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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67: 가나안 언약 성취에 대한 끈질긴 믿음(창 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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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029 2006.03.0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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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067: 가나안 언약 성취에 대한 끈질긴 믿음(창 50:1-26)

창세기 50장 1-14절은 147년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보낸 야곱이 남의 나라인 애급에서 죽어 그의 시신이 아들들에 의해서 본향인 가나안으로 운구 되어 선영에 장사되는 장면입니다. 그중 1-3절은 요셉이 40일제를 지내는 장면과 애급사람들이 70일간을 애곡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4-9절은 바로의 허락을 받은 요셉이 형제들과 함께 야곱의 시신을 메고 가나안 땅을 향해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10-14절은 본향에 당도한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야곱을 막벨라 굴에 장사지낸 후 애급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입니다.

비록 야곱이 남의 나라인 애급에서 죽었지만, 그가 본향인 가나안 땅에 묻히게 된 것은 죽어서라도 가나안 땅에 돌아가겠다는 야곱의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의 이 신념은 하나님의 가나안 약속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의 신념과 행동이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수천 년에 걸친 이스라엘 민족의 신념과 행동이 되어버린 집단무의식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야곱의 이 사건은 출애굽 사건, 바벨론유배 후 본토에 귀국하는 사건들, 주후 70년 예루살렘 붕괴이후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국에 이르기까지 3,800여년의 유랑 세월 속에서도 불굴의 투지로 본토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실현시키겠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의지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록 야곱은 죽었으나 가나안 땅에 대한 야곱의 신앙과 신념은 길이 살아서 이스라엘 민족공동체의 정신으로 자손대대에 걸쳐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5-21절은 야곱을 장사지낸 후 애급으로 돌아온 요셉의 형들이 과거 도단에서 요셉을 학대하여 우물에 가두고 끝내는 미디안 상단에 팔아넘겼던 사건으로 인해서 요셉으로부터 보복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그러자 요셉이 그들을 위로하여 안심시키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중 15-18절은 형들이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 한 번 요셉의 용서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19-21절은 이에 요셉이 간곡한 말로 형들을 위로하며 이스라엘 공동체의 결속을 꾀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단결과 협력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열두 개의 부족이 연합하여 이뤄진 나라입니다. 최후까지 살아남아서 이스라엘 민족의 명맥을 유지해 나간 부족은 유다 부족, 곧 유대인들입니다.

요셉의 권력은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살아있을 때에는 야곱이 아들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지만, 야곱이 죽고 없는 상황에서는 예상되는 요셉의 보복이 두렵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좋고 나쁜 사건들이 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작용하는 한, 사건에 개입된 인간들은 단지 하나님이 쓰신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야곱이 했던 신앙고백처럼, 이제까지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길러주신 삶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신앙에 입각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괴롭혔던 사람들조차도 미워하지 않고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나 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를 악역의 도구로 쓰지 아니하시고, 복의 도구로 삼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악역의 도구로 쓰이지 아니하고, 복의 근원이 되시고,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담는 귀한 그릇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시신이라도 그립고 정다운 고향산천 혹은 자신의 삶과 밀접했던 곳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인지상정에서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인 가나안에 가야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요셉의 유언대로 그의 유해를 가나안으로 옮겼습니다(출 13:19). 실로 이스라엘 백성은 애급에서 짧게는 215년 길게는 430년이란 오랜 세월을 지냈으면서도 결코 ‘가나안 언약’을 잊지 않았으며, 나아가 자신들의 민족정신으로 승화시켜 마침내 출애굽이라는 대역사를 일궈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은 과거 바벨론 제국에 유배되어 짧게는 70년에서 길게는 173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세월을 바벨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으로 이어지는 근동에서 지냈으면서도, 그들이 거주하는 땅보다 아주 못한 척박한 가나안 땅을 결코 잊지 않았으며, 마침내 돌아와 온갖 시련과 또 이웃나라들의 끈질긴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일궈나갔습니다.

애급의 고센 땅은 가나안 땅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바벨론이나 페르시아도 가나안 땅보다 월등히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혹은 결코 가나안 땅을 본 적이 없는 후손들조차도 가나안에 돌아가는 것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보다 더 위대한 것은 헬라제국을 거처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이어지는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도 독립국가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주후 68-73년과 132-135년 유대-로마전쟁에서의 패배로 나라가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음에도 무려 1800년이 넘는 세월을 나라 없이 핍박과 추방과 대학살이란 수모를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1948514일 선조들이 살아왔던 사막 같은 그 척박한 땅에 조국을 재건하였으며, 지난 7-80여 년간 사막을 옥토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서 오늘날에는 대한민국보다 훨씬 잘사는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최초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가나안 언약’에 대한 유대민족의 변함없는 믿음(히브리어로 ‘에무나’라 함. 땅과 나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을 말함.), 이 믿음이 무려 사천년 가까이 이어져 온 믿음입니다.

이처럼 신앙인들에게는 ‘가나안’이라는 소망의 영역이 반드시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애급과 같은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조의 언약을 자기 것으로 삼고 소망을 잃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신약의 성도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나라 가나안을 늘 소망하면서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창세기 50장에서 요셉은 자기는 죽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권고하실 것이라 말합니다. 이처럼 요셉은 변치 않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시시각각변하는 인간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요셉은 사람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무한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은 여기서 끝나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식들을 권고할 수 없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변치 않고 권고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권고하신다는 말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24-25). 또 출애굽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출 13:19)라는 표현을 보면, 요셉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권고를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님들도 사람의 권고를 바라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권고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결정적인 위기를 당했을 때 변함없이 권고하실 수 있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가 ‘유라굴로’ 폭풍을 만나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찾아와 천사를 통해 바울을 권고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권고를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요셉은 그 형제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24절)고 말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굳게 믿는 신앙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일찍이 요셉은 꿈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모든 고난과 유혹과 억울함까지도 참아 낼 수 있었습니다. 실로 그의 신앙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미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그 약속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도 복도 상급도 다 당신의 약속을 통해 이루십니다.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가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입는 것도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약속을 믿다가 우리는 종종 낭패를 당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아서 좋고, 또 성취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본문을 보면 요셉은 출애굽 때 자기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부탁을 합니다(25절). 이것은 그가 애급에서 온 생애를 보내고 비록 거기서 죽지만 그의 마음은 아버지 야곱처럼 항상 약속의 땅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후에 그의 해골은 모세가 수습하여 출애굽 때 가져나오고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에 가나안 땅 세겜에 묻히게 됩니다(수 24:32). 요셉이 일생동안 완벽하게 신앙인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언제나 약속의 땅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우리가 비록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뿌리박고 살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늘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땅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여기가 우리의 종착지가 아니라, 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최종적이고 영원한 목적지란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야곱이나 요셉의 삶에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고난을 믿음으로 승화시켜 영광스런 승리자들이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끝까지 믿음의 끈을 놓지 않고 살 때 하나님은 우리 대뿐 아니라 자손대대로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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