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대 선교사 J. 마이클 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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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대 선교사 J. 마이클 쉘리

제이 마이클 쉘리(J. Michael Shelley) 선교사가 부인과 성장한 미혼 딸을 데리고 선교지 한국을 향해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을 떠난 것이 1935년 2월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1935년 3월 중하순경이었다. 그가 미국 오레곤 주, 바이다에서 1963년 1월 23일에 해롤드 테일러 선교사에게 쓴 편지에 동봉된 사진을 보면, "쉘리 목사 환영기념, 1935년 3월 24일"이라는 글씨가 새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영문편지와 쉘리 가족의 사진은 배도은(Gorden Patten)선교사가 김찬영 목사에게 제공한 것이다.)
쉘리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사역은 그가 테일러 선교사에게 보낸 영문편지를 통해 알 수 있다. 쉘리 가족은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파송되어 한국에 온 최초의 미국인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 체재한 기간은 1년이 채 못된다. 그들은 선교본부를 서울에 두고, 북한지역에서 2개월 가량 사역하였고,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를 일제하에서 정부에 최초로 법적으로 등록하였다. 또 쉘리는 성경공부 반을 만들어 성경을 가르쳤다.
쉘리와 그의 가족이 그 해 11월에 한국을 떠난 것은 커닝햄 선교부의 감독아래 허락된 부정직하고 비기독교인다운 행위들로 인해서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은 매우 유감스런 상태에 있었고, 그들 자신의 건강문제때문이었다. 쉘리는 폐병에 걸려 3년간 미국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그의 딸, 레이첼이 혈우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쉘리는 한국 선교에 관해서 영문편지 한 통을 남겨놓았다. 이 편지는 쉘리가 해롤드 테일러(Harold Taylor) 선교사에게 답장형식으로 보낸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교사님께서 내 아들 진에게 보낸 편지는 크리스마스 경에 내게 전달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매우 바빴기 때문에 몇 일 이내에 답장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편지를 한쪽으로 치워두었는데, 그만 그것을 잘못 두게 되어 오늘에야 비로소 그 편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한국에 건너간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 선교사들이었습니다. 드러난바 대로 도쿄 주재 커닝햄 선교부의 감독아래 허락된 부정직과 비기독교인다운 행위들로 인해서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은 매우 유감스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때의 일을 되돌아본다 해서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됩니다만, 그것이 우리가 본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두 가지 중대한 사유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 한 가지 사유는 우리 가족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꼬인 것들을 풀어낼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우리는 1935년 2월에 샌프란시스코를 배로 출발했고, 그해 11월에 미국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북한지역에서 2개월 가량을 보냈지만, 선교본부는 서울에 두었습니다.
우리는 서울에서 몇몇 설교자 자료를 찾게 되기를 바라면서 매우 훌륭한 성경공부 반을 개설하여 가르쳤습니다. 이 성경공부 반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서 세 명이 서울 변두리 강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서울과 도쿄에서 증거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 여러 날을 힘들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수집된 자료들을 문서형태로 미국에 가져와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 이런 노력 때문에 커닝햄이 죤 체이스의 이력에 깔아놓은 먹구름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줄을 쥔 자들에게(후원자들에게) 우리에게 주던 후원을 체이스에게 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체이스는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 사역을 수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선교단체에 소속되지 아니한 채로 독립적으로 후원금을 모았습니다. 그 일로 여기서 일 년 이상을 보냈습니다.
제가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설교했던 회중(group)의 사진(참고: 이 사진의 교회는 이인범이 제물포에 세운 세 곳 가운데 한 곳임)을 동봉합니다. 제 처인 쉘리 부인
오른쪽에 앉은 사람이 김 선생으로서 재주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은 기독교인이었으며
저를 얼마간 도왔던 분입니다. 그는 그곳 공립학교의 교사였습니다. 제 왼쪽에 앉은
사람은 지금은 죽고 없는 딸 레이첼입니다. 그리고 그녀 옆에 앉은 사람이 이인범입니다.
이인범은 커닝햄의 요츠야 선교부로부터 보냄을 받은 설교자였습니다. 목사(Rev.)라는
말은 사진을 만든 한국 사람이 생각해서 쓴 것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한국 선교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현재 그곳에서 진행되는 선교사역에 대해서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풍성하게 복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바이다 오레곤에서 1963년 1월 23일
제이 마이클 쉘리 드림
(참고서적: 김찬영.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기역사
- William
D. Cunningham의 생애를 중심으로 - 1864-1936} 한성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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