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의 승리의 노래(계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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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의 승리의 노래(계 15:2-4)
계시록은 황제숭배를 가장 심하게 강요했던 로마제국의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난 96년에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이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일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다른 요한일 가능성도 배제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계시록의 저자는 창조주 신앙의 소유자였고, 구약성서 내용의 해석자였으며, 환상을 보는 묵시문학자였고, 역사의식이 뚜렷한 신학자였으며, 소명의식을 가진 목회자였다는 점을 밝힐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이와 같은 자질의 소유자인 목회자가 쓴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보통의 원고설교나 희곡이 아니라, 자신이 본 환상을 그림으로 설명한 시청각 설교(Audio-visual Sermon)입니다. 계시록은 앞으로 되어질 사건들에 대한 예언적 설교일 뿐 아니라, 당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훌륭한 목양적 설교였습니다.
계시록은 신앙 때문에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용기와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쓰였습니다. 계시록의 본문은 박해를 이기고 믿음을 지킨 성도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며(7:17; 21:4),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8:3,4)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며(15:2), 피의 보상을 받으며(19:2),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보장받는다(21장)고 적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언제나 외부적으로 물리적인 칼의 박해와 내부적으로 이단의 거짓교리에 맞서야 했었는데,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이 두 가지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칼의 박해와 관련해서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거짓선지자의 도전에 관련해서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도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재앙으로 심판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단의 권세가 득세하는 듯이 보여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는 그분의 섭리와 경륜에 의해서 바로 잡히게 되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영원토록 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성서와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과 심한 역경 속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낸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재해석하면서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승리를 환상(幻想)으로 보여 줌으로써,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싸우며,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소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위로를 주며, 박해로 인한 배교의 위협과 신앙의 위기에 처한 성도에게 끝까지 믿음의 정조를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사단의 세력과 싸워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단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이기는 것 같지만, 싸움의 결국은 성도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위기위발의 순간에 있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칼과 무력 앞에서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승리’와 ‘승리의 하나님,’ 또는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사실과 거짓 선지자의 회유와 무력 앞에서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구원의 하나님,’ 또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끝까지 신앙을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네 개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곱이란 숫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개의 환상은 다시 천상과 지상으로 분리되는 일곱 개의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일곱 개의 환상은 다섯 번째 환상인 중간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각각의 환상에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각각의 환상에서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들 환상들은 성도들의 고난과 구원 그리고 박해자와 불신자들의 불행한 최후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틀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속한 불신자들을 완전히 천상과 지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천상과 지상이 반드시 문자적인 뜻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상은 구원을 그리고 지상은 저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이 두 길은 다시 만나질 수 없는 영원한 갈림길입니다. 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킨 자들은 구원의 길로,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적그리스도가 강요하는 우상숭배에 머리를 조아린 자들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계시록 2-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물론 이 교회들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들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제자들을 태운 작은 배가 돌풍 때문에 파선의 위기를 만난 것처럼 이들 교회들도 박해로 인해서 전복될 위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장에서는 이들 교회의 머리되신 승리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의 배후에 화려한 인자의 모습으로 버티고 계신다는 점을 보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배를 요동치게 하던 바람과 풍랑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여 잔잔하여 짐과 같이(막 4:35-41) 능력의 주께서 일곱 교회의 목자들을 상징하는 일곱별을 손에 쥐고서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에 몰아닥친 풍랑은 곧 잔잔하여 질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천상에, 교회는 지상의 존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6장에서는 소위 인 재앙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인 재앙은 사실 재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승리, 전쟁의 파괴, 기근, 죽음, 신앙으로 인한 순교, 천재지변, 평화에 관한 표현들로써 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악순환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반면에 4-5장에서는 인류의 역사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 즉 천상의 청와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역사가 목적 없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요 윤회의 역사도 아니요 오직 이 우주를 지으시고 만드신 이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지배아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상에, 