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테일러 선교사
본문
테일러 Harold Taylor 1904-1976.05.15.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Christian Churches and Churches of Christ) 선교사, 목사, 신학교 교장.
해롤드 테일러는 1904년경에 태어났다. 1924년경 토마스와 마리아 세이어(Thomas S. and Maria Etta Hoffa Sayer)의 딸인 에이더(Ada Mary Ellen Sayer)와 결혼하였다. 테일러는 1945-46년경 중국선교에 참여했으며 중국이 공산화된 후 일본으로 건너와 동경 요츠야 선교부(Yotsuya Mission)를 도와 선교활동을 하다가 한국 선교사였던 존 채이스(John T. Chase)의 소개로 1955년 11월 13일 입국하여 ‘기독교회선교부’의 책임선교사가 되었다. 이후 1960년 4.19혁명, 1961년 5.16군사혁명, 1972년 유신체제에 이르기까지 격동기 20여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1956년 2월에 전국 그리스도의 교회들에 설문지를 보내서 교회들의 역사, 재적인원, 출석과 건물 현황에 대해서 조사하였다. 테일러는 이 조사를 근거로 1957년 전반까지 39개의 교회에 재정을 지원하였고, 1959년 10월경까지 총 11개의 새 예배당 건축, 1개의 장로교회 예배당 매입, 34개 교회들의 수리를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였는데, 이 돈의 대부분은 전임자였던 채이스 선교사가 6.25전쟁 발발 직후인 7월까지 ‘한국에 예배당을’(Chapels for Korea)이란 캠페인을 통해서 모금한 기금에서 충당되었다.
또 테일러 선교사는 부임한 이듬해인 1956년 초에 시작하여 수년에 걸쳐서 도서(島嶼)지방까지 전국의 교회들을 순차적으로 순방하여 가르치고 설교하였다. 이밖에도 그는 교도소 전도, 학원 전도, 시청각 전도 등에 힘쓰기도 했다. 테일러의 후원계획은 개교회가 할 수 없는 부분만큼만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그의 선임 선교사들이 목회자들에게 정기적으로 주던 후원금을 끊고 긴급 상황에서만 후원을 하였다. 테일러는 각 교회가 예배당을 짓거나 수리하고자 할 때에는 자조자립을 원칙으로 하되, 교회가 부담할 수 없는 부분만 보충해 주는 방식을 취하여, 채이스가 남긴 선교기금과 자신이 추가로 모금한 기금을 보다 많은 예배당의 건축과 보수에 효율적으로 사용하였다.
테일러는 기존의 신학교 캠퍼스 이전 프로젝트(New Seminary Project)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테일러는 서울 서대문구 송월동 기독교회선교부의 재산(토지 396평과 그 위에 세워진 선교부 건물과 신학교 3층 건물)을 1959년 6월 3일까지 모두 팔고, 7,087평의 역촌동 땅위에 새 캠퍼스를 마련하여 1963년에 서울성서신학교(현 서울기독대학교)로 개교시켰다.
테일러는 내국인들의 이견을 좁히고, 자신이 주도하는 비교파교회 플랜 곧 신약성경기독교를 전국에 소개하며, 목회자들의 설교준비와 목회사역을 돕기 위해 월간 「하나의 길」(One Way)을 1957년 3월에 창간하여 1962년 10월 1일 「한길」로 개명하였다. 「한길」은 처음에는 신문형식으로 발간되다가 13호부터는 잡지형식으로 바꿨다. 매호마다 묵상(QT), 교리, 선별된 기사들이 담겼고, 12-16쪽으로 구성되었으며, 연말에는 합본을 만들어 제공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들 뿐 아니라, 많은 타 교파 교회들과 학교들, 그리고 군목들에게도 발송되었다. 이밖에도 테일러는 1956년부터 선교지 「한국에 그리스도를」(For Christ in Korea)을 일 년에 1-3차례 발행하였고, 신약성경교회 조직에 힘썼으며, 여성들의 친교모임을 조직하여 월 1회씩 모임을 갖도록 장려하였다.
