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023: 엘 엘르욘의 제사장 멜기세덱(창 1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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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23: 엘 엘르욘의 제사장 멜기세덱(창 14:1-24)
고대 문명을 이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국가들은 아브람이 정착을 시도했던 지중해 서부연안지역, 곧 가나안 남부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조공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14장 4절은 이 일이 12년간 지속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남부 국가연합, 곧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로 구축된 사해동맹국들이 엘람 왕에게 바치는 조공을 거부하고 반역을 일으키면서 전쟁이 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온 지 9년이 지난 84세의 때였습니다. 전쟁은 사해동맹군의 패배로 끝났고, 이 패배로 인해 소돔 성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시날’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고(10:10), 엘라살은 유프라테스 강 하류지역을 말합니다. 엘람은 오늘날의 이란고원 남부에 있던 나라입니다. 엘람에는 ‘그돌’이란 이름을 가진 왕이 많았다고 합니다. ‘고임’은 ‘열국’이란 뜻으로 지금의 터키지역을 말합니다.
사해바다연안의 작은 성읍의 왕들이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던 근동연합군에 대항하여 전쟁으로 맞선 것은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이 무모한 짓을 사해동맹군이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나안 땅에 임한 기근(12:10)으로 인해서 과중하게 할당된 조공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돔과 고모라는 역청과 유황이 많던 곳입니다. 이들 나라들을 침략하여 약탈한 엘람의 왕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을 아브람 일행이 쫓아가 잡혀 있던 조카 롯과 사람들을 구하고 약탈당했던 재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 창세기 14장의 전반부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가나안 땅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등장시키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사해동맹국들이 엘람의 속국에서 벗어나 아브람의 주도권아래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갖게 된데 있습니다. 17-20절의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들, 17-20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지식을 갖게 해준 제사장이었고, 아브람을 축복한 사람이었으며, 장차오실 메시아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만난 하나님은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아브람은 언약을 주시고, 언약하신 것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멜기세덱의 축복을 통해서 그가 믿고 따랐던 하나님이 ‘엘 엘르욘’ 곧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언약을 주시고 주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요, 둘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가 믿고 따랐던 하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요, 우주를 초월한 분이시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유한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만나주시고 언약을 체결하시며 또 주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언약은 인간과 인간이 맺는 언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언약의 특징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우선된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순종과 믿음에 근거해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두 번째 특징은 언약을 체결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하나님이 솔선하여 언약을 주시고, 주신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은 무언가 복된 것을 인간에게 값없이 은혜로 거저주시는 입장이 되고, 인간은 그저 그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입장이란 점입니다.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신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언약의 큰 특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고, 따라서 약속된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아 안타깝습니다.
멜기세덱은 족보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신앙을 가졌는지를 알 수 없는 신비에 쌓인 인물입니다. 본문 18절은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고, 히브리서 7장 3절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라고만 했습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멜기세덱이 이방인이면서도 타락한 가나안 문화를 극복하고 하나님께 대한 순전하고 신실한 믿음을 소유했던 사람으로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알 수 없는 특별한 방법으로 이 땅에 ‘경건의 씨’ 혹은 ‘약속의 씨’ 혹은 ‘남은 자’들을 위한 종들을 세우시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 경외자인 멜기세덱입니다. 시편 110편 4절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원하신 종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살렘’은 평강이란 뜻이며(히 7:1) 예루살렘의 옛 지명입니다(시 76:2). 그리고 멜기세덱은 ‘말키 체데크’라 읽으며, ‘정의와 심판의 왕’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서 7장 2절은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멜기세덱이 싸움터에서 돌아온 아브람과 그의 일행을 위해서 떡과 포도주를 마련하여 마중 나와 주었고, 아브람을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신이 취득한 재산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이 시대에도 십일조가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이전부터 고대 근동에서 신전의 봉사자들의 생계를 위해서 시행되었던 제도라고 합니다.
