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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4: 야훼 하나님의 성품(출 3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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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939 2007.04.1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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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야훼 하나님의 성품(출 34:1-35)

moses_rembrandt.jpg춘분이 지난 직후 찾아온 보름에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은 그 다음 보름에 시내산 기슭에 도착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곳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언약식을 체결하고, 언약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친히 십계명을 새겨주신 두 돌비를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그 두 돌비는 백성들이 받아보기도 전에 금송아지 사건에 분노한 모세가 그들을 향해서 던지는 바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출애굽기 34장은 두 번째 십계명 돌비를 받기 위해서 모세가 다시 산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언약회복의 증거로 새로운 돌비 두 개를 모세에게 깎아 만들게 하셨다(1절).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혼자 시내산에 오르게 하셨다(2-4절).

첫 번째 언약체결과 두 번째 언약갱신에서 다른 점은 두개의 돌비이다. 첫 번째 것은 하나님께서 손수 마련하시고 십계명을 새겨주신 것인데, 두 번째 것은 모세가 깎아 만든 두 개의 돌비에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새겨주신 것이다. 여기서 주는 교훈은 세 가지이다. 첫째, 언약을 새겨 둘 마음의 판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새 언약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둘째, 첫 번째 것과는 달리 두 번째 돌비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신적 권위와 위엄이 감소되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한다는 경고이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범죄 사실을 두고두고 기억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긴 것이다.

5-9절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반포하시면서 당신의 자비로운 성품을 소개하고 계신다(5-7절). 모세는 그 같은 하나님의 성품에 의존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8-9절).

여기서 반포된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여호와’는 원래 4개의 히브리어 자음(YHWH)으로 ‘야훼’라고 읽혔다고 한다. 주전 6세기 경 바빌론 유배가 끝난 뒤, 특히 주전 3세기부터 유대인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첫째, 유대교는 그리스 로마세계에서 개종자들을 얻어 보편종교로 발전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른 모든 신들에 대해서 보편적인 주권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서 ‘신’이란 뜻을 가진 일반명사 ‘엘로힘’을 ‘야훼’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둘째, 야훼라는 이름은 너무 거룩하여 발언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당 예배에서는 ‘야훼’를 ’나의 주‘란 뜻의 ’아도나이‘로 발음했는데, 구약성서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 역은 이 단어를 ’주‘란 뜻의 ’키리오스‘로 번역했다. 또 주후 6-10세기경에 히브리어성서 본문의 간행작업을 벌인 마소라 학자들은 ’야훼‘를 뜻하는 히브리어 자음 4개(YHWH)에 히브리어 ’'아도나이‘ 또는 ’엘로힘‘의 모음부호들을 붙여서 사용했다. 이 때문에 ’여호와‘(Jehovah, YeHoWaH)라는 인위적인 이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의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맛소라 학파의 전통을 따라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19-20세기 성서학자들은 다시 ’야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야훼‘는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Yahweh-Asher-Yahweh)라는 뜻이라고 한다.

Moses_Aaron_Chagall.jpg이 ‘야훼’ 하나님의 성품이 6-7절에서 밝혀져 있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렘 31:29-30, 겔 18장과 비교,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은 은혜로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은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다. 사랑을 천대까지 베풀고,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시지만, 형벌을 받아야할 자는 결단코 죄를 사하지 않으시고 아비의 악을 자녀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의존해서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릴 수 있었다. 9절,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사랑의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언약을 맺으셨다. 그 내용이 10-28절이다. 여기서 언급된 갱신언약의 내용은 이미 주어진 것과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내용은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가나안 정복 때에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이적으로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다(10절). 둘째, 가나안 정착 후에 우상문화에 젖은 원주민들과는 그 어떤 통혼이나 통교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11-17절). 셋째, 23장에 언급된 3대 절기에 관한 언급으로써 이방의 타락한 제사법을 버리고 참되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셨다(18-26절). 넷째,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두 돌비에 기록하시는 장면(27-28절)이다. 여기서 언급된 언약은 가나안 정착을 염두에 둔 것들이다. 우상숭배와 관련된 계명들이 다시 언급된 이유는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이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로 오염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실수와 허물을 많이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moses_jusepederibera.jpg하나님의 자비로운 결정에 따라 언약을 갱신하고, 하나님께서 새겨주신 십계명의 두 돌비를 가지고 모세는 하산한다. 그 내용이 29-35절이다. 여기서 하산하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나타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백성들이 공포를 느끼게 되고(29-30절), 그것을 알아챈 모세는 그 두려움을 누그러뜨린 후 백성들에게 언약을 재차 선포한다(31-32절). 그리고 그 후로 모세는 회막에 들어가 기도할 때를 빼고는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에 항상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후담이 기록되어 있다(33-35절). 그러나 이 같은 일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가 언제쯤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리는 모세의 얼굴에 빛났던 광체가 결코 모세의 인격이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서 누리는 기쁨과 환희가 얼굴에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었다는 점에서 나타난 광채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34장에서 마음에 새겨야할 것은 야훼 하나님의 성품이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세처럼 우리도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에로 나아갈 수 있고, 우리의 소원을 아뢸 수 있다. 우리의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의 소원들을 다 들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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