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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운동에 관한 오해
Misunderstandings on the Restoration Movement
글: 조동호 목사
참빛사로부터 ‘환원운동의 오해’에 관한 글을 부탁받았을 때, 망설여진 면도 없지 않았으나 이참에 환원운동에 관한 정확한 의미를 정리해 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듯싶어서 선뜻 응하게 되었다. 사실 환원운동에 관한 오해는 이 운동에 속하지 않은 외부인들에게 많기보다는 오히려 이 운동에 관계된 사람들에게서 훨씬 많다. 그 주된 원인은 이 운동이 이 땅에서 자생된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수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 운동에 대해서 정확하고 깊게 연구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또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까 이 운동의 겉껍데기만 알고 속맛을 모른 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몇 가지 논제들에 대해서 지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간략하게라도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환원운동’의 개념에 대한 오해
‘환원운동’이 무슨 운동인가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아마 십중팔구 ‘성서로 돌아가자’ 또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몇 가지 점에서 이 운동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환원’의 좁은 의미, 곧 본래의 의미는 ‘신약성서에로 돌아가자’는 뜻이다. 신약성서에로 돌아가 기독교를 그것 본래의 순수함과 능력에로 되돌려놓자는 것이다. ‘신약성서로 돌아가자’와 ‘성서로 돌아가자’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은 16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종교개혁이지 환원운동이 아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결과가 무엇인가? 신조(신앙고백)주의 또는 교리(신학체계)주의이다. 17-18세기에 이르게 되면, 교리들, 신앙고백들, 신학체계들이 유행하게 되고, 상징숭배(symbolatry), 교리속박, 루터교 교부신학, 프로테스탄트 스콜라주의, 교리적 전통주의 등 교회의 고백적 논쟁과 교리적 해석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이 시대의 해석은 단지 신학을 위한 시녀에 불과하였고, 결국 개신교에 끝 모를 분열과 교단화의 폐해를 가져왔다. 그 폐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율법’과 ‘복음’을 명확하게 구분한 ‘신약성서교회운동’으로 가져간 사람들이 스톤-캠벨 운동가들이다.
또 다른 ‘성서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폐해는 신약성서와 구약성서의 엄격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기독교를 그것 본래의 순수함과 능력에로 되돌려놓지를 못하였을 뿐 아니라, 구약성서를 신약성서의 틀 안에서 해석하지 아니하고, 구약성서를 신약성서와 동등한 위치에서 해석하게 함으로써 기독교를 유대교적 기독교로 변질시켰으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대인기독교인들(Messianic Jews), 시대구분론자들(Dispensationalists), 여호와증인들, 제칠안식일재림론자들이며, 그밖에도 모세오경에 편중된 설교가들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환원운동’은 ‘신약’(New Testament)이란 핵심단어가 빠진 그냥 ‘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아닐 뿐 아니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도 아니다. ‘초대교회’가 아니라, ‘사도들의 교회로 돌아가자’ 또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에로 돌아가자’ 또는 ‘신약성서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여기서 ‘사도전통’이란 신약성서 27권을 지칭하는 제한적 의미이다. ‘초대교회’란 당대의 이단교회들, 곧 영지주의적 교회, 율법주의적 교회, 유대주의적 교회 등이 다 망라된 느낌을 줄뿐 아니라, 원시교회, 곧 미래지향적인 교회가 아니라, 왠지 과거지향적인 교회란 느낌을 주는 그런 용어이다.
둘째, 넓은 의미의 환원운동을 좁은 의미의 환원운동으로만 아는 것도 이 운동을 오해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환원운동은 두개의 축을 가진 운동이다. 그 두 개의 축이 ‘환원’(restoration)과 ‘일치’(unity)이다. 이 두 가지 ‘환원’과 ‘일치’는 스톤-캠벨운동의 이상(ideal)이자 원칙(principle)이며, 목표(end)이다.
좁은 의미의 환원운동에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신약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이 운동을 ‘개혁운동’ 혹은 좀더 구체적으로 ‘신약성서교회운동’(New Testament Church Movement) 혹은 ‘성서권위(Biblical Authority)회복운동’이라 부른다. 고전적인 표현으로는 ‘사도전통회복(Restoration of the Ancient Order of Things)운동’이라 부른다. 직역하면 ‘옛 질서의 회복’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표현을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로 이해해 왔거나 ‘성서로 돌아가자’로 잘못알고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표현들은 환원운동에 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원운동은 신약성서 교회 운동이지, 초대교회 운동이 아니며, 신약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지, 엄격한 의미에서 성서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狹意)의 환원운동은 넓은 의미(廣意)의 환원운동, 곧 손등과 손바닥처럼 두 개의 면 가운데 한 면에 불과하다. 넓은 의미의 환원운동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는 ‘진리 안에서의 연합’(Union in Truth)이다. 여기서 ‘진리’는 ‘환원’(restoration), 곧 신약성서권위회복과 사도전통의 회복에서 발견되어지는 진리이다. 따라서 신약성서위에 세워진 교회가 진리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그리고 ‘연합’은 ‘일치’(unity)보다 울타리의 폭이 훨씬 넓은 개념이다. ‘일치’(unity)는 보수적인 개념이고, ‘연합’(union)은 에큐메니즘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진보적인 개념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서는 ‘환원’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일치’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환원을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좁은 의미의 ‘일치’를 더 선호하고, ‘환원’보다는 ‘일치’를 더 강조하는 사람들일수록 넓은 의미의 ‘연합’(union)을 선호한다. 어떻든 간에 환원운동의 한 축인 ‘일치’와 ‘연합’이 추구하는 이상과 목표는 ‘그리스도인 일치’(Christian unity) 혹은 ‘교회연합’이다. 앞에서 언급한 ‘진리 안에서의 연합’(Union in Truth)은 ‘진리 안에서의 일치’를 추구하는 보수적인 사람들과 ‘진리보다는 연합’을 추구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을 중재하는 개념이다. ‘일치’든지 ‘연합’이든지, 이 중재적이고 화해적인 개념의 이상과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한 운동이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Only Movement)이다.
