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개론 - 제5장 성문서
본문
제5장 성문서
히브리 성서의 세 번째 부분은 '성문서'(聖文書)라고 불린다. 주후 90-100년경 얌니아(Jamnia)에서 바리새인들은 이 부분을 구약의 마지막 정경으로 선별하였다. 이 책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시편, 잠언, 욥기
2)다섯 두루마리 책 - 룻기, 아가, 애가, 에스더, 전도서
3)다니엘, 역대기, 에스라-느헤미야
본서에서는 1. 시편, 2. 지혜문학(잠언, 욥기, 전도서), 3. 다섯 두루마리 책, 3. 묵시문학(다니엘)순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A. 시 편
1. 일반적 고찰
구약성서 안에는 가장 오래된 시들이 있다. 시는 시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서에나 예언서에 널려있다. 예언자의 글을 문학적으로 살펴보면 그 대부분이 시형태의 문장이다.
시편은 기록 된 연대가 다윗 시대인 주전 1,000년부터 주전 200년 사이에 걸친 시 작업으로 이루어졌다(약 800년의 세월). 그리고 이 시편은 제2 성전에서 사용되던 찬송가로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애용하셨다(22:1, 십자가 상에서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초대교회에서 찬송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찬송가 및 복음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시편의 제목은 히브리어로 테힐림(Tehillim)이다. 그 뜻은 "찬양"이며, 70인역으로 번역될 때 프살모니(Psalmoi)라고 붙여졌다. Psalmoi는 '줄이 있는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들'이라는 말이다.
시편의 책은 원래 두 가지 이름이 있었다. 하나는 테힐림(찬양)이고, 또 다른 하나는 텔필로트(기도)이다. 따라서 시편을 읽는 사람은 찬양하는 법과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시편의 시는 삶으로 고백 된 체험시이다(시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문학적인 일에 관심이 없다). 약자인 이스라엘이 강대국을 상대로 고난을 이긴 승리의 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열이 복받쳐 오름으로 생긴 시이다.
그리고 이런 시들은 예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시편은 예배시 사용되었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강했다. 이런 정신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해도 예배는 멎지 않았다(시편 137편).
시편의 전체적인 내용은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노래이며, 다른 하나는 그 하나님을 노래하는 인간 자신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시편에서는 하나님께 신앙을 갖는 것이 가장 큰 보배요, 가장 큰 힘이요, 가장 큰 기쁨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2. 시편의 구조 및 형태
시편의 구조
시편은 전체 150편이 5권의 책으로 되어있다.
제1권 : 1편-42편,
제2권 : 42편-72편,
제3권 : 73편-89편,
제4권 : 90편-106편,
제5권 : 107편-150편.
1편은 시편의 서론이며, 150편은 결론이다.
시편의 형태
시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 H. 궁켈에 의해서이다. 그는 시편을 문학적 양식에 따라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문학적 양식이 어떤 상황에서 탄생되었고, 사용되었는가를 추적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시편 연구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훌륭한 연구였다. 궁켈의 분류(16 - 1. 찬양시, 2. 탄식시(개인, 단체), 3. 감사시, 4. 제왕시-시온의 시, 야훼 대관식의 시, 5. 지혜시.
3. 시편의 제목
34개의 고아시를 제외하고 모두 제목이 있다.
1)시(57개), 예)다윗의 시 -미즈모(Mizmor)라고 되어 있다-뜯는다의 뜻으로 현악에 맞추어 노래할 시이다.
2)노래(Song, 30개), 예) 40편
3)마스길(13개), 예) 시 32:8, 가르쳐 보인다의 뜻, 교훈, 32편, 78편.
4)믹담(Miktam, 6개), 16,56,57,58,59.60이다. 금과 같이 귀한 것(주옥편) 이라는 뜻이다.
5)쉬가욘, 그 성질이 열광적인 과격성을 보인다(시편 7편, 하박국 3장)
6)기도 - 17, 86, 90, 102, 142.
7)찬송시-145편(1회).
4. 문학적 접근
히브리인의 사고 방식은 사변적인 아니고 행동적이다(언어의 특색). 따라서 히브리시도 이런 영향을 받아 상상 속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 그들의 행위, 행동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히브리시는 다른 나라의 시와 시라는 형태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히브리 시만의 독특성이 있다.
히브리시의 대표적인 특징은 평행법이다. 같은 사상을 다른 말로써 중복적으로 표시하여 강조하는 방법이다. 평행법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동의적 평행법 : 시51편 1절에, 유할 자와 거할 자가 동의어로 반복.
반의적 평행법 : 시23편 4절. 위험 / 안위(평안)가 반대어로 반복.
종합적 평행법 : 시2편 6절. 내가 나의 왕을 시온 위에/ 거룩한 산 위에 세우리라. 시온산을 거룩한 산으로 보충하여 반복.
상징적 평행법 : 시103편 11절-13절. 하나님의 자비(인자)가, 하늘과 땅, 동과 서, 아비와 자식이라고 구체적 상황으로 상징되어 표현됨.
계단적 평행법 : 점층적으로 첫시행 표현이 종결되지 않고 다음 행으로 발전되어 가는 평행법이다(29:1-2, 3:2-3).
내성적 평행법 : 시6편 8절-10절. 나를, 내 곡성, 내 간구, 내 기도 등으로 더 발전되어 표현되고 있다.
B. 지혜 문학 연구
1. 서론
구약의 지혜문학은 잠언, 욥기, 전도서 3권의 책이 직접적으로 해당된다. 그러나 지혜문학적인 요소는 오경과 예언서, 시편(37, 49, 112, 133편) 등 구약 전체에서 발견된다.
