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005: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본문
창세기005: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아름답다’는 뜻일 뿐 아니라, ‘선하다,’ ‘충실하다,’ ‘기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1장에서만 일곱 차례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진실합니다. 평가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이 평가에 오류가 있을 수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심판이라 해도, 운동경기 때 보면, 오류판정을 내리는 경우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오심이 많았습니다. 한국과 그리스가 맞붙은 축구시합에서 그리스 선수가 터뜨린 첫 골은 명백한 핸들링 반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그의 반칙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남자체조에서는 더더욱 억울한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양태영(경북체육회) 선수가 평행봉 출발점수에서 10점을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이 9.9를 줌으로써 미국의 폴 햄에게 금메달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국제체조경기연맹(FIG)은 오심을 인정하면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 모든 심판에게 엄격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국제체조경기연맹은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는 일체 받아들이지 않으며 심판 판정이 일단 내려진 뒤에는 절대 번복은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양태영의 억울함은 풀릴 길이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실수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아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아신 것은 숙명적으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고 틀림이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았다’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고 무엇인가를 잘 못 알고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았다’고 하셨으면, 그것은 반드시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피조물 세계를 ‘좋다,’ ‘좋은 것이다,’ ‘선하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다 선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악한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주시라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닙니다. 상당부분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인간들이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자연만물이란 거대한 집을 인간에게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활용하여 스스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채웠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것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선하게 쓰일 수도 있고, 악하게 쓰일 수 있는 중립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악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도 본래 악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과, 물질과 함께 계약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계약이 이행되고 못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요, 인격체라는 점은 인간이 곧 책임적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한 일에 쓰일 도구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주셨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책임적 존재인 인간이 선하게 쓰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그것을 악하게 사용했을 때에 흉기로 변하여 악이 발생되고 죄가 인간세계에 유입이 되었습니다. 악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좋은 것들을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욕망이 인간의 신이 될 때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악한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선하게 사용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 헬라세계의 영지주의자들처럼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나누어 이원론적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는 악한 것이 없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선용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것을 정죄하기보다는 새롭게 하는 영으로 재창조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어야 마땅한 인간들을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새사람으로 재창조하셨고, 타락한 이 우주도 멸하시기보다는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롬 8:18-23; 벧후 3:10-1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재창조의 영입니다.
셋째,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기로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살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자연법칙에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자연법칙은 엔트로피법칙으로써 모든 것이 죽음을 향해서 움직이는 열역학 제2법칙을 말합니다.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길든지 짧든지 간에 모두가 다 죽음을 향해서 질주하도록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요 숙명입니다. 이 숙명과 운명이 시작된 시점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인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중립적 가치를 지니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길을 들이고 가꾸면 선하게 되고, 버려두면 망가지고, 적자생존과 양육강식 또는 먹이사슬에 매이게 됩니다. 선하게 활용하면 선한 결과를 낳게 되고, 악하게 사용하면 악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인간의 본능도 중립적인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본능을 악하게 보거나 나쁘게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능은 생명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능을 길들이지 아니하면, 동물보다 더 악해질 수가 있습니다. 동물은 자기가 먹을 만큼만 죽이지만, 인간은 지배와 소유를 위해서 일시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피조물은 말 그대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해도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 불완전한 것 자체가 성서적으로는 죄입니다. 성경에서 ‘죄’란 개념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부족이 결국은 죄를 낳기 때문인데요, 피조물은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죄를 친구 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것은 거룩한 것이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은 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다 선하고 좋은 것이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도, 또 하나님이 죄를 만들지 않았더라도, 피조물의 속성상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죄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자연만물의 타락까지도 미리 아시고, 만세전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피조물의 죄와 연약함을 담당하게 하시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구원키로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예정하셨고, 하나님 자신에게는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경륜이요, 바울의 말을 빌리면,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그 책임을 끝까지 지시기 위해서 인류를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지극한 사랑과 경륜을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타락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신음하는 자연만물까지도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회복시켜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세계를 도래시킬 것입니다.
