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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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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9,166 2003.08.16 23:33

본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12-59)

[오후 성경공부 내용]
본문말씀은 다음 장인 9장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이야기와 연관된 내용이며, 참 빛 곧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2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을 두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초막절행사와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7장 37-53절에서 물이 초막절행사에 중요한 부분이었듯이 빛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이 성령님에, 빛은 예수님에 연관지어졌습니다. 초막절이 광야에서의 나그네의 삶과 그 속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축제라면, 광야생활의 특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표시였던 구름기둥과 불기둥에 있습니다. 따라서 초막절의 물 긷는 예식은 구름기둥을, 횃불을 밝히는 예식은 불기둥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성령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4:14) 또는 힘차게 흐르는 강인 성령님을 표시하며(7:37-39), 구름기둥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선물로 부어주어 성령님으로 깊이 잠기도록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빛은 예수님 자신을 말하는 것이며, 불기둥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빛은 참 빛 곧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인데, 이 빛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밝혀주는 진리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나그네와 같은 광야생활을 은혜로 마치게 하시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갈 힘과 용기와 진리를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초막절행사였던 물 긷는 예식이 끝난 후에 생수를 주시겠다고 외치셨고, 성전의 불빛이 꺼진 후에는 세상의 빛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초막절 중에는 성소에 있는 촛대와 여인의 뜰에 횃불을 밝혔으며 횃불행렬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횃불행렬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했던 불기둥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명절이 끝난 다음에는 불을 껐습니다. 따라서 12절의 빛과 어둠에 관한 말씀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미 밝힌바와 같이 초막절은 우리의 추석명절과 상당히 유사한 명절일 뿐 아니라, 지키는 날짜도 동일합니다. 다만 어느 한쪽의 태음력에 윤년이 들어 있는 해에는 초막절이 추석명절보다 한달 늦게 지켜질 뿐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해질 때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저녁시간이 낮 시간보다 더 중요하고, 행사가 있는 때면 무엇보다도 빛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의 축제는 대부분 달이 밝은 보름날을 끼고 있습니다. 축제 때에 훤히 밝혔던 횃불이 꺼지고 어둠이 다시금 하루의 시작을 지배할 때에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생명의 빛이요, 믿지 아니하는 것이 흑암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불신자들을 두고 어둠에 다닌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리새인들이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판단할 때에 세상적인 가치기준인 출신신분이나 출신지 또는 학력과 같은 겉껍데기만을 보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자신을 “육체를 따라 판단”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판단할 때 외모로 하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며 16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준하여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판단은 항상 진실하고 믿을만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한 이유들 가운데는 그가 나사렛이란 촌마을출신이기 때문이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것이란 선입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성경연구를 많이 또 오랫동안 했더라도 율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19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우쳐주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거하게 되면 참 제자가 되고, 그분의 제자가 되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밝혀주는 진리의 빛을 보게 되며, 그분으로부터 자유케 하심을 받아 비로소 참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31-36절). 그러므로 예수님은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란 말씀은 그 뒤에 이어지는 후반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는 말씀으로 보아서 예수님은 인류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요, 하나님을 아는 진리요,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 인해서 율법의 멍에에 짓눌려 참 빛을 보지 못했고, 참 자유를 누리지 못했으며, 참 생명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빛을 보게 하셨고, 자유를 누리게 하셨으며,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22절의 말씀처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죽음 속에 살고, 어둠 속에 헤매며, 자유를 속박 당한 채 살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거짓 진리에 빠져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차이점이 살림의 일과 죽임의 일의 차이였듯이, 참 진리와 거짓 진리와의 차이점도 살림의 일과 죽임의 일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진리는 살림의 일을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 진리인 것은 창조주 하나님처럼 어둠에 눌린 사람에게 빛을 주셨고, 병들어 혼돈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고쳐 온전한 새 질서를 주셨고, 죽어 무덤 속에 있는 자를 살려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진리는 살림의 일을 합니다.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된 진리는 죽임의 일을 합니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 병들게 하고, 자유를 속박합니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으로는 진리처럼 보이나 속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시체 썩어 가는 냄새로 악취가 가득합니다.
성전 여인의 뜰에는 나팔모양의 13개의 연보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곳은 유대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고 또 연보궤가 놋쇠여서 돈을 넣을 때마다 나는 짤그랑 소리 때문에 헌금액수를 가늠해 보려는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드러내 놓고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은 참 빛 곧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빛이므로 그분을 따르는 자는 어두움을 물리칠 생명의 빛을 얻게 되며(12절), 그분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서 죽게 되고(24절),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면 그분의 참 제자가 되고,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밝혀주는 진리의 빛을 보게 되며, 참 자유를 얻어 누리게 되고(31-36절),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한다(51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진리의 빛과 영원한 생명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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