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의 참 스승 바울(딤후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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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의 참 스승 바울(딤후 1:1-14)
주후 64년 7월 18일에 로마의 대경기장 상가에서 발화된 불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크게 번져 9일 동안 전체 로마시 가운데 3분의 1이상을 잿더미로 만든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항간에는 네로가 방화범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네로는 자신에게 집중된 화살을 피할 목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세워 대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체포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 쓴 채 사나운 짐승에 물려 죽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괴수로 지목받았고, 긴급 체포되어 로마의 지하감방(Mamertine Prison)에 갇혀 있다가 네로가 자살하기 일년 전인 67년경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로 이 지하감방에서 기록된 서신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바울은 늙고 병든 상태에서 견디기 어려운 지하감방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가련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디모데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디모데를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칭찬하고 위로하면서 이런 저런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분을 어떻게 참스승이요 아버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고(1:2), 밤낮 쉬지 않고 언제나 기도 중에 디모데를 기억하였으며(1:3), 디모데의 눈물을 알아주었을 뿐 아니라, 만나서 위로해 주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으며(1:4), 디모데의 진실한 믿음을 알아준 참스승이었습니다(1:5). 참스승으로써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칭찬과 위로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첫째, 1장 7-8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1장 13-14절에서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가지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디모데는 바울이 헬라파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었다가 구사일생한 터키 남갈라디아 지방 루스드라 출신이며, 모친은 그리스도인 유대인이었고, 부친은 헬라인이었습니다(행 16:1).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배웠으며(딤후 1:5; 3:15), 고향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던 청년이었습니다(행 16:2). 바울은 디모데를 제2차 전도여행 때부터 동행시켰으며, 이후로 디모데는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랐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나의 동역자”(롬 16:21),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 딤후 1:2), “형제”(고후 1:1, 골 1:1, 몬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빌 1:1), “하나님의 일꾼”(살전 3:2),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고전 16:10)로 불렀습니다. 특히 빌립보서 2장 22절에서는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빌 2:22)고 칭찬하였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4장 17절을 보면,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대신해서 가르칠 만큼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글을 보면, 디모데는 복음의 일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13:23).
그러나 디모데는 여타의 사람들처럼 단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끄럼을 잘 타고 소심한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다가 속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것 같고, 훗날 에베소교회에서는 거짓교사들을 제대로 막지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가 훌륭한 주의 일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아낌없는 사랑과 위로와 충고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결심만 하고 머뭇거리며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칭찬과 위로와 사랑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고, 결국 위대한 디모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칭찬과 위로와 사랑의 충고가 인간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 때에 4강에 들게 된 이유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독 히딩크의 과학적 훈련과 탁월한 지도력도 있었고,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도 있었으며, 개최지의 이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크게 작용한 힘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온 국민들의 대대적인 응원 때문이었습니다. 이 응원의 특징들이 무엇입니까? 잘한다는 ‘칭찬’과 잘못할 때에도 잘할 수 있다는 권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4강 신화는 칭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21세기북스에서 출판한 ꡔ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ꡕ(Whale Done!)는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잘못한 일보다는 잘한 일,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여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칭찬이 범고래들한테서 어떻게 그 효과를 발휘했는가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시에 씨 월드(Sea World) 해양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범고래의 쇼가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범고래는 가장 무시무시한 바다의 포식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범고래의 위 속에서 물고기, 오징어, 물개,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북극곰, 펭귄, 파충류, 바다거북, 고래류, 해달 등 심지어는 무스(큰 사슴)까지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게가 3톤이 넘는 이 거대한 범고래들이 수천 명의 관중들 앞에서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점프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 멋진 묘기들을 펼쳐 보인다고 합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범고래들의 멋진 묘기에 사람들은 절로 탄성을 토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멋진 쇼가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은 조련사들의 긍정적인 태도와 칭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잘한 일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되면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범고래를 춤추게 하는 조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련사와 고래와의 신뢰관계입니다. 고래와의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그 어떤 힘으로도 범고래를 훈련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관계든 사람과 사람관계든 사람과 고래와의 관계든 먼저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그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상담학에서는 이것을 ‘래폴트’ (rapport)라고 말합니다.
