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21)
본문
나는 선한 목자라(요 10:1-21)
[오후 성경공부 내용]
9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목자로 세워진 유대지도자들이 눈뜬 소경 곧 백성을 빛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흑암에 빠뜨리는 죽임의 일을 하는 자들로 판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흑암에 빠진 자들에게 생명과 빛을 주시는 분 곧 살림의 일을 하시는 분으로 밝히 들어났습니다. 이제 10장에서는 누가 참된 목자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참된 목자로 선언하시면서 참 목자의 성격과 자격을 거론하셨습니다.
첫째, 참 목자는 길과 진리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참 목자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참 목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진리를 가르칩니다. 참 목자는 살림의 일을 하며, 영원히 죽지 아니할 생명을 줄뿐 아니라, 이를 위해서 자기 목숨도 내어놓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킨 분은 이 땅위에 단 한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또한 생명이십니다.
거짓(삯군) 목자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은 거짓 목자가 어떤 자들인가를 잘 밝혀 줍니다.
1. 하나님의 종 모세의 자리(권위)에 앉은 자들(마 23:2).
2.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들(마 23:3).
3.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는 자들(마 23:4).
4. 경건하고 신령한체하는 자들(마 23:5).
5. 높은 자리와 명예를 좇는 자들(마 23:6-7). 예수님은 여기서 아버지를 한분 하나님, 선생과 지도자(목자)를 한분 그리스도, 인간들은 피차 섬겨야할 형제와 자매로 말씀하셨습니다(마 23:8-12).
6. 천국 문을 가로막고 서서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마 23:13).
7. 힘써 얻은 교인을 지옥자식으로 만드는 자들(마 23:15).
8. 눈 먼 인도자(마 23:16).
9. 어리석은 맹인들(마 23:17).
10. 십일조는 드리되 그보다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리는 자들(마 23:23).
11. 하찮은 것은 걸려내고 값진 것만 꿀꺽하는 자들(마 23:24)
12. 겉보기에 거룩한 듯싶은데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자들(마 23:25).
13. 겉보기에 아름답게 보이나 그 속에서는 송장이 썩고 있어 악취를 풍기는 자들(마 23:27).
14. 겉보기에는 의롭게 보이나 그 속은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들(마 23:28).
15. 참 목자들을 죽이고 매장하는 자들(마 23:29-30).
둘째, 참 목자와 거짓 목자와는 양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양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참 목자이지만(1-2절), 담을 넘어서 들어가는 자는 거짓 목자입니다(1절). 참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러 인도하며, 양떼를 앞서 가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릅니다(3-4절). 그러나 거짓 목자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르지 아니하고 오히려 도망합니다(5절).
셋째, 예수님은 양들의 참 목자 일뿐 아니라, 또한 양 우리의 문입니다(7절). 양들이 안전한 우리 곧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여기서 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길과 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자 정문 일뿐 아니라, 또한 이 길과 문을 통해서 양떼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참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양 우리로 통하는 바른 길과 문으로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와서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는 자들은 다 거짓 목자들입니다(8절). 예수님이 제시하는 길과 진리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9절).
넷째, 참 목자와 거짓목자는 양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참 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며(10절),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22절). 그러나 거짓(삯군) 목자는 양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고, 흑암에 빠뜨려 우매하게 만들며, 자기 유익에 이용할 뿐 아니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하며(10절), 양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양들을 돌보거나 구하려들지 않고 도망하여 버립니다(12-13절). 이는 당대의 유대지도자들이 미쳤다고 생각한 예수님이 오히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참 목자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야말로 민중을 우롱하는 삯군 목자들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들은 눈뜬 맹인이요 삯군 목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의 길로 제시한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민중을 영적으로 죽이는 일들을 자행했으며, 예수님에 대해서 “귀신들려 미쳤다”(요 8:52; 10:20-21),“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마 12:24; 눅 11:15), 술주정꾼이다(마 11:19; 눅 7:34) 등의 말로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매한 민중은 그들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들, 곧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언론플레이에 속아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저들의 음모에 말려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시고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자들을 아시고, 또 아직 믿지 않고 있는 자라도 구원의 양 우리에 들어와야 할 자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14-15절).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착하고 신실한 우리에 든 양들입니다. 이 양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선언을 듣고 두 종류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일부는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도 하였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그들을 동조하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고 하였을 때 “귀신들려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19-21절).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란 사실을 믿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만이 그들의 진정한 목자란 생각을 갖고 있어서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선한 목자다”고 말씀하신 뜻은 “내가 곧 너희의 하나님이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참 목자다”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오해를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은 민중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중요한 사명에 실패하였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그들 자신이 실패자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혹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 해도 대세에 눌려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본의든 타의든 실패자들의 인도함을 받으면, 추종자들도 반드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긍정적 변화의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은 생애 최고의 선택이자 잘한 선택이며 바른 선택입니다. 더 이상 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길을 제시할 것이며, 하나님께로 인도할 진리를 깨우쳐줄 것입니까? 누가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겠습니까?
