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빛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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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빛의 일◀
하나님과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신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다.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빛을 만드신 후에는 땅이 생명력을 얻게 되어 온 땅이 푸르게 되고, 물이 흐르게 되고,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에덴동산이 되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있던 땅을 하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발생한 기적이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까 그 지역에 사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다.”고 하였다. 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더니 그들이 변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일어난 기적이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보듯이 동굴에 갇힌 사람, 수족이 족쇄에 묶여서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를 실체로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장에 필요한 것은 족쇄에서 풀려나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빛을 보게 하는 것이다. 빛을 보게 될 때에 비로소 자기의 생각과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그를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동굴에서 나와 태양이 작열하는 대자연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다.
롯과 두 딸은 아브라함의 간구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서 음지마을인 소돔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안전한 양지마을인 소알성에 도착했지만, 그들에게는 엄습해 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을 막아낼 만한 빛이 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고도 스스로 흑암과 사망과 그늘의 동굴에로 들어갔고, 그곳에 갇혀 살았다. 누군가가 그들을 강제로 가둔 것이 아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빛을 보지 못함으로 인하여 실족하고 말았다. 두 딸이 아버지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여서 각자의 후손을 잉태했고, 결과적으로 어둠의 자식들을 낳아 두 민족의 시조로 키웠다. 여기서 주는 중요한 교훈은 만약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을 동굴에서 끄집어냈더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었더라면,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더라면, 흑암과 사망과 그늘진 동굴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어둠의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도 스스로에게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못했고, 비극으로 끝났던 것이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무관심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그러나 돌보는 것, 사랑하는 것, 관심을 갖는 것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양약이며,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처음부터 하신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다.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빛을 만드신 후에는 땅이 생명력을 얻게 되어 온 땅이 푸르게 되고, 물이 흐르게 되고,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에덴동산이 되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있던 땅을 하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발생한 기적이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까 그 지역에 사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다.”고 하였다. 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더니 그들이 변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다.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일어난 기적이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보듯이 동굴에 갇힌 사람, 수족이 족쇄에 묶여서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를 실체로 아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당장에 필요한 것은 족쇄에서 풀려나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빛을 보게 하는 것이다. 빛을 보게 될 때에 비로소 자기의 생각과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그를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동굴에서 나와 태양이 작열하는 대자연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다.
롯과 두 딸은 아브라함의 간구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서 음지마을인 소돔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안전한 양지마을인 소알성에 도착했지만, 그들에게는 엄습해 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을 막아낼 만한 빛이 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고도 스스로 흑암과 사망과 그늘의 동굴에로 들어갔고, 그곳에 갇혀 살았다. 누군가가 그들을 강제로 가둔 것이 아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빛을 보지 못함으로 인하여 실족하고 말았다. 두 딸이 아버지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여서 각자의 후손을 잉태했고, 결과적으로 어둠의 자식들을 낳아 두 민족의 시조로 키웠다. 여기서 주는 중요한 교훈은 만약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을 동굴에서 끄집어냈더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었더라면,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더라면, 흑암과 사망과 그늘진 동굴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어둠의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도 스스로에게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못했고, 비극으로 끝났던 것이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무관심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다. 그러나 돌보는 것, 사랑하는 것, 관심을 갖는 것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양약이며,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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