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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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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7,593 2008.04.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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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독제◀
유대인의 식탁은 제단에 가깝다. 특히 저녁식사는 매우 종교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식사가 너무 종교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를 막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대교인들은 그들의 종교법에 따른 ‘코숴’ 곧 정한 음식만 먹을 뿐 아니라, 고기제품을 우유제품과 함께 먹을 수 없고, 고기제품에 접촉된 그릇들은 우유제품에 쓸 수 없고, 반대로 우유제품에 접촉된 그릇들은 고기에 쓰일 수 없도록 하고 있어서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사실상 차단시키고 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그것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성결하다 해도, 사람을 깨끗케 하지는 못한다고 말씀하셨고, 사람을 깨끗케 하는 것은 마음의 죄악을 제거하는 것이지, 특정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에 있지 않다고 하셨다. 죽음의 근원인 죄악을 마음에서 제거하지 않은 채, 음식을 가려 먹는다고 해서 결코 성결해질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의 주님의 만찬은, 안디옥교회를 섬긴 이그나티오스 교부가 에베소 서신에서 밝힌 것처럼, “불사(不死)의 약(藥)이요, 죽음의 해독제”이다. 그리스도께서 당한 수치와 고통과 죽음의 십자가에 불사(不死)의 능력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역설(paradox)이 먼 옛날 유대인들에게는 수용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였고, 헬라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이 역설이 믿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는가를 알 수 있는 시금석(試金石)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불사의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예식이 바로 성만찬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히브리서 13장 10절,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고 한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다. 상반절의 “우리에게는 제단이 있습니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말하고, ‘제단’은 예수님의 희생을 기념하는 성만찬상을 말한다. 그리고 하반절의 “그런데 유대교의 성전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 제단 위에 놓인 제물을 먹을 권리가 없습니다.”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거나,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축복들에 참여할 분깃이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를 히브리서 13장 11절, “유대교의 제사의식에서 대제사장은 속죄 제물로 바치려고 짐승의 피를 지성소로 가지고 들어가는데, 그 몸을 진 밖에서 태워 버립니다.”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일반제사의 경우에 제사장들은 제물의 일정부분을 자기 몫으로 취하게 되지만, 대제사장이 주관하는 초막절 5일전에 드리는 대속죄제의 경우, 제물을 모두 진 밖에서 태워버렸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몫이 없었던 점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또 히브리서 13장 1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고 한 것은 연중 한번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희생제물이 성문 밖에서 모두 태워졌듯이,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당하신 사실을 말한 것이고, 이 사실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골고다에서 이루신 대속사역의 축복들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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