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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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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1,318 2003.08.16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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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1-11)

[오후 성경공부 내용]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변화의 주체자이면서 정작 스스로는 변치 않는 로고스, 독생하신 하나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새 시대, 곧 교회시대, 은혜시대, 복음시대, 성령시대를 활짝 여실 분으로 소개하였고, 세례자 요한을 예수님의 증거자로 소개하였습니다. 2장에서는 빛과 생명을 주는 첫 표적인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표적을 소개하였고, 3장에서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이 예수님을 믿고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되는 거듭남의 비밀을 말하였으며, 4장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릴 영적예배와 민족과 신분의 차별이 없는 교회시대의 복음의 특징을 말하였습니다. 5장에서는 율법과 안식일문제를 다뤘고,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에도 빛과 생명의 일 곧 살림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장에서는 메시아 됨의 표적인 오병이어를 소개하였고,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심을 밝혔습니다. 7장은 다시 율법문제로 돌아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일임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8장 1-11절에서는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성이 변호인도 없이 고소인들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예수님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이 여성은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분명히 어겼고, 또 신명기 22장 22-24절에는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하든지, 처녀인 여자가 약혼 후 외간남자와 통간하면 돌로 쳐서 죽이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율법대로라면 이 여성은 성문 밖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예수님 앞에 서게 된 것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계략 때문이었습니다. 4-6절을 보면,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또 타의든 자의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목숨을 구하는 큰 행운을 얻는 일입니다. 비록 좋은 만남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만난 이 여성은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목숨도 구하고 영혼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세 가지 점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율법에 명한 것은 간통죄를 범한 남녀 모두를 성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여자와 통간한 남성을 데려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 여성을 정죄할만한 정의로움이 그들 속에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흑암아래서 행하는 것이요,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며, 눈멀고 귀멀고 우둔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행위임을 그들이 알지 못한 점입니다. 하물며 빛과 생명의 주(主)이시며, 은혜와 진리의 주이신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한 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아니한 것보다 자신을 통해서 나타난 성령님의 역사를 믿지 아니한 것이 더 큰 죄라고 말씀하셨고, 사함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32). 셋째는 이 세상에 죄 없는 깨끗한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몸을 굽히시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언가를 쓰셨습니다. 무엇을 쓰셨는지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고소자들의 흥분과 외침이 가라앉고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셨거나 답변을 생각하고 계셨는지 모를 일입니다. 7절에 “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신 말씀은 흥분이 가라앉고 예수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를 궁금해 하면서 답변을 기다리는 침묵이 어느 정도 흐른 다음에 하신 것입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죄 없는 자만이 남을 정죄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말로 율법의 완전한 해석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율법은 온전히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의 잣대이지 죄인이 죄인을 심판하고 정죄하란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말씀에 누구도 감히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정욕문제에 ”떳떳하다“고 할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서기관은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정욕을 참지 못하고 한순간 죄를 범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그는 살그머니 돌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윗 바리새인도 엊그제 음란영화 포스터에 한눈팔다가 공사 중인 하수구에 빠진 일이 생각났습니다. 시장바구니 들고 배추 사러 갔다가 댄스교습소에서 우연히 만난 제비씨와 몰래 놀아난 라합 사모님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로소 자신들도 예외 없이 간음한 여인과 다를 바가 없는 죄를 범한 죄인들임을 깨달았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인해서 죽임의 율법이 살림의 복음으로 변했습니다. 처참한 사형장이 될 뻔한 자리가 기쁨의 눈물이 쏟아지는 구원의 장소로 변했습니다. 흑암에 갇혀 살았던 자들이 양심의 빛을 찾았고, 잘못된 율법의 이해로 인해서 살인자가 될 뻔했던 자들이 선량한 시민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개죽음을 당할 뻔했던 이 여성도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고소자들과 간음한 여인 모두를 살려내는 놀라운 일을 해내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메시아 됨의 표적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 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조차 이 가련한 여인을 정죄하지 아니 하시고 갱생의 길을 걷게 하셨다는 점입니다. 10-11절 말씀에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였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말씀은 이 여인에게 죄가 없다는 말씀이 아니라, “네가 받을 형벌을 내가 대신 십자가에서 받겠으니, 너는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죄인에게 죗값을 물으실 수 있는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죗값을 간음한 여인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자신에게 묻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살림의 일을 하시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살림의 일을 하는 방법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살림의 일이 희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빛과 생명의 일을 할 수없습니다. 초가 제 몸을 녹여 기름삼아 불사를 때 빛을 낼 수 있듯이 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고 썩어질 때 비로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빛과 생명은 희생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은 이 희생의 때를 영광 받으실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진리의 역설성입니다. 그 누가 희생을 영광과 동일시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희생이야말로 하나님 우편보좌에 앉을 수 있는 영광의 면류관이란 사실을 몸소 실천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자의든 타의든 놀라운 긍정의 변화, 살림의 변화, 빛과 생명에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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