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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3-26 08:01
종려구원사건과 침례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039  

종려구원사건과 침례(마 21:1-9)

1. 종려주일사건

인간이 추구하는 회춘의 방법과 영원히 살기에는 여러 형태들의 방법들이 연구되어지고 있고, 그 노력들 또한 눈물겹다. 하지만, 과연 그와 같은 방법들이 우리 인간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음을 근거로 성경이 제시하는 ‘영원히 살기’에 관한 두 가지 가르침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하려고 한다. 이들 가르침은 종려주일과 부활주일에 관련된 것들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춘 사월에 찾아오는 기독교의 명절인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주일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들 명절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광의 탈출과 홍해도하, 40년 사막생활, 요단강 도하와 가나안 정복에 그 모형과 예표를 갖고 있다. 여기서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 홍해도하, 40년 사막생활이 종려주일에, 요단강 도하와 가나안 정복이 부활주일에 관련되어 있다. 또 종려주일은 그리스도인의 영혼구원에 부활주일은 육체구원에 관련지어 설명될 수 있다.

먼저 종려주일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춘분이 막 지난 어느 봄날 금요일 늦은 오후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 마을에 도착하셨다. 금요일 해질 때부터 엄숙한 안식일이 시작되므로 이 날은 예배와 안식으로 여독을 푸셨다.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이 되자 예수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셨고, 나귀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일찍부터 나사렛 사람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있었고, 이때를 손꼽아 기다렸다. 민중은 종려나무가지를 꺾어들고 환호하기 시작하였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쳤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종려주일예배이다. 이 사건이 주후 30년 4월 2일 일요일에 일어났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란 말은 메시아를 호칭하는 용어들이다. ‘호산나’는 ‘나를 구원하소서!’란 뜻의 히브리어이다. 또 ‘다윗의 자손’이란 메시아 혹은 왕을 뜻한다. 그래서 요한복음 12장 13절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라고 풀어썼다.

선지자 이사야가 일찍이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해 놓았다. 유대지방 사람들은 갈릴리지방에서 권세 있는 말씀과 능력 행함으로 민중에게 큰 희망을 준 예수님이 ‘오실 자 다윗의 자손’이란 사실을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제국의 탄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줄 메시아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우리가 아는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 아니라, 알렉산더와 같은 전쟁영웅이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정말 기막힌 장면이었다. 초라하게 나귀를 타신 예수님과 이를 환호하는 민중, 이 장면은 전쟁을 이기고 돌아오는 백마 탄 개선장군의 행렬과 이를 환호하는 민중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피를 부른 전쟁에서의 승리, 폭력으로 얻은 평화, 역대 전쟁영웅들의 개선행렬에서는 볼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승리와 참 평화가 나귀타신 예수님과 이를 환호하는 민중의 모습에서 드러나 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나귀타신 모습에서 진정한 의미의 승리와 참 평화를, 환호하는 민중의 모습에서 진정한 의미의 구원과 해방을 얻은 자들의 기쁨의 함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2. 과거 지상의 종려구원사건들과 침례

종려주일사건의 완벽한 이해는 뒤따르는 고난주간을 인식하는데서 이뤄진다. 종려주일의 환호성은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즉 고난주간의 입문을 의미한다. 그리고 십자가죽음에 이르는 고난은 부활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종려주일 사건은 두 가지 지상의 사건들과 연관을 맺고 있다.