인류는 지상의 존재임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8-9장은 나팔재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 재앙은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과 흡사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열 가지가 일곱 가지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들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 심판의 재앙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재앙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7장에서 구원함을 받아 천상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상에서 구원의 기쁨을 승리의 노래로 찬양하고 있고, 사단의 백성은 지상에 남아 나팔 재앙을 받고 아비규환의 소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7장의 천상의 백성과 8-9장의 지상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의 백성의 완전한 구별과 분리를 회화적(繪畵的)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이 이집트인들에게만 내리고 고센 땅에 분리되어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주어졌던 것과 같습니다. 또 출애굽기 14-15장과 계시록 15장 2-4절에 나타난 장면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넌 후 해변에서 구원의 기쁨과 축제 분위기에 쌓여 있고, 이집트의 전차부대는 불과 유황으로 이글거리는 것 같은 홍해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 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멸하면서도 노아의 여덟 식구를 방주로 구원하신 것과 아브라함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면서도 롯과 두 딸을 구원하신 것과도 같습니다(눅 17:26-29).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은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이요 사랑의 행위인 것입니다. 마치 억류된 자국민을 구해내기 위해서 포격을 가하고 특공대를 파견하여 구출해 내는 것과 같은 행위인 것입니다. 또한 지상의 재앙과 천상의 큰 무리는 천국과 지옥의 광경을 묘사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제15-16장의 대접 재앙도 8-9장의 나팔재앙의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다른 점은 대접재앙이 나팔재앙보다도 그 강도에 있어서 세배가 된다는 점입니다. 나팔재앙의 강도가 33퍼센트 일 때, 대접 재앙의 강도는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14장 역시 7장과 마찬가지로 천상의 구원받은 무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사건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록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말할 뿐 미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문자적 성취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성도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제10-13장은 성도의 고난을 삼년 반으로 묘사한 중간계시를 보여 주고 있고, 그 반대로 17-19장에서는 성도에게 박해를 가했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심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간계시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의 구세주이심을 입증하는 구원의 행위인 것입니다.
제20-22장에서 천상과 지상의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은 19장에서 백마타고 오시는 재림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됩니다.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시기 때문에 “충신과 진실”이란 이름으로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짧은 성도의 수고가 끝나고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의 삶이 시작됨을 알리게 됩니다. 이 영광의 삶은 부활의 몸, 구속된 몸, 혹은 변형된 몸으로 시작됩니다. 성도는 이미 영혼의 구원을 통해서 지상 혹은 낙원에서 선취적으로 이 삶을 맛보며 누려왔으나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상과 지상의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신천신지(新天新地)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완전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21-22장의 말씀은 이런 인류가 가진 마지막 소망을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에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계시록은 일정한 틀에 의해서 구성된 일곱 장의 큰 그림으로 설명된 시청각 설교이며, 마음 뭉클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담긴 멋진 한 편의 설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설교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현실 속에서 승리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인내로써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우리 성도들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또 장차 올 자요, 전지전능한 분이심을 굳게 믿고서 소망 중에 인내함으로 이기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마지막 날에 큰 상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우리 주님이 폭풍을 잔잔케 하실 교회의 머리되시며 성도의 구세주 되심을 굳게 믿고서 박해의 폭풍이든 이단의 폭풍이든 생활의 폭풍이든 그 폭풍이 무엇이든지간에 두려워하지 말고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인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월계관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셋째, 우리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굳게 믿고서 아무리 세상이 뒤집어져있고, 혼탁하고 혼란스럽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며,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당할 자가 없고,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본문의 말씀대로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이기고 큰 환난에서 벗어나 하늘 보좌방 앞에 펼쳐진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에 합류하게 될 것이며,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7:1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시련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장차 성도들에게 주어질 영원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소중한 축복에 비하면 짧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믿고서 또 탄압하던 자들이 불과 유황과 연기로 영원히 타는 불 못에 들어갈 것을 굳게 믿고서 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면 모든 약속들이 성취될 것을 굳게 믿고서 배교하지 말고 끝까지 소중한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계시록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3:10, 14:12).
계시록은 황제숭배를 가장 심하게 강요했던 로마제국의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난 96년에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이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일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다른 요한일 가능성도 배제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계시록의 저자는 창조주 신앙의 소유자였고, 구약성서 내용의 해석자였으며, 환상을 보는 묵시문학자였고, 역사의식이 뚜렷한 신학자였으며, 소명의식을 가진 목회자였다는 점을 밝힐 수 있습니다.