구약성서에서 지혜란 "호크마," "하캄"이란 단어로 나타난다. 이들의 뜻은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데, 원한을 가라앉히기 위한 간지(왕상1-11장, 잠2:1-2), 공정한 재판을 위한 도덕적인 판단력(왕상3:9, 12), 지성적인 총명과 백과사전적인 지식(왕상4:29-34)등이다. 그리고 지혜자란 비유동적인 고정집단이 아니라 유대인 사회의 각 계층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히브리 지혜는 마술이나 제사라는 측면보다는 교육적인 측면, 즉 사물의 질서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지혜문학은 구약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책들이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적 입장(유일신 신앙, 계약사상, 구원의 역사등)에서 씌여진 반면, 지혜문학은 그 출발점이 신앙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관찰, 즉 인간의 지적인 활동이다. 지혜문학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적 확신이나 종교적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적인 지적 활동을 통해서 삶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가지 해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혜문학도 종착점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적 입장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지혜문학의 정신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적 관찰을 강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신앙고백을 강조하는 구약의 주류의 입장과 인간의 이성적 추구를 강조하는 지혜문학과는 대조되는 관계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생활철학을 뚜렸이 가진 민족이었다. 헬라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무엇을 알고 살아야 하는 지식'을 가르친 민족이라면, 히브리인들의 삶은 '인간으로서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 신앙'을 가르친 민족이며 '신앙에 근거를 둔 생활철학'을 가르쳐 주고 있다. 구약의 생활철학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현실생활을 체험한 경험철학을 단순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금언, 명귀, 얘기체, 드라마 형식, 대화형식 등이다. 이것을 지혜문학이라고 부른다. 지혜문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문장 속에 이스라엘의 삶의 지혜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나는 지혜와 슬기는 다른 지혜문학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닌 야훼 하나님과 관련이 깊다.
그 특징 중 하나로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은 다만 인간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인 책임을 지며 인간의 종교적인 개체성과 개인 생활에 관심을 가진 하나님께 대하여 인간이 어떻게 행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를 보여 주고 있다.
율법과 비교해 보면, 율법은 금지 조항과 적극적 권장(해라, 하지 마라)을 통하여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크다. 그러나 지혜문학은 개인의 삶에 중심을 둔다. 선과 악의 식별, 이해와 손실의 식별, 의와 불의, 공정과 부정등 일상생활의 윤리적 상황에 관심을 두고있다.
2.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
1)구약의 지혜문학은 본래 이스라엘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혜문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 고대 근동지역에서 일찍이 발달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주변국에서 발달한 지혜문학이 솔로몬 왕 때 이스라엘 안으로 수입되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인 면모를 갖추고 근동지역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때 였다.
2)고대 근동에서 "지혜"란 이성과 관찰을 통한 지적인 활동의 총체이다. 곧 고대의 학문을 일컫는 말이다.
3)고대 근동에서의 지혜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가)자연과학적 지혜(Scientific Wisdom)-고대의 자연과학, 천체현상, 의학, 건축술, 수학, 생물학, 측량술 등.
나)실용적 지혜(Practical Wisdom)-고대의 사회과학 "성공적"인 삶의 길.
다)사변적 지혜(Speculative Wisdom )- 고대의 철학, 인간존재에 관한 문제, 삶의 목적, 가치, 고난의 문제 등.
3. 욥기
인간은 왜 고통을 당하느냐? 이 물음은 아마도 욥기의 주제라 할 수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고통을 많이 겪은 민족인데 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주인공 욥 은 결점 없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고통이 찾아 온다. 소유한 재물에서, 열 남매의 자녀들에게서, 자신의 육신에 찾아 온 문둥병에서, 아내의 떠나감에서, 이 고통에 대한 친구들의 몰이해에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냐? 이것은 욥기서 전체를 통한 욥의 주된 관심이다. 그의 친구들은 이 고난의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하여 욥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욥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더 중요시하였다. 따라서 네 명의 친구들과의 변론이 시작된다. 이 내용이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욥기서를 통하여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는 것은 다음과 같다.
1)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공식적인 윤리규범을 어느 상황에서나 철칙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2)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원인 때문에 올 수도 있다.
3)고통의 이유는, 교육적인 목적 때문만이 아니고 고통을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욥은 말하고 있다.
4)대부분의 경우 고통을 받게 되면 하나님을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욥의 경우,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으니 더 감사하고 더 찬송한다.
이상은 지금까지의 인간고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서 인간의 모든 소유보다 하나님과의 교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혜, 슬기의 최고봉이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이해할 길을 마련한 것이다..
4. 잠언서
잠언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마샬'(masal)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뜻은 비슷함, 유사함이다. 이것은 구체적 의미에서 추상적 의미로 발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잠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1~9장 : 신학적 지혜가 수록되어 있다. 솔로몬 제1잠언집
2)10~22장 16절 : 실용적 지혜, 솔로몬 제2잠언집
3)22장 17절~24장 22절 : 지혜로운 사람들의 제1잠언집
4)24장 23절~24장 33절 : 지혜로운 사람들의 제2잠언집
5)25~29장 : 솔로몬의 제3잠언집(실용적 지혜에 대하여 기록)
6)30~31장 : 첨가 부분(아굴과 르무엘의 잠언, 현숙한 여인)
잠언의 대전제는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지혜자는 자신이 행해야 할 명백한 길을 알고 있다. 잠언에서는 길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버려야 할 길은 악인의 길, 음녀의 길, 굽은 길, 패역자의 길, 사망의 길이며, 적극적으로 따라야하며 추구 할 길은 선한 길, 공평의 길, 의인의 길, 명철의 길, 바른 길, 생명의 길이다.
구체적 실생활에 대한 지혜는 부모에게 효도, 남녀성에는 순결, 생업에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말것, 대인관계에는 교만 버리고 항상 겸손, 언어 사용시 혀를 조심할 것, 금주, 거짓말, 뇌물, 불의한 재물을 버릴 것, 공의, 진실, 화평을 도모할 것 등이다.
그리고 사람이 어려운 기로 위에 섰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언에서의 답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길 밖에 없다고 한다.
5. 전도서
이 책의 히브리어 명칭은 '코헬레트'이다. 이 말은 설교자, 전도자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구조는 다음과 같다.
1)1장 1절~11절 : 머리말(표제, 주제)
2)1장 12절~6장 9절 : 인간 업적의 헛됨
3)6장 10절~12장 8절 : 인간 지혜의 헛됨
4)12장 9절~14절 : 결론
전도서의 내용은 허무주의에 가깝다. 대표구절은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밝힌 1장 2절이다. 그러나 허무사상을 고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헛됨을 시인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적 실존에서 허무한 존재임을 알아야 하나님을 시인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쾌락 추구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최고의 슬기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3:11). 그리고 허무를 극복하는 길은 한가지,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는 사람만이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C. 다섯 두루마리 책
1. 룻기
시대 배경은 작품이 기록된 때보다 800년 가량 거슬러 올라간 주전 1200년 무렵의 사사시대이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남편을 따라 모압으로 이주한 나오미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을 그곳에서 사별하고 절망과 허무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아들과 결혼했던 모압 여인 중에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동행하겠다고 하는 데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보리 추수기에 고향으로 돌아 온 그들은 빈털터리 였고, 유대인 보아스는 가난한 외국 여인, 룻을 위해 추수 때 일부러 이삭을 떨어뜨려 룻으로 하여금 줍게 하는 따뜻한 배려를 한다. 그 뒤 룻은 남편의 친족인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는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바로 다윗 왕을 낳았다.
