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장 38절의 εισ αφεσιν에 관한 고찰
조동호 목사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의 목적은 사도행전 2장 38절의 εισ αφεσιν(eis aphesin)에 제기된 해석의 문제를 고찰하는 것이며, 주후 392년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되기 이전 시기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의 증언들을 통해서 βαπτισμα(baptisma)의 목적을 좀 더 명확히 짚어보는데 있다. 이를 위해서 먼저 신약성경에 나타난 baptisma와 baptizo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데, 한글 단어를 쓰지 않고 원음 baptisma로 표기하였다. 그 이유는 침례와 세례 가운데 한 가지만을 쓰거나 또는 두 가지를 함께 표기하는데 따른 불편을 피하기 위함이다. 또 사복음서에 쓰인 baptisma 또는 baptizo는 복음서 기록연대와 상관없이 본 글에서는 인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설사 사복음서 속에 주후 30년 교회가 창립된 때부터 주후 60-80년 복음서들이 기록된 때까지의 구전시기와 기록당시의 사정이 충분히 반영되고 있다할지라도, 복음서들의 주목적이 교회시대 이전인 주후 26-30년까지의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루는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다뤄진 baptisma와 baptizo에 관한 성구는 모두가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담은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에서 언급된 것들이다. 연대를 아무리 늦춰 잡아도 모두가 사도들의 시대인 1세기에 기록이 끝난 것들이다. 그리고 2-4세기 그리스도인들은 1세기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가장 근거리에서 이어 받았던 자들이다. 그들의 증언들을 통해서 baptisma의 목적을 점검하는 일은 신약성경에 언급된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인 baptisma의 방법과 목적을 더욱 명확하게 확인하는 것일 뿐 아니라, 21세기 교회현장에서 확연히 드러난 누수현상을 줄일 목회지도력 회복에 baptisma의 원래 모습의 회복(to restore the ancient order of things)이 갖는 가치를 재고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1세기 신약성경 저자들의 증언
명사 baptisma가 쓰인 곳은 로마서 6장 4절, 골로새서 2장 12절, 베드로전서 3장 21절 세 절이다. 바울은 baptisma를 통해서(through 혹은 by) 혹은 baptisma에서(in)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하였고, 베드로는 구원과 연관하여 사용하였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baptisma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골로새서 2:12) 너희가 baptisma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baptisma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동사 baptizo가 쓰인 곳은 사도행전 2장 38절, 2장 41절, 8장 12,13,16,36,38절, 9장 18절, 10장 47-48절, 11장 16절, 16장 15,33절, 18장 8절, 19장 3,4,5절, 22장 16절, 로마서 6장 3절, 고린도전서 1장 14-17절, 10장 2절, 12장 13절, 15장 29절, 갈라디아서 3장 27절이다. 동사 baptizo가 쓰인 곳은 누가의 사도행전과 바울의 고린도전서가 대부분이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각각 한 번씩 쓰이고 있다. baptisma를 받은 자가 주어일 경우는 단순과거 수동태 직설법 동사(baptized)가 쓰였다. 이는 baptisma를 받는 자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행하는 능동적인 의식(ordinance)이 아니라, 반드시 제3자가 베풀어야 하는 수동적인 의식임을 보여준다.
처음 교회가 창립되고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한 사도행전은 baptisma가 어떻게 시행되었는지를 현장감 있게 보도하고 있다. 먼저 사도행전 2장 38절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baptisma를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두 가지 점이 강조된다. 첫째는 baptisma를 받기 위해서 먼저 회개해야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회개하고 baptisma를 받으면, 죄 사함과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baptisma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에 해당되는 원문은 βαπτισθήτω... εἰς ἄφεσιν τών ἁμαρτιών ὺμών이다. 이 원문은 대부분의 성경에서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for the remission of sins) baptisma를 받으라’로 번역된다. εἰς(eis)가 대격 αφεσιν(aphesin)과 함께 쓰일 때에는 이와 같이 ‘~을 위해서’라는 목적의 뜻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1974년 2월자 <환원 선구자>(Restoration Herald)에 의하면, 무려 41개의 영어 성경이 eis를 ‘for'로 번역하고 있으며, 14개의 성경이 'unto'로, 27개의 다른 성경은 'in order that' 혹은 'to have your sins forgiven'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고 적고 있다.<각주1: Restoration Herald(Cincinnati: Restoration Movement Association, 1974년 2월자).> 대표적인 영어 성경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곧바로 확인이 된다.