아브람의 십일조는 두 가지 성격을 갖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인정이며 감사의 표시입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고한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둘째는 멜기세덱의 제사장 권위에 대한 인정이며, 그의 수고에 대한 대가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과 그의 일행을 위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우리 주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영의 양식이요, 그분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과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멜기세덱과 아브람을 통해서 우리가 본받아야할 것 가운데 한 가지는 교회 일의 우선순위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20절의 말씀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감사의 예물을 바치는 일입니다. 둘째는 18-19절의 말씀처럼 영육을 먹이고 살리는 일입니다. 영의 일은 19절의 말씀처럼 영혼을 살리며 축복하는 일이고, 육의 일은 18절의 말씀처럼 구제하고 가르쳐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입니다. 셋째는 14절의 말씀처럼 행정관리를 잘 하는 일입니다. 아브람은 평상시 사람들을 잘 ‘길리고 연습’을 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잘 ‘길리고 연습한 삼백십팔 인’이 일당백의 용사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근동연합군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롯과 재물을 되찾아와 왔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두 종류의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본문의 멜기세덱이고, 또 하나는 출애굽 이후에 나타나는 레위지파의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은 축복을 선포하는 자로서 아브람보다도 높았습니다(히 7:4). 또한 모세율법에서 정한 아론을 기점으로 하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도 앞서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 계통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멜기세덱은 인간적인 단점과 한계를 지닌 레위 족보에 들지 않은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성경에 부각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3절에서는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대제사장은 중보자입니다. 성경에 제사장직과 왕직이 통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도 멜기세덱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가 통합되어 나타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동일한 반열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일 우리가 모세율법의 제사를 통하여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히 7:11)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 반열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것은 구약시대 제사와 그 제사의 중보자였던 레위 계층의 제사장들의 역할로는 영원한 사죄와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히 7:18-2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랐기 때문에 그의 제사장직은 완전하며, 왕직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이처럼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왕이요, 대제사장이란 근거는 아브람 시대에 존재했던 영원한 제사장인 멜기세덱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멜기세덱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중보자의 직분이 그 첫 번째로 이방인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멜기세덱은 가나안의 한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로서 아브람보다 더 존귀한 직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히 7:7-10). 이런 맥락에서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레위인의 반차 곧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당하지 않는 영원한 제사장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히 7:3). 이처럼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 이방인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구약시대 초기부터 이미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아브람과 멜기세덱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과 성도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하실 일이 있고, 하나님의 종은 종으로서의 할 일이 있고, 성도는 성도로서의 할 일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제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높이고, 경배와 찬양을 돌리며, 예배하고 섬기는 일과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는 일에 힘쓸 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엡 4;12) 될 줄로 믿습니다.
고대 문명을 이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국가들은 아브람이 정착을 시도했던 지중해 서부연안지역, 곧 가나안 남부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조공을 받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14장 4절은 이 일이 12년간 지속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남부 국가연합, 곧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로 구축된 사해동맹국들이 엘람 왕에게 바치는 조공을 거부하고 반역을 일으키면서 전쟁이 나게 된 것입니다. 이때는 아브람이 하란을 떠나온 지 9년이 지난 84세의 때였습니다. 전쟁은 사해동맹군의 패배로 끝났고, 이 패배로 인해 소돔 성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시날’은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지역이고(10:10), 엘라살은 유프라테스 강 하류지역을 말합니다. 엘람은 오늘날의 이란고원 남부에 있던 나라입니다. 엘람에는 ‘그돌’이란 이름을 가진 왕이 많았다고 합니다. ‘고임’은 ‘열국’이란 뜻으로 지금의 터키지역을 말합니다.
사해바다연안의 작은 성읍의 왕들이 광대한 지역을 통치했던 근동연합군에 대항하여 전쟁으로 맞선 것은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이 무모한 짓을 사해동맹군이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나안 땅에 임한 기근(12:10)으로 인해서 과중하게 할당된 조공량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돔과 고모라는 역청과 유황이 많던 곳입니다. 이들 나라들을 침략하여 약탈한 엘람의 왕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왕들을 아브람 일행이 쫓아가 잡혀 있던 조카 롯과 사람들을 구하고 약탈당했던 재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 창세기 14장의 전반부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가나안 땅의 실질적인 주인으로 등장시키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사해동맹국들이 엘람의 속국에서 벗어나 아브람의 주도권아래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아브람이 멜기세덱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갖게 된데 있습니다. 17-20절의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이 말씀들, 17-20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보다 정확한 지식을 갖게 해준 제사장이었고, 아브람을 축복한 사람이었으며, 장차오실 메시아의 모형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만난 하나님은 언약을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던 아브람은 언약을 주시고, 언약하신 것을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멜기세덱의 축복을 통해서 그가 믿고 따랐던 하나님이 ‘엘 엘르욘’ 곧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아브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첫째는 언약을 주시고 주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요, 둘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가 믿고 따랐던 하나님이 지극히 높으신 분이요, 우주를 초월한 분이시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유한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만나주시고 언약을 체결하시며 또 주신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난 것은 크나큰 행운이요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언약은 인간과 인간이 맺는 언약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언약의 특징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우선된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순종과 믿음에 근거해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두 번째 특징은 언약을 체결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란 점입니다. 하나님이 솔선하여 언약을 주시고, 주신 그 언약을 반드시 성취하십니다. 세 번째 특징은 하나님은 무언가 복된 것을 인간에게 값없이 은혜로 거저주시는 입장이 되고, 인간은 그저 그 사실을 믿고 순종하는 입장이란 점입니다.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신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언약의 큰 특징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할 때가 많고, 따라서 약속된 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아 안타깝습니다.
