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로(1935.1.18-1985.5.12)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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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로(1935.1.18-1985.5.12) 목사
고등학교 재학 중에 자취생활을 하였는데,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의 인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에와서 노은교회를 나갔는데, 그때 마침 김은석 목사가 부흥회 인도 차 와서 설교하는 것을 듣고 은혜를 받고, 부강교회로 옮겨 집사로써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사모인 조연식을 이곳에서 만나 김은석 목사의 주례로 결혼하였다.
이원로는 도민증도 없이 신화신학 성경연구회에서 2년간 공부하다가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이원로는 훈련 중에 총을 메지 않았다. "총을 메는 것은 살인이다. 총을 메는 형식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을 멜수 없다."고 버티다가 많은 역경을 치르고 병보석으로 제대하였다. 제대 후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한 쪽 폐를 잘라내는 고통을 받으셨다. 이런 고통 중에서도 끝까지 주의 일을 하시다가 1985년 5월 12일 돌아가셨다.
이원로 목사는 부강 신화신학 성경연구회의 마지막 학생이었으며, 김은석 목사로부터 마지막 주례를 받은 분이다. 사모 조연식과 더불어 은세, 길세, 은숙 세 자녀를 두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자취생활을 하였는데,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의 인도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집에와서 노은교회를 나갔는데, 그때 마침 김은석 목사가 부흥회 인도 차 와서 설교하는 것을 듣고 은혜를 받고, 부강교회로 옮겨 집사로써 열심히 교회를 섬겼다. 사모인 조연식을 이곳에서 만나 김은석 목사의 주례로 결혼하였다.
이원로는 도민증도 없이 신화신학 성경연구회에서 2년간 공부하다가 입대하여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이원로는 훈련 중에 총을 메지 않았다. "총을 메는 것은 살인이다. 총을 메는 형식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을 멜수 없다."고 버티다가 많은 역경을 치르고 병보석으로 제대하였다. 제대 후 계속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한 쪽 폐를 잘라내는 고통을 받으셨다. 이런 고통 중에서도 끝까지 주의 일을 하시다가 1985년 5월 12일 돌아가셨다.
이원로 목사는 부강 신화신학 성경연구회의 마지막 학생이었으며, 김은석 목사로부터 마지막 주례를 받은 분이다. 사모 조연식과 더불어 은세, 길세, 은숙 세 자녀를 두었다.

댓글목록
저도 목회자 후보생으로 사역하고 잇습니다
처음으로 할아버지 자료를 보게되어 가슴에 사명의 무게를 느끼며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