어서 급히 준비하는 음식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준비시켰습니다.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 고대근동지방 유목민들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할지라도 형식에 매이지 않고 정성을 다하는 아브라함의 아름다운 이웃사랑의 마음을 우리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예절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최고의 예법으로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는 “몸을 땅에 굽혀”서까지 나그네들을 영접했습니다. 그것이 또한 고대근동지방의 손님을 맞이하는 예절이었다 할지라도 지나가는 길손들을 얕보지 아니하고 귀빈으로 맞이했다는 것은 그가 예절을 아는 족장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나무 그늘 아래에 음식을 진설해 손님들이 편히 쉬며 식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자신은 그 옆에 마치 종이 하듯 서빙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고대근동지방에서는 집주인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예우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겸손한 자세로 나그네들을 편안하게 대접했습니다. 손님들이 편안하게 먹고 쉴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행은 아브라함 한 사람만의 것은 아니고, 뒤에서 사라와 그의 하인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한데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팀원들 간에 손발이 잘 맞아야 좋은 결과를 얻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하나님과 수행천사들을 영접함으로써 후사에 대한 분명하고 확고한 약속을 다시 한 번 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도 면전에서 듣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사라까지도 그 축복을 받습니다. 육신적인 세상에 눌려 비록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라고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라를 향해서 책망과 질책보다는 오히려 따뜻한 위로의 말씀, 곧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귀한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는 바울의 말씀과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히 13:2)는 히브리서 저자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하나님께 능치 못할 일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갑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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