배타주의 사상과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민족주의적인 사상에 저항하여 기록한 것이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한 "룻기"이다.
2. 아가
아가서의 히브리어 이름은'쉬르 하쉬름'이며'노래들 중의 노래'로 번역된다. 우리말 '아가'는 '아름다운 노래의 책'이란 뜻이다.
아가서를 살펴보는 사람은 농도 짙은 남녀간의 사랑의 표현들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자들은 이 책이 정경안에 들어 오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을 생각하여 여러차원에서 해석하였다. 첫째, 아가서의 사랑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 하였다. 그리고 훗날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해석하였다. 둘째, 이 책의 내용은 결혼 축제를 위한 의식적 노래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솔로몬과 바로의 딸의 결혼을 위해 예비된 것으로 생각한다.
아가서는 아직까지도 해석상의 문제를 많이 안고 있는 책이다.
3. 전도서 (앞에서 논했기 때문에 생략함)
4. 애가
예레미야 哀歌서의 히브리어 표재는 "에이카"이며 "어찌할 꼬!"로 번역된다. 애가서는 슬픔을 기록한 책이다. 예루살렘 함락을 목격하고 그 슬픔을 읊은 것으로 587년 이후에 기록한 것으로 본다. 애가는 죄악 많은 유대에 임한 재앙과, 거룩한 도시와 주님의 성전에 임한 처참한 멸망을 애도하는 것이다. 이 아픔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간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구조
다섯 개의 애가로 되어있다. 각 장이 서로 분리된 애가인데 그 내용은 서로 사상과 환경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파괴당할 때의 사정을 알려주고 그것을 슬퍼하는 공통성이 있다. 구조상 특수한 점은 1장에서 4장까지 각 장이 히브리 알파벳순서의 글자를 각 절의 첫머리에 둔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장 알파벳 순서대로 22절을 가졌다. 제3장만은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 하나에 석 절씩 지어 66절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형은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기억의 편리를 위하여 고안된 것이라 한다.
5. 에스더
이 이야기는 페르샤 제국의 수도였던 수사에서 아하수에르란 이름의 왕이 통치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일어난다. 그 당시 모르드개는 유대인으로 관직에 있었고 부모를 잃어 양녀로 기른 그의 조카 미모의 에스더는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가 된다. 그 때 조정의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학살 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안, 에스더가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가면 사형을 받을 줄 알면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지혜로운 기지로서 자신의 목숨도 구하고 유대인의 학살 계획도 저지시킨다.
이 책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 전체는 박해에 직면한 유대인들의 생존과 승리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기념하여 부림절로 지키고 있다.
D. 묵시 문학
1. 서론(17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후대에 기록된 것은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서는 그 당시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묵시문학적인 요소가 강하게 적용되어져 기록되었다. 따라서 다니엘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묵시문학에 대하여 살펴볼 이유가 있다.
포로기 이전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포로기를 거쳐 포로기 이후에는 점차 예언 활동이 줄어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예언자들은 역사를 하나님의 활동 무대로 이해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역사의 심판자가 되시고, 구속 주가 되신다고 이해하였고.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의 활동하는 무대이며,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장이다. 즉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나타난다(Revelation through history). 이러한 역사이해는 구약 신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경, 역사서(신명기, 역대기 역사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모두 이러한 역사이해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적인 과정과 역사적인 현실을 통해서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입장에서 역사의 의미는 분명하고, 명백하며, 역사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은 멸망하였고 바벨론 포로(Babylonian Captivity)라는 역사적 비극이 시작되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538년) 귀향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예언자들이 보여 주었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아름다운 꿈들은 역사적인 현실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페르샤 제국(539-333) 이후의 희랍제국(333이후) 밑에서 수난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이러한 실망되는 상황에서, 역사의 무대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게만 보였고, 역사의 의미는 불투명하게만 되어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역사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까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이해 가운데서 묵시문학이 일어나게 되었다.
포로기 이후 시대부터 예언자들은 천천히 퇴장하고 그 대신 묵시문학 전승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언자 활동이 끝나는 때와 묵시문학이 시작되는 때는 양자가 중복되어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사야 56-66장, 스가랴 9장-14장 등이다. 이들은 예언이기는 하나 신학적으로 묵시문학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들은 "초기 묵시문학"(Proto-Apocalyptic)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예언전승에서 묵시문학으로 넘어오는 교량적인 위치에 있으며, 구약 묵시문학의 출발점으로 본다.
묵시문학은 전통적인 신앙의 논리로서 납득하기 어렵고, 또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역사적 현실, 악한 세력이 득세한 부조리 상황, 모든 희망이 단절될 듯한 절망적인 고난,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이러한 삶의 자리(Situation in Life)에서 구약의 묵시문학이 잉태되었고 자라났다. 묵시문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독특한 역사이해에 있다.
첫째로 묵시문학은 현재의 역사에 대하여 극도의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무대도 아니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현장도 아니라고 한다. 현재의 역사는 오히려 악한 세력이 장악하고 통치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항거하는 악한 세력(Power of Evil)이 현재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악한자가 흥하고 의로운 자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보고 있다.
악의 세력이 현재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묵시문학의 역사이해에 따르면 역사가 연장되는 역사의 지평 위에서는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역사의 시간적 연장은 오직 악의 세력의 확대일 뿐이다. 따라서 묵시전통에 있어서 역사의 진행은 발전의 과정이 아니다. 미래의 희망은 오직 역사의 종말(eschation)에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묵시문학의 역사이해의 핵심부분이 되는 "시간적 이원론"(Temporal dualism)이 등장한다. 즉 시간을 두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시간"(The present)과 "앞으로 올 시대"(The age to come)이다. 전자는 악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암흑의 시대요, 후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의로운 빛의 시대이다. "현재의 시대는 의로운 자가 핍박받는 시대요. 참된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수난당하는 시대이다." "미래의 시대"는 의를 지키고 신앙을 사수한 사람들이 빛난 영광을 누릴 시대이다.
둘째로 묵시문학에서는 역사의 온 과정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는 미리 정해진 역사과정의 시간표에 따라서 종말(eschation)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어떠한 궤도 수정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결정된 미래이다. 묵시문학의 이러한 닫혀진 역사이해는 예언자들의 역사관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미래는 열려진 미래이고,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미래이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고, 이에 합당한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죄의 길로부터 돌아서서 회개만 한다면 하나님의 징벌은 취소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이와는 달리, 묵시문학에서 역사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해 놓은 예정표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종말을 향해 진행 될 뿐이다. 묵시문학은 이 종말의 날은 이미 임박하였고, 현재의 역사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한다.