좋은 관계는 최고의 경쟁력입니다. 성서는 관계개선에 관한 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든 인간과의 관계든 관계가 개선되면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곧 인간과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고, 인간과의 관계가 나쁠 수 없고, 특수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인간과의 관계가 나쁜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관계의 바탕은 신뢰와 신실입니다. 홍길동이는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란 믿음, 홍길동이는 믿을 수 있다는 믿음, 홍길동이는 뒤통수를 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홍길동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이런 믿음이 쌓일 때 경쟁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경쟁력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관계를 개선하고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잘못한 일은 못 본척하고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춰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일이나 공부를 잘 했을 때,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려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일을 잘 못했거나 공부를 못했을 때 가급적 무관심하고 못 본척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은 잘한 일에 무관심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못 본척합니다. 더 나쁜 것은 시기하고 질투까지 합니다. 그리고 잘못한 일에는 온통 관심을 집중시켜 꾸중하거나 책망합니다. 잘한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잘못한 일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 이 행동이 일을 그르치는 실패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했거나 잘못했을 때 꾸중하거나 책망하기보다는 실패나 잘못을 만드는 에너지를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로 역할을 바꿔주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범고래를 훈련시키는 조련사들 가운데 쌍둥이 자녀를 둔 사람이 있는데요, 다른 부모들이 하는 행동과는 달리 아이들이 웃고 있거나 잘 놀고 있을 때만 함께 놀아주었고, 아이들이 울 때는 기저귀가 젖은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만 확인하고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면 안아주고 놀아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버릇없이 굴 때는 그냥 못 본척하고 그 아이들의 행동과 관심을 다른 옳은 일로 바꿔주었는데, 외식을 한다든지, 비디오를 함께 본다든지, 공원에 가서 함께 산책을 한다든지 했다고 합니다. 잘못 된 일이 생기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잘하고 있을 때 주의를 기울여준 것입니다. 아이들이 더 자랐을 때에는 집안일을 돕거나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 학교에서의 일이나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등의 일을 정해 주었고, 그 일들을 잘 못했거나 안했을 경우에 그것을 바로 지적하기보다는 서로 합의했던 목표로 다시 돌아가서 그 목표를 확인하고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의 아이들은 일을 잘 했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최대의 적입니다. 버려두면 망가집니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려야 하는데,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에 관심을 쏟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밝고 훌륭하고 멋진 부분에 관심을 쏟느냐, 아니면, 잘못한 일에 관심을 쏟느냐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당연히 잘한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못한 일에는 가급적 무관심하거나 못 본척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1월말에 “그리스도의 나라”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비교가 없고 비판이 없고, 칭찬과 격려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비판과 책망이 난무한 곳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의 소리가 충만한 곳입니다. 사람을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가를 톨스토이는 「대자」란 글에서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해서도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랑으로 살라”는 뜻으로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면 칭찬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이든 공부든 진행과정에 관심을 갖고 칭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치기 전까지 가만 놔뒀다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일을 망치기전에 일이 그릇되기 전에 관심을 집중시켜 일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려두면 망가진다는 원리가 여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칭찬을 몰아서 한꺼번에 해서는 안 됩니다. 칭찬은 즉각적으로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뒤통수를 치는 방식의 부정적인 반응은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망하고 꾸중하는 것을 관심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일 뿐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칭찬하는 것이 가장 효과 좋은 약입니다. 잘하는 일을 찾아서 인정해 주고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설사 정확하고 올바르게 처리되지 못한 일이 되었다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잘한 일을 찾아 칭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옳은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일을 잘했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야 할입니다. 일을 잘했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지도자들이 갖춰야할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율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습니다. 칭찬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을 하도록 돕는다는데 있습니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칭찬은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나는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됩니다.
