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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신앙생활(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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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1 조회 9,363 2004.07.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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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신앙생활(갈 2:20)

갈라디아서는 기독교 자유의 대헌장이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선언서라 불리는 책입니다. 이 서신은 로마서와 함께 종교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서신입니다. 루터는 “나는 이 서신과 결혼했다. 이것은 내 아내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갈라디아서를 좋아했고, 고데(Godet) 라는 신학자는 "이 서신은 인류역사를 새로 시작하는 기원이다. 이 서신은 인간의 영적 해방에 대한 일찍이 없었던 소중한 문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는 바울의 육체적인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천사나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우대하며, 할 수만 있었다면 눈이라도 빼어 주었으리만치 바울을 사랑한 신실한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과 헬라의 영지주의적 방종주의자들이 숨어들어 신앙을 왜곡시키고 있었습니다.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은 기독교인이 된 헬라인들에게 구약의 할례의식이나 유대절기를 지키도록 강요했고, 헬라의 영지주의적 방종주의자들은 구원과 자유의 의미를 왜곡시켜 도덕적 방종에 빠져들게 했으며,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에 대해서 강력하게 도전하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계시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천명하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갈 2:16)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글에서 주신 말씀이 2장 20절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이 한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한 말씀을 통해서 바울의 신앙생활의 진면목을 살펴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서 “내가”는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신앙고백이 사도 바울의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면, 여기서 “내가”는 우리 모두를 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란 존재는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필연적으로 부족한 존재이고, 성경에서는 부족을 죄로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짓지 아니한 갓난아이라 할지라도 그가 피조물이란 관점에서 볼 때는 필연적으로 죄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났거나 죄의 열매를 맺을 씨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 어거스틴과 칼뱅은 이 운명이나 씨앗을 원죄란 개념으로 이해했고, 따라서 인간을 아예 타고난 죄인으로 간주해 버렸습니다. 또 어거스틴과 칼뱅의 생각과는 달리 원죄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할지라도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스스로 범한 자범죄 때문에 죄인이 되는 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고 피할 길도 없는 숙명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라는 존재는 죄인입니다. 바울도 죄인이고, 여러분도 나도 죄인입니다. 이 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힘입어,” “그리스도를 본받아”란 뜻을 함께 갖습니다. 자연상태에서는 버려두면 모든 것이 망가지듯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못하거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하거나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지 못하거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지 못하게 되면 죄악을 피해갈 길이 없는 우리 인간으로써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믿음이 있다고 해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못할 때에는, 마음에 그리는 하나님의 크기가 인생의 짐보다 작게 보여 믿음을 잃게 됩니다. 또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이 직면한 문제들보다 더 크신 분이란 사실을 잊게 되고, 망망대해에 혼자 있다는 고독감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빛과 생명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되며, 기도를 해도 응답받지 못할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첫 번째로“십자가에 못 박혔다”란 말은 2장 19절의 말씀처럼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 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또 로마서 7장 4절에서,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하였고, 6절에서는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란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선택과 예정 속에서 창세전에 이미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구원이 어제 오늘에야 결정된 것이 아니라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된 특별한 선택과 미리 아시고  정하신 뜻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대신 받기로 작정하시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 몫인 축복과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결정하신 그 순간에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것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우리는 영으로써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란 말은 예수님을 믿고 침례 또는 세례를 받을 때 상징적인 의미지만 물 속에서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때때로 물은 생명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침례 또는 세례식 때의 물은 무덤과 죽음을 상징합니다. 노아홍수 때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 때 홍해의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 복지 앞에 놓인 요단강물도 그랬고, 폭풍이 이는 갈릴리 호수의 물도 그랬고, 하늘 보좌방 앞에 펼쳐진 불이 섞인 유리바다도 그랬습니다. 요나가 빠진 바다도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성의 불바다도 그랬고,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진 적그리스도가 올라오는 바다도 그랬고, 큰 음녀가 앉은 물도 그랬고, 그리스신화에서 죽음의 세계인 하데스로 통하는 아케루시아(Acherousia) 호수와 아케론(Acheron) 강과 스튁스(Styx) 강이 모두 흑암과 죽음을 상징했습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세례식 때 물 속에 잠기는 것은 우리 죄의 몸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골로새서 2장 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라고 하였고, 로마서 6장 3-6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6장 5절에서 “연합”이란 단어는 ‘함께 심어졌다’는 뜻입니다. 동일한 땅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심겨진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우리가 함께 심겨졌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상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때에 우리도 거기서 함께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6장 6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란 표현을 썼던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란 말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날마다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란 말은 현재완료수동형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고 충만한 기쁨으로 구원의 문(예루살렘 성문)에 들어섰지만,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고,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그로인해서 많은 혜택을 누립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고, 지난날의 죄과를 다 용서 받았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도 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고 로마서 8장 17절에서 바울은 말하였고,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서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둘째,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한 말씀은 나는 감춰지고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품과 영광이 들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감춰지고 그리스도가 높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실존).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말합니다(존재).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주권).
바울은 로마서 14장 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다.”고 하였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는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4장 10-11절에서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한 말씀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힘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치 우리가 유일한 자식인 것처럼 사랑하십니다. 수잔나 웨슬리는 19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였습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도 그들 중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잔나가 각각의 자녀에게 썼던 편지를 읽게 되면 그녀가 19명의 자녀 각각의 독특한 개성과 문제점들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마치 그 한 명 한 명이 그녀에게는 단 하나밖에 없는 자녀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혹시 잠시라도 하나님이 과연 나의 존재를 알고나 계실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계실까라는 의심이 생긴다면,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것을 기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만큼 크게 사랑하고 계신가를 알게 해주는 척도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한 말씀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신뢰함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보다 더 믿을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한 말씀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며 긍정적인 변화의 능력입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한 말씀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본받아 산다는 뜻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본받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5장 1절에서 “사랑을 받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처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해서 나 자신의 육체에 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감춰지고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품과 영광이 들어나야 합니다. 나는 감춰지고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야 합니다.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합니다. 나는 없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처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힘으로, 아들을 신뢰함으로, 아들을 믿는 믿음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성자 그리스도님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실 때 바울에게 힘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함께하시고 힘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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