묵시가(Seer)란, 하나님께서 미리 확정해 놓으신 역사의 시간표(극비사항)에 대하여 계시받은 사람이었다.
셋째로 묵시문학의 역사 이해에 있어서 "종말론"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묵시문학은 "역사의 종말"을 강조한다. 역사의 종말은 현재의 역사를 장악하고 있는 악의 세력이 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암흑시대"에서 "앞으로 올 빛의 시대"는 어떻게 전환되는가? 묵시문학은 양자사이의 단절의 불연속을 강조한다.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 완전히 종말됨으로써 "새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종말(eschation)은 역사를 장악하고 있던 악의 세력이 파멸하는 날이요, 옛질서가 붕괴되는 날이다. 따라서 묵시문학의 종말론은 절대적, 혹은 극단적 종말론(radical Eschatology)이다. 그런데 묵시전통에 의하면 이 종말은 앞으로 요원한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임박해 있는 종말이다. 묵시문학은 이렇게 "임박한 종말의식"때문에 수난과 시간도 곧 끝 날 것이며 따라서 새 시대가 도래하는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악한 "현재의 역사"는 어떻게 끝나고 "새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가? 묵시문학에 의하면 악의 세력은 자멸하거나 자진해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파멸시키는 우주적인 대 전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장(Divine Warrior)이 되시어, 악의 세력과 대결한다. 이 전쟁은 지상의 전쟁이 아닌 우주적인 차원의 초역사적인 대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결국 하나님은 승리하시고, 악의 세력을 전멸한다, 이로서 현재의 역사는 종말을 고한다. 이것은 곧 새창조로 이어진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 새창조의 세계에는 누가 참여하는가? 묵시문학은 수난과 핍박 중에도 의와 신앙을 사수해 온 "빛의 자녀"들만이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묵시문학의 독특한 역사이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억압과 고통, 혼돈의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이해는 어디까지나 신앙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를 변호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수하려는 동기에서 묵시문학이 발생되었다. 묵시문학은 현재의 상황이 비록 암담한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고수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확신을 말해주고 있다.
묵시문학의 외형적, 문학적 특징 중의 한 가지는, 저자는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신 과거 이스라엘 역사에서 위대한 신앙인들(예, 모세. 엘리야, 아브라함 등)을 책의 저자로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가명성은 묵시문학의 특징이다. 또한 묵시문학은 이러한 유명한 인물들에게 하나님께서 역사의 진행과정과 마지막 종말에 관한 비밀을 보여 주신 형태로 되어있다. 묵시문학을 뜻하는 "Apocalyptic"이라는 말은 희랍어의 "apokalyptein"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비밀의 신비를 벗겨 보여준다"의 뜻이다.
2. 다니엘
묵시문학의 전성기는 200-100사이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묵시문학이 쓰여졌다. 이 시대의 묵시작품 중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다니엘서 뿐이다. 다니엘서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 다니엘서가 쓰여진 시기는 마카비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극심한 종교적 탄압을 받고 있을 때이다(160년대).
1)다니엘의 역사적 배경
주전 333년 알렉산더는 페르샤 제국을 무찌르고 희랍제국을 건설한다. 알렉산더가 죽자, 그가 이룩해 놓은 거대한 제국은 4명의 장군에 의해서 사분되었다. 팔레스틴 지역은 이집트를 분할 받은 프톨레미의 지배에 들어갔고, 그의 관용주의 정책에 따라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은 비교적 평온을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주전 198년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분할 받은 셀류시드 는 프톨레미로 부터 팔레스틴 지역을 빼앗고, 팔레스틴 지역을 귀속시켰다. 그의 정책은 통치지역을 희랍문명으로 통일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유대인에게도 희랍문명을 강요하였다. 특히 그 후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들의 종교를 탄압하였다. 안식일과 할레를 금하고 성전안에 제우신을 세워 숭배하게 하고, 금기로 여기는 돼지고기를 희생제물로 바치고 또 강제로 먹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현실에 적응하려는 사람(헬레니스트)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고수하겠다는 사람들(하시딤)로 갈라지게 되었다. 다니엘서는 신앙의 투쟁을 하였던 하시딤에 의해서 하시딤들을 위해서 씌여진 책이다. 즉 다니엘서는 종교적 박해 가운데서도 (1)변절하지 말고 신앙을 지킬 것과 (2)임박한 종말의 비젼을 보여줌으로서 하시딤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록된 묵시문학이다.
2)다니엘서의 내용
두 부분으로 구분
(1)1-6장 : 다니엘과 세친구에 관한 이야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신앙의 순수성과 충성을 강조함.
1장-다니엘과 세 친구의 율법준수(바벨론 왕궁에서) 2장-여러 제국의 멸망과 하나님의 통치 왕국 수립 예언 3-6장 풀무불 속에서도 변치 않는 신앙
(2)7-12장 다니엘이 본 마지막 날의 묵시
다니엘에게 보여진 역사의 시간표-상징적인 표현들
네 가지 짐승-네 제국들, 금신상, 한 때 두 때 반 때-3년반, 1290일, 1335일- 모두 임박한 종말을 말해 줌.
묵시문학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과 좌절에서 현재의 역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이다. 즉 묵시문학은 신학자의 조용한 서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혼란된 역사의 와중에서 신앙의 의인들이 핍박받는 역사 안에서,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는 삶의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묵시문학의 동기와 목적은 악의 세력이 비록 성할지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변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 성서의 세 번째 부분은 '성문서'(聖文書)라고 불린다. 주후 90-100년경 얌니아(Jamnia)에서 바리새인들은 이 부분을 구약의 마지막 정경으로 선별하였다. 이 책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시편, 잠언, 욥기
2)다섯 두루마리 책 - 룻기, 아가, 애가, 에스더, 전도서
3)다니엘, 역대기, 에스라-느헤미야
본서에서는 1. 시편, 2. 지혜문학(잠언, 욥기, 전도서), 3. 다섯 두루마리 책, 3. 묵시문학(다니엘)순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A. 시 편
1. 일반적 고찰
구약성서 안에는 가장 오래된 시들이 있다. 시는 시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서에나 예언서에 널려있다. 예언자의 글을 문학적으로 살펴보면 그 대부분이 시형태의 문장이다.
