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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벨의 최후와 야훼신앙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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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8,186 2008.06.1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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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벨의 최후와 야훼신앙의 승리◀
솔로몬이 죽고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다음 50년쯤 지나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강력한 왕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이 오므리(885-874B.C.)이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 알릴만큼 뛰어난 왕이었다. 그러나 아들 아합(874-853B.C.)을 바알신 제사장 출신이자 레바논(시돈)의 왕 옛바알(Etbaal)의 아리따운 딸 이세벨과 혼인시켜 결혼동맹을 맺게 한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로 인해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비극이 시작 되었다.
이세벨은 미색을 갖췄을 뿐 아니라, 사특한 여인이었다. 솔로몬의 부인 암몬 사람 나아마가 어린아이를 불에 태워 바치는 가증한 밀곰이란 이방신을 들여와서 솔로몬으로 하여금 산당을 짓게 하고 그 예배에 참석케 한 것처럼 이세벨은 아합의 권세를 이용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를 버리고 바알을 숭배토록 했다. 그 결과 엘리야와 광야 굴에 숨은 칠천 명을 제외한 모든 백성이 바알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 삼년 육개월간 지속되었다. 이 기간에 백성들은 극심한 가뭄과 배고픔까지 참아내야 했다.
이 암울한 난세에 영웅이 났으니, 그가 바로 디셉 사람 엘리야였다. 엘리야는 담대하게 아합과 이세벨에 대항하였다. 열왕기상 17장 1절을 보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통보하고 있다. 아열대 사막기후에다 수리시설이 없던 2,850여 년 전에 3년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3년 넘게 비가 내리지 않던 어느 날 엘리야는 아합에게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갈멜산에 모여서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가 참 신인지, 엘리야가 섬기는 야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한판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대 1로 참 하나님을 가리는 대결을 펼쳤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결장인 갈멜산에 모였다. 엘리야는 몰려든 백성에게 말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왕상 18:21)고 통보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유구무언 대답이 없었다.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결직후 엘리야는 백성들과 함께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붙잡아 기손 강가로 데려가서 모두 처형시켰다. 이뿐 아니라, 아합왕은 거짓 선지자들의 충고로 전투에 나가 싸우다가 전사했고, 그 피를 개들이 핥았으며, 엘리야의 후계자인 엘리사와 그가 앞세운 장군 예후의 쿠데타 때에 이세벨은 내시들에 의해서 창밖으로 던져져 그 피가 담과 말에 튀겨 죽었으며, 그 시체는 짓밟히고 말았다. 왕과 왕후에 이어서 자녀들까지 가문이 멸문당하고 정권이 바뀌는 비극을 맞았다. 이것이 박해세력의 최후였다. 박해가 시작된 지 삼년 반만에 얻은 야훼신앙의 승리였다.
이러한 명백한 과거의 승리사건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 계시록이다. 주님께서 2장 20절에서 이세벨을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또 11장에서 엘리야를 두 증인의 한 사람으로 등장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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