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요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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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요 12장)
요한복음 12장은 이해가 쉽지 아니한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리아가 노동자 일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값비싼 나드 향유 0.5리터를 예수님의 더러운 발에 붓고 자기 몸의 귀중한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가하면, 왕이 백마를 타고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가하면, 그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강성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을 말하고, 그런 자신을 믿는 것이 영생의 길이요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회계를 담당했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행위를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했고(4-6), 다른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와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강림하신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2:16-17). 하물며 메시아임을 입증할 수 있는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 곧 모세처럼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하고, 엘리야처럼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게 하고, 병의 기름을 마르지 않게 했던 것 같은 메시아만이 행할 수 있다고 믿었던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로서야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 여러 곳에서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마 12:39)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된지 삼일 만에 부활하실 사건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고전 1:22-2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뵙자고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다짜고짜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인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참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는 지식을 얻게 할 지혜를 구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예수님을 찾아왔던 헬라인들이 그와 연관된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으리라고 봅니다. 그들도 역시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죽음에 관련한 말씀을 듣고 어리석고 미련한 것쯤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이 값비싼 나드 향유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아챘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하신 바울의 말씀처럼 학식을 갖춘 유대인들에게는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12:40) 하시고 마리아와 같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눈을 뜬 것이 공양미 삼백석 때문이 아니라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백미 삼백석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던 심청이의 효심 때문이었던 것처럼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그리스도가 노동자 일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값비싼 나드 향유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반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값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재물보다 소중한 가치, 명예나 지위보다 더 소중한 가치, 이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하는 사람만이, 왜 왕이 백마를 타고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였는가, 또 그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강성하게 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가, 또 그러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하는 길이요 빛과 생명을 얻는 진리이며, 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아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마 13:44) 사람과 같고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마 13:46) 사람과도 같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해당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우 역설적인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던지는 일은 분명 영광 받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이나 성도들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나 희생은 영광으로 보상되는 크고 소중한 가치에 목숨을 거는 투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보다 크고 가치 있는 소중한 일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사람들로 그분의 이름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주님이라 부르게 하셨습니다(빌 2:5-11).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영광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가치관을 둬야겠습니까?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습니까?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돈이나 명예나 권세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12:44), 빛의 자녀(12:36)가 되는 길이며, 어둠에 거하지 아니하고(12:46),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생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많은 열매를 맺으며,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영생토록 보존 받는(12:25) 변화의 능력이요, 빛과 생명의 길입니다.
성서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빵의 문제를 걱정하며 세상의 일에 매인 사람들은 메시아를 찾아 헤매되 그들에게 세상의 일과 빵 문제를 해결해줄 육신의 메시아를 찾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분만이 그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란 사실과 “하늘로써 내려온 산 떡”(6:50)이란 사실을 믿으면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우리 믿는 성도들이 왜 백마를 타지 못하고 나귀를 타야하는가, 구원을 약속받고도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은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백마타고 재림하실 그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승리자들의 개선행렬에 서게 될 것입니다(계 19:14).
요한복음 12장은 이해가 쉽지 아니한 말씀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리아가 노동자 일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값비싼 나드 향유 0.5리터를 예수님의 더러운 발에 붓고 자기 몸의 귀중한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는가하면, 왕이 백마를 타고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는가하면, 그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강성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을 말하고, 그런 자신을 믿는 것이 영생의 길이요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그 때문에 회계를 담당했던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행위를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했고(4-6), 다른 제자들도 깨닫지 못하다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와 성령님께서 오순절 날 강림하신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2:16-17). 하물며 메시아임을 입증할 수 있는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 곧 모세처럼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먹게 하고, 엘리야처럼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않게 하고, 병의 기름을 마르지 않게 했던 것 같은 메시아만이 행할 수 있다고 믿었던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로서야 메시아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서 여러 곳에서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고,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마 12:39)고 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된지 삼일 만에 부활하실 사건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울도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고전 1:22-2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뵙자고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다짜고짜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인들은 보이지 아니하는 참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는 지식을 얻게 할 지혜를 구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예수님을 찾아왔던 헬라인들이 그와 연관된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으리라고 봅니다. 그들도 역시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죽음에 관련한 말씀을 듣고 어리석고 미련한 것쯤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이 값비싼 나드 향유보다 더 고귀하고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아챘는지도 모릅니다. 신앙의 신비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하신 바울의 말씀처럼 학식을 갖춘 유대인들에게는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12:40) 하시고 마리아와 같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소유한 자들에게는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눈을 뜬 것이 공양미 삼백석 때문이 아니라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백미 삼백석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알았던 심청이의 효심 때문이었던 것처럼 마리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그리스도가 노동자 일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값비싼 나드 향유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반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노예 한 사람값에 팔아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재물보다 소중한 가치, 명예나 지위보다 더 소중한 가치, 이 가치를 예수님에게서 발견하는 사람만이, 왜 왕이 백마를 타고 수도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였는가, 또 그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강성하게 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가, 또 그러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생하는 길이요 빛과 생명을 얻는 진리이며, 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아는 지혜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지혜를 소유한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마 13:44) 사람과 같고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마 13:46) 사람과도 같습니다. 마리아가 바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해당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영광이란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우 역설적인 설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에 목숨을 던지는 일은 분명 영광 받을 일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이나 성도들의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나 희생은 영광으로 보상되는 크고 소중한 가치에 목숨을 거는 투자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보다 크고 가치 있는 소중한 일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예수님의 이름을 지극히 높이셨고, 모든 사람들로 그분의 이름 앞에서 무릎을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주님이라 부르게 하셨습니다(빌 2:5-11).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영광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가치관을 둬야겠습니까?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겠습니까?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돈이나 명예나 권세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12:44), 빛의 자녀(12:36)가 되는 길이며, 어둠에 거하지 아니하고(12:46),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생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땅에 떨어져 죽고 많은 열매를 맺으며,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영생토록 보존 받는(12:25) 변화의 능력이요, 빛과 생명의 길입니다.
성서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빵의 문제를 걱정하며 세상의 일에 매인 사람들은 메시아를 찾아 헤매되 그들에게 세상의 일과 빵 문제를 해결해줄 육신의 메시아를 찾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믿었고, 그분만이 그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란 사실과 “하늘로써 내려온 산 떡”(6:50)이란 사실을 믿으면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우리 믿는 성도들이 왜 백마를 타지 못하고 나귀를 타야하는가, 구원을 약속받고도 십자가의 고난을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은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백마타고 재림하실 그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 승리자들의 개선행렬에 서게 될 것입니다(계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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