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자료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컨텐츠&자료공유 최근자료 KCCS Digital Archive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예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8,123 2008.07.01 16:31

본문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예배◀
계시록 4장 3-5절의 ‘보좌’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전능하심의 상징이다. 보좌에서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5절의 ‘일곱 등불’은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서 ‘전지’ 곧 완전한 지혜와 지식을 상징한다. 네 생물들의 여섯 날개들 안팎에 눈이 가득한 것도 지혜와 지식을 상징한다. 6절의 ‘보좌 앞에 있는 수정처럼 맑은 유리 바다’는 성막 뜰에 있었던 물두멍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두멍은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이나 제단에서 화제(火祭)를 하나님 앞에 사르기 전에 수족을 씻기 위한 물통이었다. 물은 침례의 모형이다. 놋으로 만든 물두멍의 물로 수족을 씻는 것은 놋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와 침례를 통해서 죄를 씻고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 나아갈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또 제단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고 예배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출 30:20).
4장 6절의 ‘수정처럼 맑은 유리 바다’가 15장 2절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로 설명되고 있다. 이 바다는 홍해를 상징한다.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건너야했던 죽음의 바다이다. 그러나 이 바다를 건너야 구원이 있다. 그들은 이 죽음의 바다를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희생자 없이 무사히 건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홍해도하를 그리스도인들의 침례의 모형으로 설명하였다. 침례는 영적으로 죽음의 바다에서 죽고, 구원의 해변에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활동무대요, 성도들에게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는 고해(苦海)요, 세상이다. 고통의 바다를 이기고 극복한 성도들이 구원의 해변에 서서 큰 구원자요, 대승을 이끈 성도의 지도자들인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물두멍과 침례가 상징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제사장들이 물두멍에서 씻은 후에 성소에 들어 갈 수 있었고, 번제단 앞에 나아가 제물을 바칠 수 있었던 것처럼, 성도들은 바다로 상징되는 죽음의 세상을 건너 영원한 나라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침례는, 요나의 경우에서 보듯이, 죄악이 가득한 세상 바다에서 죽고, 구원의 해변에서의 부활을 상징한다.
4장 6-9절의 ‘네 생물’은 에스겔 1장에 나오는 네 생물들과 매우 흡사하다. 그들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얼굴 모습을 가진 살아있는 네 생물들이다. 그들은 각각 날개들을 가지고 있는데, 계시록 4장은 여섯 날개를, 에스겔 1장은 네 개의 날개를 언급하고 있지만, 날기 위한 날개가 두 개 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날개들에는 눈들이 가득했다.
네 생물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리는 것이다. 이들의 찬양은 이사야서 6장 3절에 실린 ‘삼성창’(sanctus)과 동일하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는 예배 때에 이 ‘세 번 거룩’을 불러왔으나 개신교 예배에서 점차 사라졌다.
24장로들이 하는 일도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리는 것이다. 24장로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자기들의 관을 보좌 앞에 내려놓고 있다. 이 행위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완전복종을 상징한다. 관이 상징하는 것은 이 지상에서 성취하고 소유하고 누리게 된 그 어떤 축복과 생명조차도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심으로 왔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그분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는 삶, 그분의 존귀와 영광을 높이는 삶, 이것이 산 예배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배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