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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22: 새옹지마(창 1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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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071 2005.07.0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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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22: 새옹지마(창 13:1-18)

‘새옹지마’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馬)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옹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침투하여 쳐들어왔고, 마을에 사는 장정들은 군에 징발되어 이들 오랑캐와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戰死)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징발을 면하여 무사할 수 있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3장을 읽으면서 떠오른 말이 ‘새옹지마’였습니다. “아브람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태평하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창세기 12-13장을 본문으로 아브람에 관해서 말씀을 전할 때에 세 가지를 언급합니다.

첫째는 아브람의 순종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믿음으로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브람의 ‘단 쌓음’의 믿음입니다. 아브람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한 곳에 정착하여 살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풀과 물을 찾아 유랑하였습니다. 그의 ‘단 쌓음’의 믿음은 그가 정착하는 곳마다 단을 쌓은 데서 나타나고 있고, 특정한 지역, 예를 들면, ‘세겜’과 ‘벧엘’과 같은 성소에 단을 쌓은 데서 나타났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셋째는 아브람의 인간적인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부인 사래를 누이로 소개하는 일과 같은 과실을 말합니다. 아브람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판단이 앞설 경우도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더디 믿고 후처를 둔 경우도 있었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따르지 않아서 징계를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아브람이 잘할 때는 물론이고, 잘못하여 과실을 범한 경우에도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브람에게 나타난 이 하나님의 변함없는 축복을 ‘새옹지마’란 말로 표현해 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브람의 온전치 못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심한 기근이 들므로 아브람은 궁여지책으로 당시 ‘중근동의 곡물 창고’라고 불렸던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이런 그의 행동에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곡물로 무역거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문제는 부인 사래로 인해서 이집트 왕을 속인데 있습니다. 사래가 아름답다는 소문이 이집트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이집트 왕이 사래를 후궁으로 취한 것입니다. 당시 사래는 65세가량이었으나, 출산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수려한 외모를 간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히브리 여성들은 피부가 희고 보드라워서 이집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사해근교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에는 “사래의 머리카락은 정말 아름다웠고, 반짝이는 눈, 부드러운 콧날, 빛나는 얼굴은 미인 중의 미인이었으며, 백옥 같은 살결은 그녀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곧게 뻗은 팔과 부드러운 손바닥, 그리고 길고 아름다운 손가락들과 아름다운 발, 이러한 모든 아름다움을 그녀는 간직하고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부인을 둔 아브람으로써는 목숨을 잃게 될까봐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힘없는 이방인들은 타국에서 죽임을 당하고 재산을 탈취당하며 아내와 자녀는 노예로 전락하는 예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득이 아브람은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12:13)고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화를 복으로 바꿔주셨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2절 말씀에 따르면,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아내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잃게 될 줄로 알았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아브람의 불신앙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브람으로 하여금 이집트에서 많은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둘째, 아브람은 롯과 분가하면서 좋은 지역을 조카 롯에게 양보하였습니다. 아브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롯은 자신의 눈으로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과 같은” 물이 넉넉한 요단 들을 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죄악의 도시 소돔까지 이르러 그곳에서 정착하였습니다. 롯의 판단력은 다분히 세속적이었고, 물질적이었으며, 먼 장래나 신앙의 측면을 고려하기보다는 당장의 눈앞에 펼쳐진 이익에 눈이 어두워 비옥한 요단들 동쪽을 택하였고, 환락의 도시 소돔에 정착하면서 그곳 사람들로 사위들을 얻고 그곳에서 입신출세하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소돔성의 멸망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재산도 잃고 부인도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겨우 두 딸과 더불어 목숨만을 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목축하기에 제격인 비옥한 지역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 아브람은 일순간 모든 것을 잃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조카는 비정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 유리한 쪽으로만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이 든 삼촌을 걱정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크게 실수한 듯이 생각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화를 복으로 바꿔주셨고, 위기를 기회로 바꿔주셨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고, 사해바다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네게브 지역 헤브론으로 옮겨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천막을 치고, 거기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점이 아브람에게 있어서 강점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아브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단을 쌓았던 것입니다. 재앙을 만난 순간에도, 위기를 만난 순간에도, 도저히 감사의 조건을 찾을 수 없는 순간에서조차도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을 수 있는 믿음, 이 아브람의 믿음이 화를 복으로 바꿨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변방의 노인처럼, 주변부에서 맴도는 목축을 하는 노인에 불과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달랐던 것은 소박하지만, 변치 않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열정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새옹지마’의 복을 주셨습니다. 화가 변해서 복이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위기가 바꿔서 기회가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환난이 바꿔서 위로가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슬픔이 바꿔서 기쁨이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성도님들과 가정에도 금년 한 해 동안 풍성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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