명령을 내릴 만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명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면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이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과 긍정적이고 신뢰가 넘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부정적인 관계를 만들면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끔씩은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를 칭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찬이 지나치면 자만심으로 발전하지만, 적당한 자긍심은 우리 자신에게 매우 좋은 약이 됩니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은 한 가지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들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의 능력과 경쟁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비교는 정치마당입니다. 비교는 죄악입니다. 내부경쟁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이어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칭찬은 여러분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험담보다는 칭찬과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은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후 64년 7월 18일에 로마의 대경기장 상가에서 발화된 불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크게 번져 9일 동안 전체 로마시 가운데 3분의 1이상을 잿더미로 만든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항간에는 네로가 방화범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네로는 자신에게 집중된 화살을 피할 목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세워 대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체포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 쓴 채 사나운 짐승에 물려 죽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괴수로 지목받았고, 긴급 체포되어 로마의 지하감방(Mamertine Prison)에 갇혀 있다가 네로가 자살하기 일년 전인 67년경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로 이 지하감방에서 기록된 서신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바울은 늙고 병든 상태에서 견디기 어려운 지하감방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처지를 가련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디모데를 위로하고 칭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처럼, 디모데를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칭찬하고 위로하면서 이런 저런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분을 어떻게 참스승이요 아버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디모데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고(1:2), 밤낮 쉬지 않고 언제나 기도 중에 디모데를 기억하였으며(1:3), 디모데의 눈물을 알아주었을 뿐 아니라, 만나서 위로해 주기를 간절히 소원하였으며(1:4), 디모데의 진실한 믿음을 알아준 참스승이었습니다(1:5). 참스승으로써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칭찬과 위로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첫째, 1장 7-8절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1장 13-14절에서 말하기를,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가지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디모데는 바울이 헬라파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죽었다가 구사일생한 터키 남갈라디아 지방 루스드라 출신이며, 모친은 그리스도인 유대인이었고, 부친은 헬라인이었습니다(행 16:1).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배웠으며(딤후 1:5; 3:15), 고향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던 청년이었습니다(행 16:2). 바울은 디모데를 제2차 전도여행 때부터 동행시켰으며, 이후로 디모데는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랐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나의 동역자”(롬 16:21),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 딤후 1:2), “형제”(고후 1:1, 골 1:1, 몬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빌 1:1), “하나님의 일꾼”(살전 3:2),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고전 16:10)로 불렀습니다. 특히 빌립보서 2장 22절에서는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다”(빌 2:22)고 칭찬하였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4장 17절을 보면,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대신해서 가르칠 만큼 바울의 가르침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저자의 글을 보면, 디모데는 복음의 일로 감옥에 갇혔던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13:23).
그러나 디모데는 여타의 사람들처럼 단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부끄럼을 잘 타고 소심한 성격이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다가 속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고린도교회에 발생한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던 것 같고, 훗날 에베소교회에서는 거짓교사들을 제대로 막지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모데가 훌륭한 주의 일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울의 아낌없는 사랑과 위로와 충고 때문이었습니다. 항상 결심만 하고 머뭇거리며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디모데에게 바울은 칭찬과 위로와 사랑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고, 결국 위대한 디모데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칭찬과 위로와 사랑의 충고가 인간의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2002년 월드컵 때에 4강에 들게 된 이유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감독 히딩크의 과학적 훈련과 탁월한 지도력도 있었고, 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도 있었으며, 개최지의 이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크게 작용한 힘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온 국민들의 대대적인 응원 때문이었습니다. 이 응원의 특징들이 무엇입니까? 잘한다는 ‘칭찬’과 잘못할 때에도 잘할 수 있다는 권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4강 신화는 칭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21세기북스에서 출판한 ꡔ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ꡕ(Whale Done!)는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잘못한 일보다는 잘한 일,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관심을 기울여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칭찬이 범고래들한테서 어떻게 그 효과를 발휘했는가를 말해주는 책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시에 씨 월드(Sea World) 해양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범고래의 쇼가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범고래는 가장 무시무시한 바다의 포식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범고래의 위 속에서 물고기, 오징어, 물개, 바다사자, 바다코끼리, 북극곰, 펭귄, 파충류, 바다거북, 고래류, 해달 등 심지어는 무스(큰 사슴)까지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무게가 3톤이 넘는 이 거대한 범고래들이 수천 명의 관중들 앞에서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점프도 하고, 다른 여러 가지 멋진 묘기들을 펼쳐 보인다고 합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범고래들의 멋진 묘기에 사람들은 절로 탄성을 토해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멋진 쇼가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이 책은 조련사들의 긍정적인 태도와 칭찬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고 잘한 일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되면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범고래를 춤추게 하는 조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련사와 고래와의 신뢰관계입니다. 고래와의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그 어떤 힘으로도 범고래를 훈련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관계든 사람과 사람관계든 사람과 고래와의 관계든 먼저 신뢰가 쌓이기 전에는 그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상담학에서는 이것을 ‘래폴트’ (rapport)라고 말합니다.