<개역킹제임스(KJV)>
Then Peter said un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
<개역개정킹제임스(NKJV)>
Then Peter said to them, "Repent, and let every one of you be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you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국제새번역(NIV)>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표준새번역(NRSV)>
Peter said 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so that your sins may be forgiven;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대표적인 우리말 성경도 이단으로 의심을 받고 있는 말씀보존학회에서 수년 전 임의(任意)로 개역한 <한글킹제임스>를 빼고는 모두가 대격과 함께 쓰인 전치사 eis를 목적의 뜻으로 해석해 놓고 있다. <한글킹제임스>는 가장 신뢰할 수 있고 가장 완벽한 최고의 성경이라고 그들 자신이 주장하는 영어성경 <개역 킹제임스(KJV)>와 <개역개정 킹제임스(NKJV)>의 해석을 부정함으로써 <킹제임스> 성경의 권위를 그들 자신이 스스로 손상시키고 있어서 아이러니이다.
<개역한글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개역개정판>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표준새번역>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공동번역>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현대인의성경>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모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님의 선물을 받을 것입니다.
<현대어성경>
그때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모두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받아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한글킹제임스>
베드로가 그들에게 답변하기를 "회개하라. 그리고 죄들을 사함 받은 것으로 인하여 너희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baptisma를 받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
위의 <한글킹제임스>의 본문에서 보듯이, 19세기 전반기 동안 미국 동부지역에서 두각을 보였던 성경학자 알렉산더 캠벨의 글을 보면, 이미 당대에도 마가복음 1장 4절과 사도행전 2장 38절과 같은 구절들에 나타난 eis aphesin을 영어로 해석하는 데에 논란이 있고, 해석상의 문제가 따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eis aphesin은 문법적으로 “죄 사함 때문에” 또는 “죄 사함의 결과로”의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eis aphesin을 일찍이 그렇게 번역해 놓은 성경이 없었고, 문맥상으로도 불가능해 보였다. eis aphesin은 “죄 사함을 위해서”로 해석하는 것이 전통적이고 맥락적이며 역사적이었다. 알렉산더 캠벨도 “그것은 너의 죄가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가 아니라,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또는 얻을 목적으로”로 해석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각주2: Alexander Campbell, The Christian Baptism with Its Antecedents and Consequents(Nashville: Gospel Advocate, 1951), p. 199. >
사도행전 2장 38절의 성구는 baptisma를 받는 시간과 목적에 관련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 성구 속에 “εἰς ἄφεσιν τών ἁμαρτιών ὺμών”이란 문장이 있다. 이 부분을 ‘너희의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로 해석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의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에’로 해석하느냐가 19세기 이후 일부 침례교 학자들에 의해서 전치사 εἰς(eis)에 제기된 문법적 문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역성경들과 언어학자들이 본문의 eis를 ‘~을 위해서’로 번역하여왔다. eis가 대격과 함께 쓰일 때는 목적의 뜻으로 해석해야 문법적으로 옳다는 주장이 지배적이었고 전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한글킹제임스> 번역에서와 같이 헬라어 전치사 eis가 대격(accusative)과 함께 쓰일 경우 결과(result)나 원인(cause)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각주3: James A. Brooks and Carlton L. Winbery, Syntax of New Testament Greek(Washington, D.C.: University Press of America, 1979), pp. 54-58.> 제임스 브룩스(James A. Brooks)와 칼톤 윈베리(Carlton L. Winbery)는 <신약성경헬라어 구문론>(Syntax of New Testament Greek)에서, 마태복음 3장 11절의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baptisma를 주거니와”를 “나는 너희의 회개 때문에 너희를 baptisma 준다”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너희가 회개하여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 . . . 세례를 받으라”를 “회개하라. 그리고 너희가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 . . baptisma를 받으라”로 대격과 함께 쓰이는 eis를 유독 여기에서만 원인(cause)적으로 해석할 것을 가르쳤다.<각주4: Ibid., p. 56.> 한편 요한복음 1장 7절과 마태복음 26장 2절의 말씀은 목적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어서<각주5: Ibid., p. 54.