[오후 성경공부 내용]
9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목자로 세워진 유대지도자들이 눈뜬 소경 곧 백성을 빛으로 인도하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흑암에 빠뜨리는 죽임의 일을 하는 자들로 판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흑암에 빠진 자들에게 생명과 빛을 주시는 분 곧 살림의 일을 하시는 분으로 밝히 들어났습니다. 이제 10장에서는 누가 참된 목자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참된 목자로 선언하시면서 참 목자의 성격과 자격을 거론하셨습니다.
첫째, 참 목자는 길과 진리와 생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참 목자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바른 길을 제시합니다. 참 목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진리를 가르칩니다. 참 목자는 살림의 일을 하며, 영원히 죽지 아니할 생명을 줄뿐 아니라, 이를 위해서 자기 목숨도 내어놓습니다. 이와 같은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킨 분은 이 땅위에 단 한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또한 생명이십니다.
거짓(삯군) 목자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은 거짓 목자가 어떤 자들인가를 잘 밝혀 줍니다.
1. 하나님의 종 모세의 자리(권위)에 앉은 자들(마 23:2).
2.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들(마 23:3).
3.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손가락도 까닥하지 않는 자들(마 23:4).
4. 경건하고 신령한체하는 자들(마 23:5).
5. 높은 자리와 명예를 좇는 자들(마 23:6-7). 예수님은 여기서 아버지를 한분 하나님, 선생과 지도자(목자)를 한분 그리스도, 인간들은 피차 섬겨야할 형제와 자매로 말씀하셨습니다(마 23:8-12).
6. 천국 문을 가로막고 서서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마 23:13).
7. 힘써 얻은 교인을 지옥자식으로 만드는 자들(마 23:15).
8. 눈 먼 인도자(마 23:16).
9. 어리석은 맹인들(마 23:17).
10. 십일조는 드리되 그보다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리는 자들(마 23:23).
11. 하찮은 것은 걸려내고 값진 것만 꿀꺽하는 자들(마 23:24)
12. 겉보기에 거룩한 듯싶은데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자들(마 23:25).
13. 겉보기에 아름답게 보이나 그 속에서는 송장이 썩고 있어 악취를 풍기는 자들(마 23:27).
14. 겉보기에는 의롭게 보이나 그 속은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자들(마 23:28).
15. 참 목자들을 죽이고 매장하는 자들(마 23:29-30).
둘째, 참 목자와 거짓 목자와는 양떼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양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참 목자이지만(1-2절), 담을 넘어서 들어가는 자는 거짓 목자입니다(1절). 참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불러 인도하며, 양떼를 앞서 가고, 양들도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릅니다(3-4절). 그러나 거짓 목자의 음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따르지 아니하고 오히려 도망합니다(5절).
셋째, 예수님은 양들의 참 목자 일뿐 아니라, 또한 양 우리의 문입니다(7절). 양들이 안전한 우리 곧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여기서 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길과 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자 정문 일뿐 아니라, 또한 이 길과 문을 통해서 양떼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참 목자입니다. 그러므로 양 우리로 통하는 바른 길과 문으로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길로 와서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는 자들은 다 거짓 목자들입니다(8절). 예수님이 제시하는 길과 진리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9절).
넷째, 참 목자와 거짓목자는 양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참 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며(10절),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22절). 그러나 거짓(삯군) 목자는 양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고, 흑암에 빠뜨려 우매하게 만들며, 자기 유익에 이용할 뿐 아니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하며(10절), 양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양들을 돌보거나 구하려들지 않고 도망하여 버립니다(12-13절). 이는 당대의 유대지도자들이 미쳤다고 생각한 예수님이 오히려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참 목자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야말로 민중을 우롱하는 삯군 목자들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그들은 눈뜬 맹인이요 삯군 목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구원의 길로 제시한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민중을 영적으로 죽이는 일들을 자행했으며, 예수님에 대해서 “귀신들려 미쳤다”(요 8:52; 10:20-21),“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마 12:24; 눅 11:15), 술주정꾼이다(마 11:19; 눅 7:34) 등의 말로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이로 인해서 우매한 민중은 그들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들, 곧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언론플레이에 속아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저들의 음모에 말려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하시고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자들을 아시고, 또 아직 믿지 않고 있는 자라도 구원의 양 우리에 들어와야 할 자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14-15절).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착하고 신실한 우리에 든 양들입니다. 이 양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선언을 듣고 두 종류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일부는 조심스럽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도 하였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그들을 동조하는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다”고 하였을 때 “귀신들려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19-21절).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란 사실을 믿지 못한 상태에서 하나님만이 그들의 진정한 목자란 생각을 갖고 있어서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선한 목자다”고 말씀하신 뜻은 “내가 곧 너희의 하나님이다”는 말씀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참 목자다”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오해를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은 민중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중요한 사명에 실패하였습니다. 더욱 나쁜 것은 그들 자신이 실패자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혹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 해도 대세에 눌려 힘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본의든 타의든 실패자들의 인도함을 받으면, 추종자들도 반드시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긍정적 변화의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한 것은 생애 최고의 선택이자 잘한 선택이며 바른 선택입니다. 더 이상 누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길을 제시할 것이며, 하나님께로 인도할 진리를 깨우쳐줄 것입니까? 누가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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