또 테일러는 6.25 전쟁 이후 심각한 문제가 된 전쟁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들 보육원을 직접운영(부평) 또는 후원(인천 숭의동, 대전 판암동)하였으며, 3개의 중학교 설립을 돕고 순회하며 후원하였다. 또 리처드 래쉬(Richard and Melba Lash) 가족과 고든 패튼(Gorden and Sharon Patten, 배도은) 가족을 선교사로 영입하여 한국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토록 하였다. 이뿐 아니라, 테일러는 장래가 촉망한 내국인 젊은이들을 지도자들로 키우기 위해서 최순국, 최윤권, 김진문, 안재관 등의 미국유학을 주선하였다.
테일러는 1961년 3월 재단법인 ‘그리스도의교회복음회유지재단’을 설립하였다. ‘그리스도의교회복음회유지재단’은 그동안 선교사들 각각의 명의나 그들의 대리인 명의로 되어 있던 당시의 재산들을 모아서 설립된 법인이다. 이 재단법인에는 강릉에 있던 래쉬 선교사 명의의 재산과 기독교회선교부가 운영하던 서울성서신학교(현 서울기독대학교), 그리스도의 교회 보육원(1951년 설립), 대전 그리스도의 교회 보육원(애생원, 1950년대 초 설립), 월간 ?하나의 길? 등이 귀속되었다. 초대 이사장 해롤드 테일러, 상무이사 1인(조셉 세걸키), 이사 3인(에이더 테일러, 리차드 래쉬, 맥신 세걸키), 감사 1인(멜바 래쉬)으로 구성되었다. 1964년 이사진이 이사장 해롤드 테일러를 제외하고 이복선, 배도은(미국명 고든 패튼), 박정훈, 박근일로 교체되었다.
테일러는 선교부의 모든 일을 후임자인 배도은에게 넘기고 만 70세 때인 1974년에 은퇴하였다. 그러나 부부 모두 은퇴 후의 여생이 길지 못하였다. 그는 1976년 5월 15일 교회 제직소풍 중에 심장마디로 쓰러진 후 오후 8시 13분에 만 72세로 별세하였다. 부인 에이더는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Santa Clara County)의 산호세에서 1980년 10월에 만 74세로 영면하였다.
[주요저술] Harold Taylor. FCK: For Christ in Korea(Digitized by Dr. Scott Seay of the Christian Theological Seminary, Indianapolis, Indiana, 2 July, 2015); "Our First Chapel", FCK, June 1956: 1; "No Mama, No Papa?" and "Middle Schools", FCK, June 1956: 1-2, 4; "Seminary Registration", FCK, June 1956: 4; "Preachers and Problems", FCK, June 1956: 5; "Report of Progress", FCK, June 1957: 1-2; Ada Taylor, "Changes at Bupyung" and "Suffer the Little Children to Come unto Me", and "Middle Schools-A Real Need", FCK, June 1957: 3-5; "The Chapels Program", FCK, June 1957: 2; "To the Uttermost Parts", FCK, June 1957: 3; "The Chapels Program", FCK, February 1958: 2; "Working with Him", FCK, August 1958: 1; "Daily Doings from Our Diary-May", FCK, August 1958: 2; "These Little Ones" and "Your Middle School Needs You", FCK, May 1959: 3-4; "First Word from the Lashes", FCK, September 1957: 1-2; "Moving Days", FCK, October 1959: 1; "History of the Korean Christian Mission", FCK, October 1959: 3-4; "The New Location", FCK, May 1960: 3; "A Place for the Pattens", FCK, March 1962: 3.
[참고문헌] 김찬영,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초기역사 - William D. Cunningham의 생애를 중심으로 - 1864-1936』(한성신학교, 1991), 146-48, 155; 백종구, 조동호 공저, 『한국 그리스도의교회 역사』(서울: 쿰란출판사, 2018), 131-140, 264; 조동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이야기』(계룡: 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2016), 221-27; 최윤권, 『내가 본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사』(서울: 환원출판사, 2003년 수정증보판), 48, 56, 132; 최재운,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사』(태광출판사, 2005), 106-09, 134-39. “Ada Mary Ellen Sayer", The Family Records of Elsie Klinger Eaves: http://eavesphotos.com/EKE-o/p1295.htm.
조동호 목사(그리스도의 교회 연구소)
해롤드 테일러 선교사
Harold & Ada Taylor
관련링크
- 이전글 <b>리차드 래쉬 선교사(새로 작성)</b> 05.07.08
- 다음글 힐 제인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잊혀지지 않을 일들" 05.07.08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