시편은 기록 된 연대가 다윗 시대인 주전 1,000년부터 주전 200년 사이에 걸친 시 작업으로 이루어졌다(약 800년의 세월). 그리고 이 시편은 제2 성전에서 사용되던 찬송가로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애용하셨다(22:1, 십자가 상에서 -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초대교회에서 찬송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도 찬송가 및 복음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시편의 제목은 히브리어로 테힐림(Tehillim)이다. 그 뜻은 "찬양"이며, 70인역으로 번역될 때 프살모니(Psalmoi)라고 붙여졌다. Psalmoi는 '줄이 있는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들'이라는 말이다.
시편의 책은 원래 두 가지 이름이 있었다. 하나는 테힐림(찬양)이고, 또 다른 하나는 텔필로트(기도)이다. 따라서 시편을 읽는 사람은 찬양하는 법과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시편의 시는 삶으로 고백 된 체험시이다(시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문학적인 일에 관심이 없다). 약자인 이스라엘이 강대국을 상대로 고난을 이긴 승리의 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열이 복받쳐 오름으로 생긴 시이다.
그리고 이런 시들은 예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시편은 예배시 사용되었다. 따라서 공동체적인 요소가 강했다. 이런 정신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해도 예배는 멎지 않았다(시편 137편).
시편의 전체적인 내용은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노래이며, 다른 하나는 그 하나님을 노래하는 인간 자신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시편에서는 하나님께 신앙을 갖는 것이 가장 큰 보배요, 가장 큰 힘이요, 가장 큰 기쁨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2. 시편의 구조 및 형태
시편의 구조
시편은 전체 150편이 5권의 책으로 되어있다.
제1권 : 1편-42편,
제2권 : 42편-72편,
제3권 : 73편-89편,
제4권 : 90편-106편,
제5권 : 107편-150편.
1편은 시편의 서론이며, 150편은 결론이다.
시편의 형태
시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 H. 궁켈에 의해서이다. 그는 시편을 문학적 양식에 따라 분류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문학적 양식이 어떤 상황에서 탄생되었고, 사용되었는가를 추적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시편 연구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정도로 훌륭한 연구였다. 궁켈의 분류(16 - 1. 찬양시, 2. 탄식시(개인, 단체), 3. 감사시, 4. 제왕시-시온의 시, 야훼 대관식의 시, 5. 지혜시.
3. 시편의 제목
34개의 고아시를 제외하고 모두 제목이 있다.
1)시(57개), 예)다윗의 시 -미즈모(Mizmor)라고 되어 있다-뜯는다의 뜻으로 현악에 맞추어 노래할 시이다.
2)노래(Song, 30개), 예) 40편
3)마스길(13개), 예) 시 32:8, 가르쳐 보인다의 뜻, 교훈, 32편, 78편.
4)믹담(Miktam, 6개), 16,56,57,58,59.60이다. 금과 같이 귀한 것(주옥편) 이라는 뜻이다.
5)쉬가욘, 그 성질이 열광적인 과격성을 보인다(시편 7편, 하박국 3장)
6)기도 - 17, 86, 90, 102, 142.
7)찬송시-145편(1회).
4. 문학적 접근
히브리인의 사고 방식은 사변적인 아니고 행동적이다(언어의 특색). 따라서 히브리시도 이런 영향을 받아 상상 속에서 쓰여진 것이 아닌 그들의 행위, 행동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히브리시는 다른 나라의 시와 시라는 형태에서 유사성이 있지만 히브리 시만의 독특성이 있다.
히브리시의 대표적인 특징은 평행법이다. 같은 사상을 다른 말로써 중복적으로 표시하여 강조하는 방법이다. 평행법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동의적 평행법 : 시51편 1절에, 유할 자와 거할 자가 동의어로 반복.
반의적 평행법 : 시23편 4절. 위험 / 안위(평안)가 반대어로 반복.
종합적 평행법 : 시2편 6절. 내가 나의 왕을 시온 위에/ 거룩한 산 위에 세우리라. 시온산을 거룩한 산으로 보충하여 반복.
상징적 평행법 : 시103편 11절-13절. 하나님의 자비(인자)가, 하늘과 땅, 동과 서, 아비와 자식이라고 구체적 상황으로 상징되어 표현됨.
계단적 평행법 : 점층적으로 첫시행 표현이 종결되지 않고 다음 행으로 발전되어 가는 평행법이다(29:1-2, 3:2-3).
내성적 평행법 : 시6편 8절-10절. 나를, 내 곡성, 내 간구, 내 기도 등으로 더 발전되어 표현되고 있다.
B. 지혜 문학 연구
1. 서론
구약의 지혜문학은 잠언, 욥기, 전도서 3권의 책이 직접적으로 해당된다. 그러나 지혜문학적인 요소는 오경과 예언서, 시편(37, 49, 112, 133편) 등 구약 전체에서 발견된다.
구약성서에서 지혜란 "호크마," "하캄"이란 단어로 나타난다. 이들의 뜻은 문맥에 따라 달라지는 데, 원한을 가라앉히기 위한 간지(왕상1-11장, 잠2:1-2), 공정한 재판을 위한 도덕적인 판단력(왕상3:9, 12), 지성적인 총명과 백과사전적인 지식(왕상4:29-34)등이다. 그리고 지혜자란 비유동적인 고정집단이 아니라 유대인 사회의 각 계층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히브리 지혜는 마술이나 제사라는 측면보다는 교육적인 측면, 즉 사물의 질서와 의미를 발견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지혜문학은 구약 안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책들이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적 입장(유일신 신앙, 계약사상, 구원의 역사등)에서 씌여진 반면, 지혜문학은 그 출발점이 신앙고백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관찰, 즉 인간의 지적인 활동이다. 지혜문학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신앙적 확신이나 종교적 가르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적인 지적 활동을 통해서 삶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가지 해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혜문학도 종착점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의 신앙적 입장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지혜문학의 정신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적 관찰을 강조하는 데 있다. 따라서 신앙고백을 강조하는 구약의 주류의 입장과 인간의 이성적 추구를 강조하는 지혜문학과는 대조되는 관계에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의 생활철학을 뚜렸이 가진 민족이었다. 헬라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무엇을 알고 살아야 하는 지식'을 가르친 민족이라면, 히브리인들의 삶은 '인간으로서 무엇을 믿고 살아야 하는 신앙'을 가르친 민족이며 '신앙에 근거를 둔 생활철학'을 가르쳐 주고 있다. 구약의 생활철학들은 철저하게 인간의 현실생활을 체험한 경험철학을 단순한 문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금언, 명귀, 얘기체, 드라마 형식, 대화형식 등이다. 이것을 지혜문학이라고 부른다. 지혜문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런 문장 속에 이스라엘의 삶의 지혜가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나는 지혜와 슬기는 다른 지혜문학에서 발견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닌 야훼 하나님과 관련이 깊다.
