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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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진 목사(1921.2.28-)
심영진 목사와 김은석 목사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근거는 몇 장의 사진들뿐이다. 1958년 4월 13일
산상연합집회 중에 김은석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있고, 한국성서신학교가 설립된 직후, 교수로서 1959-60년 겨울에 힐 선교사 부부, 김은석,
김태수 및 오재건, 고재윤, 고광석, 김찬영 등과 함께 자신이 시무한 충남 대덕구 유천면 도마리 성화교회(현 대전 그리스도의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지만, 심영진의 이름은 김은석의 성서통독메모나 통신 및 신화신학 성경연구회 명단에서 찾을 수 없다.
심영진은 유교와 불교를 전전하며 10여년을 방황하다가 계시를 받고 개종하였다. 1953년 충남 대덕군 유천면 도마리 309번지 유천면장 손기섭씨 가정에서 성도 9명으로 장로교회를 창립하였고, 1954년 4월에 현재의 대전 그리스도의 교회 장소로 옮겨 천막교회를 세웠다. 1958년 8월에는 흙벽돌로 20평 교회를 신축하고 교회명칭을 성화교회로 하였다. 한국성서신학교가 1959년 12월 1일에 시작된 장소가 바로 이 건물이었다.


심영진은 바로 이 무렵, 즉 1958년경에 김은석을 만나 환원하였다. 성경을 읽고 세례에 대해서 연구하다가 그가 받은 약식세례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고, 그 일로 고심하고 있던 차에 마침 김은석 목사가 대전 은행동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저물도록 세례에 관해서 토론하였으며, 그 후 일주일간 매일 만나 성경을 놓고 토론하던 중에 더욱 침례를 받아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주간에 방서리 교회에서 김은석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가 있었는데, 함께 가자는 권유를 받고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돌아왔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심영진은 1958년 4월 13일 산상연합집회에 참석한 기념으로 김은석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집회에서 돌아온 심영진 목사는 김은석 목사로부터 부부가 대전 유등천에서 침례를 받았다. 심영진은 이 사실을 교회에 알리고 양심상 장로교회를 할 수 없다고 설득하여 그리스도의 교회로
환원시켰다. 1963년 9월에 시멘블록과 스레트로 40평 교회를 신축한 후 성화교회(聖火敎會)를 도마기독지교회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1975년 12월 4일에 연화 벽돌로 91평 교회를 신축하고 교회명칭을 대전 그리스도의 교회로 변경하였다. 그 후 5년 만에 현재의 건물인 500평 규모의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58년에 환원한 심영진 목사는 1960년대 기간에 한국성서신학교에서 교수로서 가르쳤고 힐 요한 선교사와 협력하였다. 또 심영진 목사는 1959년에 개최된 제1회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회에 성낙소, 장성만, 최요열, 이신 등과 함께 참석하였고, ‘신약교회로의 환원’을 주제로 1961년 8월 17일 부강교회에서 개최된 그리스도의 교회 연합회에도 힐 요한, 장성만, 박재관, 김동열, 이종만, 정인소. 김찬영. 김성철, 이신, 장주열, 성낙소, 안일승, 고재윤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심영진은 현재의
대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30여 년 동안 사역하면서 <계시록 연의>, <계시록 서기>, <성막 조성론>,
<선지자의 사명>, <창조와 섭리>를 저술하였고, 은퇴하고 서울 돈암동교회를 담임하다가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 개척교회를
섬겼다. 사모 박영자로 더불어 일곱 남매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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