계시록은 이와 같은 자질의 소유자인 목회자가 쓴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보통의 원고설교나 희곡이 아니라, 자신이 본 환상을 그림으로 설명한 시청각 설교(Audio-visual Sermon)입니다. 계시록은 앞으로 되어질 사건들에 대한 예언적 설교일 뿐 아니라, 당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훌륭한 목양적 설교였습니다.
계시록은 신앙 때문에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저버리지 않도록 용기와 위로와 소망을 주기 위해서 쓰였습니다. 계시록의 본문은 박해를 이기고 믿음을 지킨 성도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며(7:17; 21:4),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8:3,4) 최후의 승리가 보장되며(15:2), 피의 보상을 받으며(19:2),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을 보장받는다(21장)고 적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는 언제나 외부적으로 물리적인 칼의 박해와 내부적으로 이단의 거짓교리에 맞서야 했었는데, 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교회는 이 두 가지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은 적그리스도의 칼의 박해와 관련해서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거짓선지자의 도전에 관련해서 '하나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성도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재앙으로 심판하실 것이며,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단의 권세가 득세하는 듯이 보여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역사는 그분의 섭리와 경륜에 의해서 바로 잡히게 되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영원토록 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성서와 창조주 하나님의 신앙과 심한 역경 속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낸 믿음의 사람들의 삶을 재해석하면서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승리를 환상(幻想)으로 보여 줌으로써,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싸우며,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소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위로를 주며, 박해로 인한 배교의 위협과 신앙의 위기에 처한 성도에게 끝까지 믿음의 정조를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사단의 세력과 싸워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단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이기는 것 같지만, 싸움의 결국은 성도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위기위발의 순간에 있지만, 최종적인 승리는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칼과 무력 앞에서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승리’와 ‘승리의 하나님,’ 또는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사실과 거짓 선지자의 회유와 무력 앞에서 힘이 없어 당하기만 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구원의 하나님,’ 또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끝까지 신앙을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네 개의 환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일곱이란 숫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개의 환상은 다시 천상과 지상으로 분리되는 일곱 개의 환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일곱 개의 환상은 다섯 번째 환상인 중간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각각의 환상에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각각의 환상에서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들 환상들은 성도들의 고난과 구원 그리고 박해자와 불신자들의 불행한 최후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은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틀은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과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속한 불신자들을 완전히 천상과 지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천상과 지상이 반드시 문자적인 뜻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상은 구원을 그리고 지상은 저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이 두 길은 다시 만나질 수 없는 영원한 갈림길입니다. 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킨 자들은 구원의 길로,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적그리스도가 강요하는 우상숭배에 머리를 조아린 자들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계시록 2-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물론 이 교회들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들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제자들을 태운 작은 배가 돌풍 때문에 파선의 위기를 만난 것처럼 이들 교회들도 박해로 인해서 전복될 위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장에서는 이들 교회의 머리되신 승리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의 배후에 화려한 인자의 모습으로 버티고 계신다는 점을 보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배를 요동치게 하던 바람과 풍랑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여 잔잔하여 짐과 같이(막 4:35-41) 능력의 주께서 일곱 교회의 목자들을 상징하는 일곱별을 손에 쥐고서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에 몰아닥친 풍랑은 곧 잔잔하여 질 것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천상에, 교회는 지상의 존재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6장에서는 소위 인 재앙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인 재앙은 사실 재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승리, 전쟁의 파괴, 기근, 죽음, 신앙으로 인한 순교, 천재지변, 평화에 관한 표현들로써 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악순환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 반면에 4-5장에서는 인류의 역사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 즉 천상의 청와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역사가 목적 없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요 윤회의 역사도 아니요 오직 이 우주를 지으시고 만드신 이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지배아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상에, 인류는 지상의 존재임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제8-9장은 나팔재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들 재앙은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과 흡사합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열 가지가 일곱 가지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들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이 심판의 재앙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재앙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7장에서 구원함을 받아 천상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상에서 구원의 기쁨을 승리의 노래로 찬양하고 있고, 사단의 백성은 지상에 남아 나팔 재앙을 받고 아비규환의 소동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7장의 천상의 백성과 8-9장의 지상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의 백성의 완전한 구별과 분리를 회화적(繪畵的)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이 이집트인들에게만 내리고 고센 땅에 분리되어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주어졌던 것과 같습니다. 