좋은 관계는 최고의 경쟁력입니다. 성서는 관계개선에 관한 글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든 인간과의 관계든 관계가 개선되면 경쟁력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곧 인간과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고, 인간과의 관계가 나쁠 수 없고, 특수한 경우들을 제외하고는 인간과의 관계가 나쁜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관계의 바탕은 신뢰와 신실입니다. 홍길동이는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란 믿음, 홍길동이는 믿을 수 있다는 믿음, 홍길동이는 뒤통수를 칠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홍길동이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 이런 믿음이 쌓일 때 경쟁력이 커지는 것입니다. 경쟁력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관계를 개선하고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잘못한 일은 못 본척하고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춰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일이나 공부를 잘 했을 때, 더 많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려주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일을 잘 못했거나 공부를 못했을 때 가급적 무관심하고 못 본척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사람들은 잘한 일에 무관심하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못 본척합니다. 더 나쁜 것은 시기하고 질투까지 합니다. 그리고 잘못한 일에는 온통 관심을 집중시켜 꾸중하거나 책망합니다. 잘한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잘못한 일에 관심을 집중하는 것, 이 행동이 일을 그르치는 실패의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했거나 잘못했을 때 꾸중하거나 책망하기보다는 실패나 잘못을 만드는 에너지를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로 역할을 바꿔주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범고래를 훈련시키는 조련사들 가운데 쌍둥이 자녀를 둔 사람이 있는데요, 다른 부모들이 하는 행동과는 달리 아이들이 웃고 있거나 잘 놀고 있을 때만 함께 놀아주었고, 아이들이 울 때는 기저귀가 젖은 것인지, 배가 고픈 것인지만 확인하고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면 안아주고 놀아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좀 더 커서 버릇없이 굴 때는 그냥 못 본척하고 그 아이들의 행동과 관심을 다른 옳은 일로 바꿔주었는데, 외식을 한다든지, 비디오를 함께 본다든지, 공원에 가서 함께 산책을 한다든지 했다고 합니다. 잘못 된 일이 생기는 것을 기다리는 대신 잘하고 있을 때 주의를 기울여준 것입니다. 아이들이 더 자랐을 때에는 집안일을 돕거나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 학교에서의 일이나 어른들과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등의 일을 정해 주었고, 그 일들을 잘 못했거나 안했을 경우에 그것을 바로 지적하기보다는 서로 합의했던 목표로 다시 돌아가서 그 목표를 확인하고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추도록 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의 아이들은 일을 잘 했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관심은 최대의 적입니다. 버려두면 망가집니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 이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기울려야 하는데,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에 관심을 쏟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의 밝고 훌륭하고 멋진 부분에 관심을 쏟느냐, 아니면, 잘못한 일에 관심을 쏟느냐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당연히 잘한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못한 일에는 가급적 무관심하거나 못 본척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1월말에 “그리스도의 나라”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비교가 없고 비판이 없고, 칭찬과 격려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비판과 책망이 난무한 곳이 아니라 칭찬과 격려의 소리가 충만한 곳입니다. 사람을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가를 톨스토이는 「대자」란 글에서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아니한 이유에 대해서도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랑으로 살라”는 뜻으로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면 칭찬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이든 공부든 진행과정에 관심을 갖고 칭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망치기 전까지 가만 놔뒀다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일을 망치기전에 일이 그릇되기 전에 관심을 집중시켜 일이 잘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려두면 망가진다는 원리가 여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칭찬을 몰아서 한꺼번에 해서는 안 됩니다. 칭찬은 즉각적으로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뒤통수를 치는 방식의 부정적인 반응은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망하고 꾸중하는 것을 관심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듣기 싫어하는 잔소리일 뿐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칭찬하는 것이 가장 효과 좋은 약입니다. 잘하는 일을 찾아서 인정해 주고 적절한 방법으로 보상을 해야 합니다. 설사 정확하고 올바르게 처리되지 못한 일이 되었다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잘한 일을 찾아 칭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옳은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합니다.
일을 잘했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해야 할입니다. 일을 잘했을 때 좋은 일이 생기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지도자들이 갖춰야할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율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습니다. 칭찬이 좋은 이유는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을 하도록 돕는다는데 있습니다. 잘했다고 칭찬해주면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칭찬은 상대방에게 지속적으로 “나는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는 확신을 심어주게 됩니다.
명령을 내릴 만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명령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보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면서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이 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명령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과 긍정적이고 신뢰가 넘치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부정적인 관계를 만들면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끔씩은 우리 자신이 우리 스스로를 칭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찬이 지나치면 자만심으로 발전하지만, 적당한 자긍심은 우리 자신에게 매우 좋은 약이 됩니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은 한 가지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자긍심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려들지 않고 항상 자기 자신의 능력과 경쟁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비교는 정치마당입니다. 비교는 죄악입니다. 내부경쟁을 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사람이어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칭찬은 여러분을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험담보다는 칭찬과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은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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