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sub_1_23.GIF

sub_1_24.GIF

sub_1_25.GIF

sub_1_26.GIF

 

 

 

 

 

 

 
작성일 : 22-05-20 15:43
이미(누림)와 아직(기원)(고전 16:22, 계 22:20, 롬 5:1-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43  

이미(누림)와 아직(기원)(고전 16:22, 계 22:20, 롬 5:1-11)

그리스도교 예배와 삶은 종말론적이다. 그 속에는 감사, 기념, 기원, 선취, 헌신의 의미가 담겨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마라나 타’, 우리 주님, 오십시오.”와 계시록 22장 20절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는 미래종말적인 기원의 의미가 담겨있지만, 이 아람어를 ‘마란 아타’라고 읽으면, ‘우리 주님 오셨다’가 되어 현재(실현된)종말적인 감사와 선취가 된다. 이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니’(Not yet) 사이에는 환난과 역경이 있다(롬 5:1-11).
 
베스파니아누스가 유대정복을 기념하여 주후 71년에 발행한 주화들의 뒷면에는 유대인 포로들이 새겨져 있다. 가스실에 들어가기 전 유대인들의 마지막 소원이 유대멸망이 새겨진 로마시대의 그 주화들의 복사본을 손에 쥐고 죽는 일이었던 것이나 어느 날 풍문으로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자기네 조국 이스라엘이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2천년 동안 기다렸던 그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안 순간 4만3천명의 유대인들이 냄비쪼가리와 멍석 하나 말아 메고 모든 재산을 버린 채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했던 힘(power), 마치 버스 정거장에서 다음 버스 기다리듯 2천년을 기다리게 한 승리(victory)의 원동력은 시오니즘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의 원동력도 현재종말(시작된 혹은 실현된 종말)의 누림과 미래종말의 끊임없는 기원에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매주일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