> 소속 교단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한 억지가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미국 시카고 소재의 북침례교신학대학원의 만테이(J. R. Mantey) 교수는 “어느 헬라어 사전도 eis를 원인의 뜻으로 번역치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eis를 원인의 뜻으로 가르치는 유일한 문법책은 <헬라어 신약성경 문법 입문서>(A Manual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뿐이라고 자랑하였다.<각주6: 저자는 1950년대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eis의 원인적인 사용을 입증하기 위해서 주전 2세기경의 폴리비우스(Polybius)의 글을 예로 들었다. 여기서 만테이 교수는 신약성경에 eis를 ‘~때문에’로 해석할 수 있는 곳이 아홉 곳이나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각주7: J. R. Mantey, "The Causal Use of EIS in the New Testament,"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LXX(March 1951), pp. 45-48.>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baptisma를 행위로 보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sola fide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임을 다음의 두 저자들의 색다른 주장에서 살 펴 볼 수 있다. 카 베이스너(Car Beisner)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해석에서 “죄 사함을 얻는 것은 baptisma가 아니라 회개라”는 사실을 헬라어 문법적인 차원에서 볼 때 분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너희가 회개하여”에서 “너희는” 복수인데, “각각(너희 중 각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에서 “각각”은 단수이며, “(너희의) 죄 사함을 받으라”에서 “(너희는)” 복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는 것은” 복수로써 역시 복수인 회개함의 결과이지, 단수인 “baptisma”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복수 명사는 2인칭인 반면, 단수 명사는 3인칭이라면서 죄 사함은 회개의 결과라는 억지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 38절은 baptisma가 구원에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라고 결론짓는다.<각주8: Car Beisner, Is Baptism Necessary for Salvation?(Santa Ana: Caris, 1980), pp. 14-15.> 코넬리우스 스탬(Cornelius Stam)은, 사도 바울에 의하면, 물 baptisma가 결코 죄 사함을 위해 요구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사역 당시 몇몇 사람밖에는 baptisma를 베풀지 아니한 사실을 기쁘게 여겼다는 것이며(고전 1:17-18), 그의 서신서 어느 곳에서도 물 baptisma를 베풀 것을 명령하거나 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 4장 5절에서 “baptisma도 하나이요” 라고 한 “한 baptisma”는 곧 영적 baptisma라고 주장하였다.<각주9: Cornelius Stam, Things That Differ(Chicago: Berean Bible Society, 1951), pp. 23-31.> 그러나 렌스키(R. C. H. Lenski)의 사도행전 22장 16절의 해석은 스탬의 물 baptisma 부정과 baptisma의 상징화에 대해서 적절한 해답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22장 16절의 말씀은 “이제는 왜 주저 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baptisma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이다. 이 말씀에는 두 개의 단순과거 명령이 원인적 중간상태 즉 “baptisma를 받고, 너희 죄를 씻으라”로 되어 있다. 렌스키는 이 말씀이 “baptisma의 구원하는 능력에 관한 육체적 구절들 중의 하나이다.”고 말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baptisma를 “내적 은혜에 대한 외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고, 단순히 상징적인 예식으로 취급하려 한다. 이에 대해서 렌스키는 사도행전 2장 38절이나 누가복음 3장 3절의 말씀과 함께 사도행전 22장 16절의 말씀도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인 말씀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baptisma 받고, 실제적으로 죄 씻음 받은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각주10: R. C. 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Acts of the Apostles, pp. 909-910.>
eis의 언어학적 의미는 사도행전 2장 38절의 문맥을 통해서 볼 때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순절 날 유대인들은 사도들이 방언 말함을 듣고 기이히 여겨 솔로몬 행각에 모여 베드로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였다는 사실과 유대인이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고 설교하였다. 이 때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물었다. 이때에 베드로가 “회개하라. 그리고 baptisma를 받으라. 그리하면 죄 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대답하였다. 한마디로 베드로의 설교의 대상은 죄 사함을 아직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하물며, 어떻게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말이 그들에게 적용이 되겠는가? eis의 언어학적 의미는 마태복음 26장 28절의 문맥을 통해서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것은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해석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시기적으로 아직 구속의 교리가 적용되기 이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도저히 결과의 뜻으로 볼 수 없는 말씀이다.