그 특징 중 하나로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은 다만 인간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인 책임을 지며 인간의 종교적인 개체성과 개인 생활에 관심을 가진 하나님께 대하여 인간이 어떻게 행하고 살아가야 하는 가를 보여 주고 있다.
율법과 비교해 보면, 율법은 금지 조항과 적극적 권장(해라, 하지 마라)을 통하여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크다. 그러나 지혜문학은 개인의 삶에 중심을 둔다. 선과 악의 식별, 이해와 손실의 식별, 의와 불의, 공정과 부정등 일상생활의 윤리적 상황에 관심을 두고있다.
2. 고대 근동의 지혜문학
1)구약의 지혜문학은 본래 이스라엘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혜문학은 그 기원에 있어서 고대 근동지역에서 일찍이 발달하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주변국에서 발달한 지혜문학이 솔로몬 왕 때 이스라엘 안으로 수입되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인 면모를 갖추고 근동지역에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때 였다.
2)고대 근동에서 "지혜"란 이성과 관찰을 통한 지적인 활동의 총체이다. 곧 고대의 학문을 일컫는 말이다.
3)고대 근동에서의 지혜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가)자연과학적 지혜(Scientific Wisdom)-고대의 자연과학, 천체현상, 의학, 건축술, 수학, 생물학, 측량술 등.
나)실용적 지혜(Practical Wisdom)-고대의 사회과학 "성공적"인 삶의 길.
다)사변적 지혜(Speculative Wisdom )- 고대의 철학, 인간존재에 관한 문제, 삶의 목적, 가치, 고난의 문제 등.
3. 욥기
인간은 왜 고통을 당하느냐? 이 물음은 아마도 욥기의 주제라 할 수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고통을 많이 겪은 민족인데 그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의 산물로 볼 수도 있다. 주인공 욥 은 결점 없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고통이 찾아 온다. 소유한 재물에서, 열 남매의 자녀들에게서, 자신의 육신에 찾아 온 문둥병에서, 아내의 떠나감에서, 이 고통에 대한 친구들의 몰이해에서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냐? 이것은 욥기서 전체를 통한 욥의 주된 관심이다. 그의 친구들은 이 고난의 상태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하여 욥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욥은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더 중요시하였다. 따라서 네 명의 친구들과의 변론이 시작된다. 이 내용이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욥기서를 통하여 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는 것은 다음과 같다.
1)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선을 행하면 복을 받는다는 공식적인 윤리규범을 어느 상황에서나 철칙으로 내세울 수는 없다.
2)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원인 때문에 올 수도 있다.
3)고통의 이유는, 교육적인 목적 때문만이 아니고 고통을 인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욥은 말하고 있다.
4)대부분의 경우 고통을 받게 되면 하나님을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욥의 경우,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으니 더 감사하고 더 찬송한다.
이상은 지금까지의 인간고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서 인간의 모든 소유보다 하나님과의 교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혜, 슬기의 최고봉이며,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하여 이해할 길을 마련한 것이다..
4. 잠언서
잠언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마샬'(masal)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의 뜻은 비슷함, 유사함이다. 이것은 구체적 의미에서 추상적 의미로 발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잠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1~9장 : 신학적 지혜가 수록되어 있다. 솔로몬 제1잠언집
2)10~22장 16절 : 실용적 지혜, 솔로몬 제2잠언집
3)22장 17절~24장 22절 : 지혜로운 사람들의 제1잠언집
4)24장 23절~24장 33절 : 지혜로운 사람들의 제2잠언집
5)25~29장 : 솔로몬의 제3잠언집(실용적 지혜에 대하여 기록)
6)30~31장 : 첨가 부분(아굴과 르무엘의 잠언, 현숙한 여인)
잠언의 대전제는 최고의 지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이런 지혜자는 자신이 행해야 할 명백한 길을 알고 있다. 잠언에서는 길에 대하여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버려야 할 길은 악인의 길, 음녀의 길, 굽은 길, 패역자의 길, 사망의 길이며, 적극적으로 따라야하며 추구 할 길은 선한 길, 공평의 길, 의인의 길, 명철의 길, 바른 길, 생명의 길이다.
구체적 실생활에 대한 지혜는 부모에게 효도, 남녀성에는 순결, 생업에는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말것, 대인관계에는 교만 버리고 항상 겸손, 언어 사용시 혀를 조심할 것, 금주, 거짓말, 뇌물, 불의한 재물을 버릴 것, 공의, 진실, 화평을 도모할 것 등이다.
그리고 사람이 어려운 기로 위에 섰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언에서의 답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길 밖에 없다고 한다.
5. 전도서
이 책의 히브리어 명칭은 '코헬레트'이다. 이 말은 설교자, 전도자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구조는 다음과 같다.
1)1장 1절~11절 : 머리말(표제, 주제)
2)1장 12절~6장 9절 : 인간 업적의 헛됨
3)6장 10절~12장 8절 : 인간 지혜의 헛됨
4)12장 9절~14절 : 결론
전도서의 내용은 허무주의에 가깝다. 대표구절은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밝힌 1장 2절이다. 그러나 허무사상을 고취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헛됨을 시인하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적 실존에서 허무한 존재임을 알아야 하나님을 시인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쾌락 추구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최고의 슬기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3:11). 그리고 허무를 극복하는 길은 한가지,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는 사람만이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이다.
C. 다섯 두루마리 책
1. 룻기
시대 배경은 작품이 기록된 때보다 800년 가량 거슬러 올라간 주전 1200년 무렵의 사사시대이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남편을 따라 모압으로 이주한 나오미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을 그곳에서 사별하고 절망과 허무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 때 아들과 결혼했던 모압 여인 중에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동행하겠다고 하는 데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보리 추수기에 고향으로 돌아 온 그들은 빈털터리 였고, 유대인 보아스는 가난한 외국 여인, 룻을 위해 추수 때 일부러 이삭을 떨어뜨려 룻으로 하여금 줍게 하는 따뜻한 배려를 한다. 그 뒤 룻은 남편의 친족인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는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바로 다윗 왕을 낳았다.
배타주의 사상과 외국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민족주의적인 사상에 저항하여 기록한 것이 아름다운 전원을 배경으로 한 "룻기"이다.