멜기세덱은 족보도 알 수 없고 어떻게 신앙을 가졌는지를 알 수 없는 신비에 쌓인 인물입니다. 본문 18절은 그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고, 히브리서 7장 3절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라고만 했습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멜기세덱이 이방인이면서도 타락한 가나안 문화를 극복하고 하나님께 대한 순전하고 신실한 믿음을 소유했던 사람으로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알 수 없는 특별한 방법으로 이 땅에 ‘경건의 씨’ 혹은 ‘약속의 씨’ 혹은 ‘남은 자’들을 위한 종들을 세우시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 경외자인 멜기세덱입니다. 시편 110편 4절은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원하신 종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멜기세덱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살렘’은 평강이란 뜻이며(히 7:1) 예루살렘의 옛 지명입니다(시 76:2). 그리고 멜기세덱은 ‘말키 체데크’라 읽으며, ‘정의와 심판의 왕’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서 7장 2절은 멜기세덱에 대해서 설명하기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멜기세덱이 싸움터에서 돌아온 아브람과 그의 일행을 위해서 떡과 포도주를 마련하여 마중 나와 주었고, 아브람을 위해 복을 빌었습니다.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리고 아브람은 자신이 취득한 재산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쳤습니다. 이 시대에도 십일조가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이전부터 고대 근동에서 신전의 봉사자들의 생계를 위해서 시행되었던 제도라고 합니다.
아브람의 십일조는 두 가지 성격을 갖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인정이며 감사의 표시입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고한 말씀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십일조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둘째는 멜기세덱의 제사장 권위에 대한 인정이며, 그의 수고에 대한 대가입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람과 그의 일행을 위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우리 주님의 희생을 상징하는 영의 양식이요, 그분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과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멜기세덱과 아브람을 통해서 우리가 본받아야할 것 가운데 한 가지는 교회 일의 우선순위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는 20절의 말씀처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 감사의 예물을 바치는 일입니다. 둘째는 18-19절의 말씀처럼 영육을 먹이고 살리는 일입니다. 영의 일은 19절의 말씀처럼 영혼을 살리며 축복하는 일이고, 육의 일은 18절의 말씀처럼 구제하고 가르쳐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입니다. 셋째는 14절의 말씀처럼 행정관리를 잘 하는 일입니다. 아브람은 평상시 사람들을 잘 ‘길리고 연습’을 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잘 ‘길리고 연습한 삼백십팔 인’이 일당백의 용사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근동연합군을 물리치고 빼앗겼던 롯과 재물을 되찾아와 왔기 때문입니다.
멜기세덱은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두 종류의 제사장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본문의 멜기세덱이고, 또 하나는 출애굽 이후에 나타나는 레위지파의 제사장입니다. 멜기세덱은 축복을 선포하는 자로서 아브람보다도 높았습니다(히 7:4). 또한 모세율법에서 정한 아론을 기점으로 하는 레위지파의 제사장들보다도 앞서 나타났을 뿐 아니라, 그 계통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멜기세덱은 인간적인 단점과 한계를 지닌 레위 족보에 들지 않은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성경에 부각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 3절에서는 멜기세덱이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대제사장은 중보자입니다. 성경에 제사장직과 왕직이 통합되어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런데도 멜기세덱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가 통합되어 나타나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동일한 반열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일 우리가 모세율법의 제사를 통하여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다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은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히 7:11)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 반열의 대제사장으로 오신 것은 구약시대 제사와 그 제사의 중보자였던 레위 계층의 제사장들의 역할로는 영원한 사죄와 구원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히 7:18-25).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랐기 때문에 그의 제사장직은 완전하며, 왕직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이처럼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가 왕이요, 대제사장이란 근거는 아브람 시대에 존재했던 영원한 제사장인 멜기세덱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멜기세덱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중보자의 직분이 그 첫 번째로 이방인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주목하게 됩니다. 멜기세덱은 가나안의 한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로서 아브람보다 더 존귀한 직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히 7:7-10). 이런 맥락에서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멜기세덱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레위인의 반차 곧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은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당하지 않는 영원한 제사장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히 7:3). 이처럼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이 이방인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가 구약시대 초기부터 이미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보편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아브람과 멜기세덱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과 성도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하실 일이 있고, 하나님의 종은 종으로서의 할 일이 있고, 성도는 성도로서의 할 일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제 위치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높이고, 경배와 찬양을 돌리며, 예배하고 섬기는 일과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는 일에 힘쓸 때,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엡 4;12)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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