앞에서 소개한 몇 사람의 침례교 학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사도행전 2장 38절의 eis를 목적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보우도인 대학(Bowdoin College)의 헨리 드윙(Henry B. Dewing) 교수와 그리스 아테네 대학(Athens College)의 학장은, “eis는 결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 각각 baptisma를 받으라’로 해석해야 한다. ‘~때문에’ 라는 해석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고 주장하였다.<각주11: Donald A. Nash, "For the Remission of Sin," The Christian Standard(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March 30, 1975), p. 6.> 클라크 대학(Clark College)의 헬라어 교수 헨리 브라케트(Henry Darling Brackett)는 eis의 본래의 뜻이 ‘~안으로’, ‘~을 향하여’, ‘~의 방향으로’이며, ‘~으로부터’, ‘~에서 일어나는’ 혹은 ‘~때문에’가 아니기 때문에 “eis를 ‘~을 위해서’, ‘~을 목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였다.<각주12: Ibid.> 오벨린 신학대학원(Oberlin Graduate School of Theology)의 강사인 프랭크 휴 포스터(Frank Hugh Foster)는 "eis의 의미는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회개와 baptisma에 순복하는 이중적 행위의 목적을 지적하든지, 아니면 그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전자는 ‘~을 얻기 위해서’로 해석될 것이요, 후자는 ‘~의 결과로’ 해석될 것이다.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전자가 후자보다 더 타당하다. 전치사 eis는 결코 ‘~때문에’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각주13: Ibid.> 에드가 구드스피드(Edgar I. Goodspeed)는 신학적인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번역한 <구드스피드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 2장 38절의 eis는 결코 ‘~때문에’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각주14: Ibid.> 오페크(A. Opeke)는 eis를 “어떤 지정된 목적에로 향하는 행동의 방향을 나타낸다”라고 하였다.<각주15: Gerhard Kittel and Gerhard Friedrich, ed., The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anslated by Geoffrey W. Bromiley(Grand Rapids: WM. B. Eerdmans, 1981), s.v. "εἰς."> 아른트(Arndt)와 진그리치(Gingrich)의 헬라어 사전도 eis의 기본 의미를 “사물로 향한 움직임을 지적하는 것”<각주16: Arndt and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s, s.v. "εἰς.">이라고 하였다. eis는 대격을 지배하는 데, 대격은 앞쪽을 향한 움직임 자체를 나타내는 확장의 격이다. 시카고 대학교의 랄프 마르쿠스(Ralph Marcus) 교수는 "On Causal εἰς"라는 글로써 북침례교신학대학원의 만테이(J. R. Mantey) 교수의 글, “The Causal Use of εἰς in the New Testament"를 반박하였다.<각주17: Ralph Marcus, "On Causal EI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LXX(June, 1951), pp. 129-130.> 마르쿠스는 eis의 훌륭한 문법이 만테이 교수의 신학적인 선입견을 지지 않는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만테이 교수는 eis와 관련된 사도행전 2장 38절과 다른 신약의 성구들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비성경 헬라어 문헌에서 원인적 의미로 사용된 eis의 사례들을 본보기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들 사례들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테이 교수가 비언어학적인 논리들에 있어서 옳지 못한 만큼, baptisma와 회개와 죄 사함에 관한 다른 성구들의 해석에 있어서도 옳지 못하다.<각주18: Ralph Marcus, "The Elusive Causal EIS,"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LXX(March, 1952), pp. 43-44.>