2. 아가
아가서의 히브리어 이름은'쉬르 하쉬름'이며'노래들 중의 노래'로 번역된다. 우리말 '아가'는 '아름다운 노래의 책'이란 뜻이다.
아가서를 살펴보는 사람은 농도 짙은 남녀간의 사랑의 표현들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자들은 이 책이 정경안에 들어 오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을 생각하여 여러차원에서 해석하였다. 첫째, 아가서의 사랑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를 나타낸 것으로 이해 하였다. 그리고 훗날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해석하였다. 둘째, 이 책의 내용은 결혼 축제를 위한 의식적 노래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솔로몬과 바로의 딸의 결혼을 위해 예비된 것으로 생각한다.
아가서는 아직까지도 해석상의 문제를 많이 안고 있는 책이다.
3. 전도서 (앞에서 논했기 때문에 생략함)
4. 애가
예레미야 哀歌서의 히브리어 표재는 "에이카"이며 "어찌할 꼬!"로 번역된다. 애가서는 슬픔을 기록한 책이다. 예루살렘 함락을 목격하고 그 슬픔을 읊은 것으로 587년 이후에 기록한 것으로 본다. 애가는 죄악 많은 유대에 임한 재앙과, 거룩한 도시와 주님의 성전에 임한 처참한 멸망을 애도하는 것이다. 이 아픔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손길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은혜를 간구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구조
다섯 개의 애가로 되어있다. 각 장이 서로 분리된 애가인데 그 내용은 서로 사상과 환경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주전 587년 예루살렘이 파괴당할 때의 사정을 알려주고 그것을 슬퍼하는 공통성이 있다. 구조상 특수한 점은 1장에서 4장까지 각 장이 히브리 알파벳순서의 글자를 각 절의 첫머리에 둔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장 알파벳 순서대로 22절을 가졌다. 제3장만은 히브리어 알파벳 글자 하나에 석 절씩 지어 66절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형은 상당히 후대의 것으로 기억의 편리를 위하여 고안된 것이라 한다.
5. 에스더
이 이야기는 페르샤 제국의 수도였던 수사에서 아하수에르란 이름의 왕이 통치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일어난다. 그 당시 모르드개는 유대인으로 관직에 있었고 부모를 잃어 양녀로 기른 그의 조카 미모의 에스더는 왕의 총애를 받는 왕비가 된다. 그 때 조정의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학살 할 계획을 세웠고 이를 안, 에스더가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가면 사형을 받을 줄 알면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지혜로운 기지로서 자신의 목숨도 구하고 유대인의 학살 계획도 저지시킨다.
이 책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이야기 전체는 박해에 직면한 유대인들의 생존과 승리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기념하여 부림절로 지키고 있다.
D. 묵시 문학
1. 서론(17
구약성경 중에서 가장 후대에 기록된 것은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서는 그 당시 사회적 상황에 의해서 묵시문학적인 요소가 강하게 적용되어져 기록되었다. 따라서 다니엘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묵시문학에 대하여 살펴볼 이유가 있다.
포로기 이전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포로기를 거쳐 포로기 이후에는 점차 예언 활동이 줄어들어 자취를 감추었다. 예언자들은 역사를 하나님의 활동 무대로 이해했다. 창조주 하나님은 역사의 심판자가 되시고, 구속 주가 되신다고 이해하였고. 따라서 역사는 하나님의 활동하는 무대이며,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장이다. 즉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나타난다(Revelation through history). 이러한 역사이해는 구약 신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경, 역사서(신명기, 역대기 역사서), 예언자들의 메시지는 모두 이러한 역사이해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역사적인 과정과 역사적인 현실을 통해서 현장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입장에서 역사의 의미는 분명하고, 명백하며, 역사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587년 유다왕국은 멸망하였고 바벨론 포로(Babylonian Captivity)라는 역사적 비극이 시작되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나고(538년) 귀향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예언자들이 보여 주었던 이스라엘 회복에 대한 아름다운 꿈들은 역사적인 현실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고 페르샤 제국(539-333) 이후의 희랍제국(333이후) 밑에서 수난의 역사는 계속되었다. 이러한 실망되는 상황에서, 역사의 무대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점점 멀어지게만 보였고, 역사의 의미는 불투명하게만 되어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역사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까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역사이해 가운데서 묵시문학이 일어나게 되었다.
포로기 이후 시대부터 예언자들은 천천히 퇴장하고 그 대신 묵시문학 전승이 일어나게 되었다. 예언자 활동이 끝나는 때와 묵시문학이 시작되는 때는 양자가 중복되어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사야 56-66장, 스가랴 9장-14장 등이다. 이들은 예언이기는 하나 신학적으로 묵시문학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들은 "초기 묵시문학"(Proto-Apocalyptic)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예언전승에서 묵시문학으로 넘어오는 교량적인 위치에 있으며, 구약 묵시문학의 출발점으로 본다.
묵시문학은 전통적인 신앙의 논리로서 납득하기 어렵고, 또 설명하기 어려운 비극적인 역사적 현실, 악한 세력이 득세한 부조리 상황, 모든 희망이 단절될 듯한 절망적인 고난,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이러한 삶의 자리(Situation in Life)에서 구약의 묵시문학이 잉태되었고 자라났다. 묵시문학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독특한 역사이해에 있다.
첫째로 묵시문학은 현재의 역사에 대하여 극도의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실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는 무대도 아니요,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현장도 아니라고 한다. 현재의 역사는 오히려 악한 세력이 장악하고 통치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하나님께 항거하는 악한 세력(Power of Evil)이 현재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악한자가 흥하고 의로운 자들이 고통을 당한다고 보고 있다.
악의 세력이 현재의 역사를 지배하고 있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묵시문학의 역사이해에 따르면 역사가 연장되는 역사의 지평 위에서는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역사의 시간적 연장은 오직 악의 세력의 확대일 뿐이다. 따라서 묵시전통에 있어서 역사의 진행은 발전의 과정이 아니다. 미래의 희망은 오직 역사의 종말(eschation)에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묵시문학의 역사이해의 핵심부분이 되는 "시간적 이원론"(Temporal dualism)이 등장한다. 즉 시간을 두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의 시간"(The present)과 "앞으로 올 시대"(The age to come)이다. 전자는 악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암흑의 시대요, 후자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의로운 빛의 시대이다. "현재의 시대는 의로운 자가 핍박받는 시대요. 참된 신앙을 수호하기 위해 수난당하는 시대이다." "미래의 시대"는 의를 지키고 신앙을 사수한 사람들이 빛난 영광을 누릴 시대이다.