결론으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일을 하십니다. 그분에게는 악함이 없으십니다. 잘못된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조차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들의 일에 개입하시면서 고치시는 살림의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해서 완벽하게 회복시켜 놓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이들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죽임의 일은 사단의 일입니다. 어둠의 일입니다. 혼돈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살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살림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거룩한 일입니다. 살림의 일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아름답다’는 뜻일 뿐 아니라, ‘선하다,’ ‘충실하다,’ ‘기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1장에서만 일곱 차례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진실합니다. 평가의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이 평가에 오류가 있을 수없습니다. 아무리 유능한 심판이라 해도, 운동경기 때 보면, 오류판정을 내리는 경우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도 오심이 많았습니다. 한국과 그리스가 맞붙은 축구시합에서 그리스 선수가 터뜨린 첫 골은 명백한 핸들링 반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판은 그의 반칙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남자체조에서는 더더욱 억울한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양태영(경북체육회) 선수가 평행봉 출발점수에서 10점을 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진이 9.9를 줌으로써 미국의 폴 햄에게 금메달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국제체조경기연맹(FIG)은 오심을 인정하면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 모든 심판에게 엄격한 제재를 가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국제체조경기연맹은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는 일체 받아들이지 않으며 심판 판정이 일단 내려진 뒤에는 절대 번복은 있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양태영의 억울함은 풀릴 길이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실수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아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아신 것은 숙명적으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고 틀림이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았다’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고 무엇인가를 잘 못 알고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았다’고 하셨으면, 그것은 반드시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피조물 세계를 ‘좋다,’ ‘좋은 것이다,’ ‘선하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은 다 선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는 악한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주시라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닙니다. 상당부분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인간들이 이용해서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자연만물이란 거대한 집을 인간에게 주셨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활용하여 스스로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채웠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만든 것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선하게 쓰일 수도 있고, 악하게 쓰일 수 있는 중립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악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악하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도 본래 악하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과 의지를 가진 인격체로서 만들어졌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과, 인간과, 물질과 함께 계약관계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 계약이 이행되고 못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요, 인격체라는 점은 인간이 곧 책임적 존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한 일에 쓰일 도구로써 세상의 모든 것을 주셨고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책임적 존재인 인간이 선하게 쓰겠다는 약속을 파기하고 그것을 악하게 사용했을 때에 흉기로 변하여 악이 발생되고 죄가 인간세계에 유입이 되었습니다. 악은 하나님의 피조물의 좋은 것들을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욕망이 인간의 신이 될 때 발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악한 것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선하게 사용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고대 헬라세계의 영지주의자들처럼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나누어 이원론적으로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이 세상에는 악한 것이 없다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선용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것을 정죄하기보다는 새롭게 하는 영으로 재창조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어야 마땅한 인간들을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새사람으로 재창조하셨고, 타락한 이 우주도 멸하시기보다는 구속하시고 새롭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롬 8:18-23; 벧후 3:10-13).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재창조의 영입니다.
셋째,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 않기로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살게 되었으며, 오늘날의 자연법칙에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자연법칙은 엔트로피법칙으로써 모든 것이 죽음을 향해서 움직이는 열역학 제2법칙을 말합니다.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길든지 짧든지 간에 모두가 다 죽음을 향해서 질주하도록 프로그램이 입력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요 숙명입니다. 이 숙명과 운명이 시작된 시점이 바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때인 것입니다. 이 때로부터 존재하는 모든 것은 중립적 가치를 지니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길을 들이고 가꾸면 선하게 되고, 버려두면 망가지고, 적자생존과 양육강식 또는 먹이사슬에 매이게 됩니다. 선하게 활용하면 선한 결과를 낳게 되고, 악하게 사용하면 악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인간의 본능도 중립적인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본능을 악하게 보거나 나쁘게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능은 생명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능을 길들이지 아니하면, 동물보다 더 악해질 수가 있습니다. 동물은 자기가 먹을 만큼만 죽이지만, 인간은 지배와 소유를 위해서 일시에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연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피조물은 말 그대로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해도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맙니다. 불완전한 것 자체가 성서적으로는 죄입니다. 성경에서 ‘죄’란 개념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부족이 결국은 죄를 낳기 때문인데요, 피조물은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죄를 친구 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이유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것은 거룩한 것이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것은 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다 선하고 좋은 것이며, 보시기에 좋았더라도, 또 하나님이 죄를 만들지 않았더라도, 피조물의 속성상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죄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자연만물의 타락까지도 미리 아시고, 만세전부터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피조물의 죄와 연약함을 담당하게 하시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자들을 구원키로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대로, 하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구원을 예정하셨고, 하나님 자신에게는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예정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경륜이요, 바울의 말을 빌리면,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그 책임을 끝까지 지시기 위해서 인류를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님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지극한 사랑과 경륜을 믿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타락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신음하는 자연만물까지도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에 회복시켜 고통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영원한 세계를 도래시킬 것입니다.
결론으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한 일을 하십니다. 그분에게는 악함이 없으십니다. 잘못된 일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조차도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간들의 일에 개입하시면서 고치시는 살림의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모든 것을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해서 완벽하게 회복시켜 놓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믿는 이들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은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선하다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보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죽임의 일은 사단의 일입니다. 어둠의 일입니다. 혼돈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악한 일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살림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살림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거룩한 일입니다. 살림의 일에 힘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전글 창세기004: 빛이 있으라(창 1:3) 05.03.20
- 다음글 창세기006: 존재의 가치와 의미(창 1장) 05.03.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