첫 번째가 출애굽 구원사건이다. 출애굽 구원사건은 종려주일사건의 예표적 사건이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또 다른 두 가지 성도들의 사건들과 연관을 맺고 있다. 모두가 죄악 세상을 탈출하는 영적인 환희를 표출하는 사건들이다. 한 가지는 성도들의 회심, 즉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물과 성령으로 침례 받고 거듭 태어나는 물가에서의 기쁨이고 (출산도 동일함), 다른 한 가지는 이 세상을 하직한 직후, 즉 죽음의 요단강을 건넌 후 낙원의 해변에서 맛보는 구원의 기쁨이다. 이들 세 가지 모두가 물을 건너는 사건들이다. 출애굽도, 침례도, 죽음도 모두가 물을 건너는 사건들이다. 물을 건넌 후의 기쁨의 함성과 환희는 건너온 물 저편이 구원과 해방과 평화와 안식의 땅과는 정반대되는 지옥 같은 곳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물은 무덤, 즉 이전의 삶이 죽고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는 요나사건 혹은 부활사건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종려사건이자 예표적인 종려사건인 출애굽사건은 홍해해변에서 일어났다. 이집트의 탄압과 노예생활로부터 탈출하여 추격대를 뿌리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갈라진 홍해를 무사히 건넌 직후 홍해해변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부른 노래가 출애굽기 15장이다. 19-21절을 보면, 하나님이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은 바다에 던지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가게 하셨으며, 이에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과 모든 여인이 그와 더불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환호하면서,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라고 찬양하였다. 그리고 27절 마지막 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도착하여 야영장을 마련한 곳이 물 샘이 열두 개나 있고, 종려나무가 일흔 그루나 있는 곳이었다. 종려나무의 상징은 구원과 평화이다. 그러나 종려주일의 환희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사막생활의 입문, 즉 순례자의 길을 걷게 하기위한 약속으로의 구원 또는 영적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

두 번째 종려사건은 침례를 통해서 일어난다. 침례는 출애굽 때 홍해를 건넌 후 40년 사막생활에 들어간 사건의 원형적 사건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4절에서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다. 바울은 홍해도하를 침례 받음으로, 사막생활을 교회생활로,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성만찬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성도들이 거듭남의 환희, 값없이 의롭다하심과 은혜로 성령으로의 세례를 받아 교회생활로 입문, 즉 순례자의 길을 걷게 하기위한 약속과 인침과 보증과 선취로써의 구원 또는 영적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

3. 미래 천상의 종려구원사건들과 침례

과거 지상의 종려구원사건은 미래 천상의 종려구원사건에로 이어진다. 계시록 15장 2-4절을 보면,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라고 천국에 오른 성도들이 찬양하고 있다. 여기서 불이 섞인 유리 바다는 홍해를 연상시키는 지옥을 말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를 건넌 후에 홍해해변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였듯이, 환난을 이기고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 지옥의 바다를 건너 하나님의 보좌 앞 구원의 해변에 서서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구원의 노래를 큰 소리로 외쳐 부르는 낙원에서의 환호성이다.

또 계시록 7장 9-10절을 보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천국에 오른 성도들이 찬양하고 있다. 성경은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큰 박해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자들이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인데,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자들이라고 말한다.

또 한 가지 미래 천상의 종려구원사건은 예수님 재림의 때에 백마 타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심판의 주 그리스도를 백마 타고 뒤따르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큰 소리로 연호하며, 구원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음을 찬양할 할렐루야성가대원들의 환호성이기도 하다. 이 재림사건은 구원의 최종적인 완성을 뜻한다. 그날의 영광을 의심 없이 바라보는 자들이 기독교인들이다.

종려주일의 환호성이 일주일 후에 있었던 부활주일의 기쁨과 환희를 위한 전주곡이었고, 종려주일과 부활주일 사이에 고난주간이 놓인 것은 홍해해변의 환호성이 40년 사막생활 후에 있을 가나안 안식을 위한 전주곡이었고, 영적인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교회생활 후에 있을 낙원 안식을 위한 전주곡이었던 것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부활의 축복을 바라보고 고난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가나안안식을 바라보고 40년 사막생활을 극복한 이스라엘 민족처럼, 낙원안식을 바라보고 현세의 고난들을 믿음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극복해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성도들은 이제이후로 최후까지 믿음을 지키다가 주께서 재림하실 그때에 그분을 마중 나갈 수 있어야 하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구세주를 환호하며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대승의 환호성이 매일 매시간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고 맛보아져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