둘째로 묵시문학에서는 역사의 온 과정은 이미 확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역사는 미리 정해진 역사과정의 시간표에 따라서 종말(eschation)을 향해서 진행되고 있으며, 어떠한 궤도 수정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결정된 미래이다. 묵시문학의 이러한 닫혀진 역사이해는 예언자들의 역사관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미래는 열려진 미래이고,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미래이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죄를 책망하고, 이에 합당한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죄의 길로부터 돌아서서 회개만 한다면 하나님의 징벌은 취소될 수도 있다. 따라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이와는 달리, 묵시문학에서 역사는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해 놓은 예정표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종말을 향해 진행 될 뿐이다. 묵시문학은 이 종말의 날은 이미 임박하였고, 현재의 역사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한다.
묵시가(Seer)란, 하나님께서 미리 확정해 놓으신 역사의 시간표(극비사항)에 대하여 계시받은 사람이었다.
셋째로 묵시문학의 역사 이해에 있어서 "종말론"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묵시문학은 "역사의 종말"을 강조한다. 역사의 종말은 현재의 역사를 장악하고 있는 악의 세력이 파멸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암흑시대"에서 "앞으로 올 빛의 시대"는 어떻게 전환되는가? 묵시문학은 양자사이의 단절의 불연속을 강조한다.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 완전히 종말됨으로써 "새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종말(eschation)은 역사를 장악하고 있던 악의 세력이 파멸하는 날이요, 옛질서가 붕괴되는 날이다. 따라서 묵시문학의 종말론은 절대적, 혹은 극단적 종말론(radical Eschatology)이다. 그런데 묵시전통에 의하면 이 종말은 앞으로 요원한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임박해 있는 종말이다. 묵시문학은 이렇게 "임박한 종말의식"때문에 수난과 시간도 곧 끝 날 것이며 따라서 새 시대가 도래하는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악한 "현재의 역사"는 어떻게 끝나고 "새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가? 묵시문학에 의하면 악의 세력은 자멸하거나 자진해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파멸시키는 우주적인 대 전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께서 무장(Divine Warrior)이 되시어, 악의 세력과 대결한다. 이 전쟁은 지상의 전쟁이 아닌 우주적인 차원의 초역사적인 대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결국 하나님은 승리하시고, 악의 세력을 전멸한다, 이로서 현재의 역사는 종말을 고한다. 이것은 곧 새창조로 이어진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이 새창조의 세계에는 누가 참여하는가? 묵시문학은 수난과 핍박 중에도 의와 신앙을 사수해 온 "빛의 자녀"들만이 오직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묵시문학의 독특한 역사이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스라엘의 억압과 고통, 혼돈의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역사이해는 어디까지나 신앙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의를 변호하고,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수하려는 동기에서 묵시문학이 발생되었다. 묵시문학은 현재의 상황이 비록 암담한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신앙의 순수성을 고수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할 것이라는 확신을 말해주고 있다.
묵시문학의 외형적, 문학적 특징 중의 한 가지는, 저자는 본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신 과거 이스라엘 역사에서 위대한 신앙인들(예, 모세. 엘리야, 아브라함 등)을 책의 저자로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가명성은 묵시문학의 특징이다. 또한 묵시문학은 이러한 유명한 인물들에게 하나님께서 역사의 진행과정과 마지막 종말에 관한 비밀을 보여 주신 형태로 되어있다. 묵시문학을 뜻하는 "Apocalyptic"이라는 말은 희랍어의 "apokalyptein"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비밀의 신비를 벗겨 보여준다"의 뜻이다.
2. 다니엘
묵시문학의 전성기는 200-100사이의 기간이었다. 이 기간동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는 방대한 분량의 묵시문학이 쓰여졌다. 이 시대의 묵시작품 중에서 정경으로 인정받은 것은 다니엘서 뿐이다. 다니엘서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 다니엘서가 쓰여진 시기는 마카비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극심한 종교적 탄압을 받고 있을 때이다(160년대).
1)다니엘의 역사적 배경
주전 333년 알렉산더는 페르샤 제국을 무찌르고 희랍제국을 건설한다. 알렉산더가 죽자, 그가 이룩해 놓은 거대한 제국은 4명의 장군에 의해서 사분되었다. 팔레스틴 지역은 이집트를 분할 받은 프톨레미의 지배에 들어갔고, 그의 관용주의 정책에 따라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은 비교적 평온을 유지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주전 198년 메소포타미아와 시리아를 분할 받은 셀류시드 는 프톨레미로 부터 팔레스틴 지역을 빼앗고, 팔레스틴 지역을 귀속시켰다. 그의 정책은 통치지역을 희랍문명으로 통일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유대인에게도 희랍문명을 강요하였다. 특히 그 후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들의 종교를 탄압하였다. 안식일과 할레를 금하고 성전안에 제우신을 세워 숭배하게 하고, 금기로 여기는 돼지고기를 희생제물로 바치고 또 강제로 먹게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현실에 적응하려는 사람(헬레니스트)과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고수하겠다는 사람들(하시딤)로 갈라지게 되었다. 다니엘서는 신앙의 투쟁을 하였던 하시딤에 의해서 하시딤들을 위해서 씌여진 책이다. 즉 다니엘서는 종교적 박해 가운데서도 (1)변절하지 말고 신앙을 지킬 것과 (2)임박한 종말의 비젼을 보여줌으로서 하시딤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록된 묵시문학이다.
2)다니엘서의 내용
두 부분으로 구분
(1)1-6장 : 다니엘과 세친구에 관한 이야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신앙의 순수성과 충성을 강조함.
1장-다니엘과 세 친구의 율법준수(바벨론 왕궁에서) 2장-여러 제국의 멸망과 하나님의 통치 왕국 수립 예언 3-6장 풀무불 속에서도 변치 않는 신앙
(2)7-12장 다니엘이 본 마지막 날의 묵시
다니엘에게 보여진 역사의 시간표-상징적인 표현들
네 가지 짐승-네 제국들, 금신상, 한 때 두 때 반 때-3년반, 1290일, 1335일- 모두 임박한 종말을 말해 줌.
묵시문학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과 좌절에서 현재의 역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가운데 생겨난 것이다. 즉 묵시문학은 신학자의 조용한 서재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혼란된 역사의 와중에서 신앙의 의인들이 핍박받는 역사 안에서,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없는 삶의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묵시문학의 동기와 목적은 악의 세력이 비록 성할지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변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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