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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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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274 2003.09.29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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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 11:17-57)

[오후 성경공부 내용]
어제와 오늘은 유대인들에게 5764년이 되는 신년(新年) 새해입니다. 해가 바뀌고 새롭게 시작되는 것과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걸어서 30-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베다니란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곳에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세 남매가 있었는데, 나사로와 마르다 그리고 마리아가 그들이었습니다.
나사로는 그의 이름이 뜻한바 그대로 죽어서 장사되었다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도움을 입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귀중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씻길 만큼 헌신적이었고, 주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했던 열성적인 여인이었고, 언니 마르다는 섬김과 봉사에 충성스런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귀부인’(마돈나) 또는 ‘존귀한 자’란 뜻이고, 마르다는 ‘숙녀’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두 여성은 말씀공부와 봉사라는 두 가지 성격의 성도의 본분을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이들 자매들은 나사로가 병들자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오시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병든 자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였다는 점입니다(3절).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도 병들 수 있고, 고통스런 일을 겪을 수 있고,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과 생로병사와 번민들은 별개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들이 시시때때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우리 신앙인들은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 . .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5-16)고 하였습니다.
변화의 능력인 믿음의 산 표본이신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을 죽을병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함으로 보았습니다(4절). 그 때 예수님은 요단강 건너편 요한이 세례 주던 곳에 머물고 계셨는데,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곧장 달려가지 않으시고 이틀을 지체하셨습니다. 그 사이 나사로는 죽어서 굴 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은 영광의 때의 시작을 알리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4절).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공회원들은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한 모의에 착수하는 동시에(53절) 체포령을 내려 잡게 합니다(57절). 생명의 주인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께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이 때를 가리켜 예수님이 영광 받으실 때라 하였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두고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살리는 자를 죽여서 제거해야 할 자로 간주하는 권세 쥔 자들의 시각도 문제려니와 죽음의 때를 영광의 때로 보는 예수님의 시각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진리의 역설성입니다. 성경은 죽어야 살고, 버려야 얻고, 썩어야 열매 맺고, 부인해야 인정받는다는 역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진정한 영광의 때는 십자가의 죽음의 때가 아니고 부활의 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소망의 때도 부활의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활은 믿음으로 살림의 일을 할 때마다 영적으로 경험되어지며, 궁극적으로는 예수님 재림의 때에 몸의 부활로 경험되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일 뿐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서 발전하고 성숙해지며 영적인 부활의 경험을 통해서 영광을 얻게 될 성도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게 버려둔 것은 제자들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병을 죽을병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위함으로 보았던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제자들로 하여금 믿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 42절). 예수님의 지체함으로 빚어진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때때로 기도응답의 지체가 더 큰 축복과 영광을 위한 것임을 배우게 됩니다. 나사로에게 닥친 죽음의 고통은 그를 다시 살리신 예수님에게 큰 영광이며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에게도 영광일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난 나사로에게도 영광이 되고, 그 사실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확인한 자들의 믿음과 영생을 위해서도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40절)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와 계시록에서 시종 믿음과 인내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은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계 13:10; 14:12)고 하였고, 6장 12절에서는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고쳐 주십사하고 간청했던 마르다는 나사로가 죽어서 굴 무덤에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었지만(17절), 예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서 말하기를,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22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23절)고 하였을 때,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4절)고 대답하였고, 예수님이 다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25-26절)고 물었을 때,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27절)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나사로를 살리신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이지만, 그 능력을 가능하게 한 수단은 마르다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마르다의 믿음은 죽은 나사로를 살린 변화의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예수님의 마지막 표적의 배경에는 예수님의 눈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33절)고 했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습니다(35절). 히브리서 저자는 4장 14-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예수님의 통분과 연민은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은 이유를 알게 해줍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통분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그분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자들을 향해서 나타납니다(36-38절).
무덤에 도착한 예수님은 입구를 막아놓은 돌을 옮겨놓게 하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후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그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습니다(43-44절). 그의 부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자들의 승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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