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강해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강해설교 KCCS Digital Archive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53)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2,088 2003.08.03 17:33

본문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53)

예수님께서 초막절 끝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37-38절)고 외치셨는데 그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생수의 강”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39절)고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님은 우리 인간들의 목마름을 해결해줄 생수의 강이란 말이 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7장은 초막절을 여섯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초막절을 언급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생수의 강”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나하는 추측을 낳게 합니다.
초막절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바로 가나안 땅으로 향하지 못하고 사람살기 어려운 광야에서 40년이나 유랑하며 천막생활을 하였습니다. 광야라서 달리 먹고 살만한 식물도 없었고 물도 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환경을 오랫동안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먹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었는데,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 때, 그들의 조상 청교도들이 미 대륙에 건너와 겪었던 고초와 신앙을 기리기 위해서 그들이 먹었던 칠면조와 호박파이를 먹듯이, 유대인들도 조상들이 광야에서 천막생활을 하며 고생 중에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마셨던 것을 기린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둘째, 이스라엘 민족은 한해에 세 번 추수감사제를 드립니다. 초실절이라 하여 유월절 안식일 다음날에 첫 수확한 보릿단을 바치는 축일이 있고, 맥추절은 그로부터 50일째가 되는 날(오순절)에 첫 수확한 밀을 봉헌하는 축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추절과 동일한 초막절에 7일간 지키는 추수감사제가 있습니다. 초막절의 경우는 레위기 23장 39-43절의 말씀대로 첫날에는 아름다운 실과와 종려 나뭇가지와 시내버들을 들고 춤추며 하나님께서 비를 주셔서 농사를 잘 짓게 하시고 수확하게 하신 것을 감사하는 축제입니다. 또 조상들의 광야생활을 기리기 위해서 초막을 짓고 7일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축제입니다. 수확을 마치고 먹고 쓸 것이 풍성한 바로 그 순간에 가난하고 힘들었던 생활을 회상하고 체험해보는 뜻 깊은 축제인 것입니다. 가졌을 때 갖지 못한 때를 기억하고 갖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초막절이 갖는 또 다른 의미입니다.
초막절 때 성전에서는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물을 붓습니다. 보통은 포도주를 붓지만 이 날만큼은 제사장과 함께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물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37절 말씀과 연결됩니다. 물을 부을 때, 그들은 이사야서와 시편의 말씀을 낭송합니다. “풍성한 비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년에도 풍성한 비를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원합니다. 축제는 칠일동안 계속 되는데 특히 마지막 날을 하나님의 사죄의 날로 선언하고, 실로암 연못에서 떠온 물을 계속해서 제단에 붓고 나팔을 불며 종려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호하면서 춤을 춥니다. 바로 이 때, 곧 초막절 큰 날에 모든 축제가 절정을 향해 내달릴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서 초청의 목청을 높이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37-38절).
요한복음의 주제는 변화입니다. 그 변화의 능력은 믿음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믿으면 찾아오는 변화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고 했고, 마리아의 믿음이 물을 포도주 되게 하였으며, 예수님을 만난 니고데모의 율법이 복음으로 변했고, 수가성 여인의 절망이 희망으로 변했으며, 왕의 신하의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제자들이 폭풍 중에서 예수님을 배로 영접하였을 때, 폭풍은 멈췄고, 그들은 가려던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7:38-39)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님을 생수처럼 넘쳐나게 하겠으며, 인생의 문제들로 목말라하는 자들에게 조상들이 광야에서 마신 반석의 생수처럼 시원하게 해결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목마른 자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목마른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가나혼인잔치의 혼주는 포도주가 떨어져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난한 민중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방황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목 타게 기다리던 자들이었습니다. 율법학자 니고데모는 참된 진리에 목말라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애정에 목말라 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고 싶은 목마름에 한순간도 눈을 부칠 수 없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의 환자는 38년을 한결같이 도움의 손길을 목 타게 기다린 사람이었습니다. 폭풍을 만난 제자들은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목마름에 애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고 하셨습니다.
고대인들은 흐르는 강물을 생수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주후 100년경에 기록된 ꡔ열두 사도들의 가르침ꡕ 7장 「세례」부분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살아 있는 물로 세례를 주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살아 있는 물”은 웅덩이에 고여 있는 썩은 물과는 달리 강물이나 샘물처럼 움직이는 신선한 물을 말합니다. 피부병 환자를 정하게 할 때 살아 있는 물을 사용했고(레 14장), 기타 정결례를 행할 때도 살아 있는 물을 사용하였습니다(민 19:17).
물은 융통성이 있고, 유연하면서도 흐르는 물은 왕성한 힘을 지닙니다. 물은 변화의 명수입니다. 열을 받으면 수증기로 변하고, 기온이 떨어지면 서리나 어름으로 변하고, 때로는 창공에 흐르는 구름으로 또는 촉촉이 내리는 비로 변합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서 물은 변합니다. 어떠한 모양이라도 물은 재빨리 적응해갑니다. 물은 생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이자 무수한 생물들이 더불어 사는 터전이면서 더 넓은 대양을 향해 쉼 없이 전진하며 더러운 것들을 흡수하여 정화해냅니다.
예수님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이런 생수의 성령님을 샘솟듯 부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시면 가뭄으로 거북이등처럼 메말라있던 심령이, 가정의 형편이, 삶의 답답증이 시원하게 해결됩니다. 빵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이, 야곱의 우물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이, 실로암 연못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7:37-38절). 또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