마르쿠스 교수는 eis의 최종적 원인과 목적은 거의 같은 것이며, 신약성경의 성구들 가운데는 최종 원인과 목적을 구별키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나, 영어와 마찬가지로 헬라어도 대화상에서 목적과 결과를 혼돈하기 때문에 ἵνα(hina)나 ὡς(hos)대신에 코이네 헬라어는 ὥστε(hoste)를 쓴다고 하였다. 영어에서도 사람들은 종종 "in order that he might study" 대신에 “I left him so that he might study"와 같은 표현을 쓰는 것과 같다고 한다.<각주19: "On Causal EIS," p. 130.>
만테이 교수가 주장하는 아홉 곳의 성구와는 달리 신약성경에서 1,773개나 eis가 사용되고 있으나, 단지 네 곳만이 “~때문에”로 해석될 수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각주20: Donald A. Nash, , pp. 6-7.> 만테이 교수와 같은 교단에 속한 학자들 가운데 셰퍼드(J. W. Shepherd, Handbook on Baptism, pp. 339-359)와 비즐리 머레이(G. R. Beasley-Murray, Baptism in the New Testament) 그리고 화이트(R. E. O. White, The Biblical Doctrine of Initiation)와 같은 이들은 오히려 eis의 목적의 뜻을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다.<각주21: Jack Cottrell and Andrew Paris, "Is Salvation a Process?" The Christian Standard(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November 2, 1975), pp. 7-8.>
전치사 eis가 우리말로는 ‘~을 위해서’로 밖에 표현할 다른 말이 많지 않지만, 영어로는 다양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974년 2월자 <환원 선구자>(Restoration Herald)에 의하면, 무려 41개의 영어 성경이 eis를 ‘for'로 번역하고 있으며, 14개의 성서가 'unto'로 27개의 다른 성서가 'in order that,' 'to have your sins forgiven'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한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 2장 38절의 eis는 침례교단의 몇몇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자들, 사전편찬자들, 성서 번역가들조차도 ‘~을 위해서’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baptisma가 죄 사함을 받는 (결혼식과 출산 때와 같이)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시간이요, 성령을 선물로 받는 축복의 시간임을 말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8장 36절은 물이 있는 곳에서 baptisma를 행하고 있다. 따라서 물로 행하는 의식(ordinance)인 것을 알 수 있다. 38절은 빌립과 하나님 경외자였던 간다게가 함께 물로 내려간 것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10장 47-48절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위로부터 내리는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던 하나님 경외자 고넬료와 그의 식구들이 baptisma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성령 충만과는 별도로 baptisma를 반드시 받아야하는 의식인 것을 말해준다. 사도행전 18장 8절은 고린도인들의 상당수가 먼저 믿고 baptisma를 받았음을 본다. 그리고 사도행전 22장 16절은 baptisma를 받아야하는 이유로 죄 사함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baptisma를 물이 있는 곳에서 행하였음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지만) 죄 사함과 성령님을 선물로 받기 위한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시간이었음을 언급하였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회심체험사건들을 살펴보면, 단 한 가지도 빼놓을 수 없는 구원의 한 세트(set) 또는 한 과정(process)으로써, 마치 수정과 배아와 태아단계의 임신기를 거친 후에 한 생명이 출생하듯이 또 남녀가 만나서 사랑의 씨앗을 틔우고 그 싹을 키운 후에 혼인식에서 서약(고백)을 통해서 부부가 되듯이, 복음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신앙고백하고 baptisma를 받아야 새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고,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은 표를 통해서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