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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32: 보이는 신(출 3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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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613 2007.03.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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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보이는 신(출 32:1-35)

Aaron_golden_calf_altar.jpg부부사이에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가? CJtvN채널에서 방영한 ‘스캔들’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다. 영화배우 독고영재가 현장르포형식으로 진행하였는데, 실제처럼 보이게 꾸민 연출된 프로그램(fake documentary)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부부사이에 혹은 가족 간에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이 불륜이고, 배우자나 가족을 배신하는 불륜행위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장 크게 분노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과 부부의 연을 맺은 민족이다.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약속했고,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킬 것을 엄숙히 서약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서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다른 신, 곧 이집트의 아피스(Apis) 신을 본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광란의 축제를 여는 매우 불행한 일을 저질렀다. 이에 모세와 하나님은 그 분노를 가누기 힘들어 했고, 급기야 모세는 하나님이 친히 써주신 두 돌비를 그들을 향해서 던졌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쓸어버릴 생각까지 하셨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답답한 일인가?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은 어쩌면 가장 큰 시험거리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점 때문에 늘 보이는 신인 우상에 유혹을 받았다. 특히 여신상에 유혹을 받았다. 현대인들도 그 점 때문에 늘 보이는 신인 우상에 유혹을 받는다. 재물의 신, 명예의 신, 권세의 신, 특히 불륜의 신의 유혹을 받는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눈으로 보는 하나님이 아니라, 귀로 듣는 하나님이다. 타 문화권의 종교들에는 신화도 있고, 여신도 있고, 우상이나 형상이 있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도 보고, 엎드려 절하고, 제물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에는 이와 같은 것들이 없다. 하나님은 모습이 없다. 보이지도 않는다. 볼 수도 없다. 이런 점이 종종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히 보이는 하나님을 찾는 이들에게 심한 갈등과 혼란을 초래한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보는 종교가 아니라 듣는 종교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타 종교들과 달리 보고 만져 볼 수 있는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신이 아니라 살아 계셔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마음의 귀가 필요하다. 또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1장 1-2절에서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적고 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말씀의 기초 위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셨다.

Dan_santuary.jpg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다. 십계명을 통해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의 귀를 열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나무나 돌로 새긴 우상을 만들거나 금과 은을 입힌 송아지와 같은 동물의 형상을 만들어 거기에 절도하고 빌기도 한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유혹을 많이 받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마음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시간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 눈으로 보는 것에 훨씬 많은 유혹을 받는다. 평소에 하나님과 핫라인이 설치되어 있어서 통화훈련이 되지 못한 사람, 또 평소 하나님과 접속을 시도하지 않던 사람은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어둡고 암담한 현실만이 짚더미처럼 부각되어서 해결의 의지를 상실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의혹과 회의에 빠진 자들이 바로 출애굽기 32장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이들에게서 나타난 문제점은 네 가지이다.

첫째,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동행하심을 여러 경로들을 통해서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떨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섬겼다. 이집트에 내려진 10가지 재앙들로부터 해를 입지 않고 모두가 구원받았고, 갈라진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으며, 하나님이 매일 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식물을 삼고 있었다.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체험했던 그들이 한 순간의 불안으로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일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어렵고 암담한 일이 발생하게 되면 어김없이 불평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거짓 신들에 자신의 운명을 내맡기려드는 우리 자신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눈에 보이는 다른 신을 요구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을 향해,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1절)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 이유를 모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같은 사실은 여태껏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보이는 모세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우상을 요구했다는 것은 그들이 보이지 않는 참 하나님을 인정치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이외에 그 어떤 피조물도 인간을 구원할 참 신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지 못한 우매한 백성들이었다. 더욱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금송아지를 향해서 아론이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고 외친 것은 우매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두워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보고 듣는 것을 자기 신으로 삼아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가?

셋째,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만 투자한다. 보이는 신, 보이는 세계, 보이는 육체에 투자한다.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기 위하여 자기들이 차고 있던 “금 고리를 빼어”(3절) 가져왔다. 그들은 정말 열정적으로 보이는 신, 우상을 위해 투자했다. 오늘날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에 자기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투자하는가? 그러나 플라톤은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바울은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후 4:18)고 했다. 야고보는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약 4:14)고 했다.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돌아보아야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참 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넷째, 어리석은 백성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금송아지 우상 앞에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다”(6절)고 했다. 이것은 근동과 그리스 로마지방의 여신을 모신 신전들에서 성행됐던 광란의 예배를 반영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를 섬기는 예배에서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음란한 예배였다. 하나님 앞에서 드려야할 경건한 예배의 모습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행태였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감각적인 예배를 원하는 것 같다. 웃기고 즐겁고 재미있는 예배를 원하는 것 같다. 교회마다 보여주는 영상예배에 주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신자들이 말씀예배의 특성을 가진 개신교회들을 떠나서 보는 예배의 특성을 가진 가톨릭교회로 옮겨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려하기보다는 먹고 마시며 뛰고 노는 놀이예배를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을 따라가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영원하고 참된 것에 마음을 여는 성도들이 되도록 하자. 그럴 때 우리는 참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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