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있는 자는 들으라
본문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계시록 2-3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 가운데 하나가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명령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하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마가복음 8장 14-21절을 보면, 제자들이 먹을 사람은 많은데, 빵이 한 개밖에 없는 것을 걱정하다가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잘못 알아듣고, 오해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이 탄식이 바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마가복음 7장 32-35절에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에바다’란 아람어를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이적이다.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그 사람의 양 귀에 꽂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 곧 ‘열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장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였다.”이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이 분명해지는 것은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문제점은 귀가 닫혀있었다는데 있다. 굳게 닫힌 그의 어두운 귀 때문에 통일시대가 닫히고 분열시대가 열렸다. 르호보암은 귀가 닫혀 있어서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루머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루머와 신음소리는 민심이요, 천심이며,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통일왕국을 둘로 쪼개 놓게 된 것이다(930B.C.).
엘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아합과 이세벨은 가문이 멸문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853B.C.).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유다왕국의 왕들, 여호야김(597B.C. 2차 유배)과 시드기야(586B.C. 3차 유배)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치 판도를 꿰뚫고 있었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따라서 이집트는 유다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복음서와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 듣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며 재앙을 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점을 암시한 말씀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했다(롬 10:17). 귀를 열어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것은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이 귀를 열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사람 개인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갖고 못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계시록 2-3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구절 가운데 하나가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는 명령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하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마가복음 8장 14-21절을 보면, 제자들이 먹을 사람은 많은데, 빵이 한 개밖에 없는 것을 걱정하다가 “바리새파 사람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예수님의 경고를 잘못 알아듣고, 오해한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아시고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빵이 없는 것을 두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의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어 있느냐?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기억하지 못하느냐? ....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의 이 탄식이 바로 사데 교회에 주신 말씀과 다르지 않다. 마가복음 7장 32-35절에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에바다’란 아람어를 기록하고 있는 유명한 이적이다.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그 사람의 양 귀에 꽂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 곧 ‘열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장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고 적고 있다. 여기서 핵심 구절은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였다.”이다.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고, 말이 분명해지는 것은 우리가 일생을 통해서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문제점은 귀가 닫혀있었다는데 있다. 굳게 닫힌 그의 어두운 귀 때문에 통일시대가 닫히고 분열시대가 열렸다. 르호보암은 귀가 닫혀 있어서 백성들 사이에서 떠도는 루머와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루머와 신음소리는 민심이요, 천심이며,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알지 못했다. 결국 통일왕국을 둘로 쪼개 놓게 된 것이다(930B.C.).
엘리야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아합과 이세벨은 가문이 멸문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853B.C.).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닫았던 유다왕국의 왕들, 여호야김(597B.C. 2차 유배)과 시드기야(586B.C. 3차 유배)는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예레미야는 국제정치 판도를 꿰뚫고 있었다. 주전 605년에 느부갓네살은 갈그미스에서 앗수리아와 이집트 연합군을 전멸시켰고, 따라서 이집트는 유다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으며, 앗수리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복음서와 계시록에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여러 차례 나온다. 듣는 것이 깨달음의 시작이며 재앙을 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점을 암시한 말씀들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고 했다(롬 10:17). 귀를 열어 듣는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귀를 열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는 것은 개인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이 귀를 열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그 사람 개인이 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국가를 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귀를 갖고 못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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