또 출애굽기 14-15장과 계시록 15장 2-4절에 나타난 장면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넌 후 해변에서 구원의 기쁨과 축제 분위기에 쌓여 있고, 이집트의 전차부대는 불과 유황으로 이글거리는 것 같은 홍해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 가는 모습과 같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멸하면서도 노아의 여덟 식구를 방주로 구원하신 것과 아브라함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면서도 롯과 두 딸을 구원하신 것과도 같습니다(눅 17:26-29).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은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이요 사랑의 행위인 것입니다. 마치 억류된 자국민을 구해내기 위해서 포격을 가하고 특공대를 파견하여 구출해 내는 것과 같은 행위인 것입니다. 또한 지상의 재앙과 천상의 큰 무리는 천국과 지옥의 광경을 묘사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제15-16장의 대접 재앙도 8-9장의 나팔재앙의 맥락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다만 다른 점은 대접재앙이 나팔재앙보다도 그 강도에 있어서 세배가 된다는 점입니다. 나팔재앙의 강도가 33퍼센트 일 때, 대접 재앙의 강도는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입니다. 14장 역시 7장과 마찬가지로 천상의 구원받은 무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사건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록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말할 뿐 미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문자적 성취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성도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제10-13장은 성도의 고난을 삼년 반으로 묘사한 중간계시를 보여 주고 있고, 그 반대로 17-19장에서는 성도에게 박해를 가했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심을 묘사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간계시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의 구세주이심을 입증하는 구원의 행위인 것입니다.
제20-22장에서 천상과 지상의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은 19장에서 백마타고 오시는 재림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됩니다.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시기 때문에 “충신과 진실”이란 이름으로 오십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짧은 성도의 수고가 끝나고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의 삶이 시작됨을 알리게 됩니다. 이 영광의 삶은 부활의 몸, 구속된 몸, 혹은 변형된 몸으로 시작됩니다. 성도는 이미 영혼의 구원을 통해서 지상 혹은 낙원에서 선취적으로 이 삶을 맛보며 누려왔으나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천상과 지상의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신천신지(新天新地)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완전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21-22장의 말씀은 이런 인류가 가진 마지막 소망을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에 담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계시록은 일정한 틀에 의해서 구성된 일곱 장의 큰 그림으로 설명된 시청각 설교이며, 마음 뭉클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담긴 멋진 한 편의 설교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설교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현실 속에서 승리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인내로써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계시록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우리 성도들에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 하나님이 알파와 오메가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또 장차 올 자요, 전지전능한 분이심을 굳게 믿고서 소망 중에 인내함으로 이기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마지막 날에 큰 상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우리 주님이 폭풍을 잔잔케 하실 교회의 머리되시며 성도의 구세주 되심을 굳게 믿고서 박해의 폭풍이든 이단의 폭풍이든 생활의 폭풍이든 그 폭풍이 무엇이든지간에 두려워하지 말고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인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월계관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셋째, 우리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굳게 믿고서 아무리 세상이 뒤집어져있고, 혼탁하고 혼란스럽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며, 그 누구라도 하나님을 당할 자가 없고,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본문의 말씀대로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이기고 큰 환난에서 벗어나 하늘 보좌방 앞에 펼쳐진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에 합류하게 될 것이며,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7:17)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넷째, 시련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장차 성도들에게 주어질 영원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없는 소중한 축복에 비하면 짧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믿고서 또 탄압하던 자들이 불과 유황과 연기로 영원히 타는 불 못에 들어갈 것을 굳게 믿고서 또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면 모든 약속들이 성취될 것을 굳게 믿고서 배교하지 말고 끝까지 소중한 믿음을 지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인내로써 믿음을 지켜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계시록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3: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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