따라서 환원운동(Restoration Movement)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표어 두 가지는 ‘신약성서교회운동’(New Testament Church Movement)과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Only Movement)이다. ‘신약성서교회운동’은 ‘진리’(사도전통에로의 환원)를, ‘그리스도인 운동’은 ‘일치’ 혹은 ‘연합’을 추구하는 스톤-캠벨운동의 이상(ideal)이자 원칙(principle)이며, 목표(end)이다.
셋째, ‘환원’이란 말이 앞에서 언급된 뉘앙스들 때문에 오늘날에는 ‘환원운동’이란 표현을 억제하고, ‘스톤-캠벨운동’(Stone-Campbell Movement)이란 중립적인 호칭을 쓰는 추세이다. 이런 추세는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무악기파) 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스톤-캠벨운동’은 두 가지 원칙들, 곧 ‘사도 기독교권위’와 ‘그리스도인 일치의무’ 사이에서 빚어진 갈등을 아우르는 호칭이다. 따라서 ‘환원운동’이란 어휘가 이 운동의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 운동을 오해하는 것이다.
넷째,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를 이 운동의 유일한 호칭으로 아는 것도 오해이다. 본래 환원운동은 이 운동권에 속한 성도들을 ‘제자들’(Disciples) 혹은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 불렀다. 영어권에서는 공동체를 호칭할 때, 구성원들의 성격을 나타내는 경우들이 단연 우세한데, 이 맥락에서 나온 이름이 ‘그리스도인의 교회’(Christian Church)이다. 이 이름은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Only Movement)의 줄기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소유주 개념의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울서신 로마서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란 이름은 교회의 머리와 몸이 되시고, 그것을 피값으로 사신 그리스도의 소유자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이 이름은 ‘신약성서교회운동’(New Testament Church Movement)의 줄기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스톤-캠벨 운동은 세 개의 파로 나눠져 있는데, 이들은 각각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Christian Church/Disciples of Christ),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Christian Churches/Churches of Christ)로 불린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할 점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의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를 단수(총회 개념)로 표기한다는 점이고,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리스도인의 교회들’에서는 ‘교회’를 복수(개 교회 혹은 회중교회 개념)로 표기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보수진영인 무악기 교회들을 말하고,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진보진영인 제자(파)들의 교회를 말하며,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독립(중도) 교회들을 말한다. 보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신약성서교회 회복을 통한 교회일치를 기치로 삼고 있고, 진보 ‘그리스도인의 교회/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신약성서교회의 회복보다는 교회연합 또는 에큐메니즘을 기치로 삼고 있다. 독립(중도) ‘그리스도인의 교회들/그리스도의 교회들’은 신약성서교회의 회복과 교회일치의 균형유지를 기치로 삼고 있어서 ‘진리 안에서 연합’(union in truth)을 주장한다.
‘환원운동’의 이슈들에 대한 오해
‘환원운동’의 개념들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마치고, ‘환원운동’의 이슈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기를 원한다.
먼저 예배 시에 악기 쓰는 문제에 관해서 살펴보기를 원하며, 이 문제에 대한 진정한 이슈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한다.
예배 시에 악기사용을 금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만의 이상한 관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는 전통은 서방교회 즉 가톨릭교회 전통이다.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의 줄기에서 나왔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예배 시에 악기사용을 금하는 전통은 동방교회, 일부 개신교(북미주 개혁주의 장로교회 등), 유대교 정통파의 전통이다. 동방교회의 경우 희랍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 모두에서 예배 시에 악기사용을 금한다. 미국과 캐나다에 산재한 북미주 개혁주의 장로교 교단과 스코틀랜드의 일부 개혁교회들, 특히 칼뱅과 낙스 전통의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서에 의하면, 예배용 찬송으로 시편에 고유한 운율을 사용하여 불렀고, 악기의 사용은 금하고 있다. 장로교회들의 경우, 19세기 이후 교회음악의 발전과 함께 예배 시 악기사용이 허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대교는 성전파괴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성전파괴이전에는 시편에 나타난 대로 예배 시에 악기사용이 허용되었으나 성전파괴이후 회당예배의 발전과 더불어 악기사용이 금지되었다.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시작된 개혁주의 유대교에서만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고, 정통파와 보수파에서는 아직도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악기사용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악기의 음을 맞춘다든지 하는 것은 안식일 법에서 금하는 창조행위에 해당된다고 본다.
예배 시에 악기를 쓰지 않는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은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 남부지역들, 특히 텍사스주와 테네시주 등지에 산재한 1만개 이상의 크고 작은 교회들이다.
이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이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역사가들은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한 가지는 사회문화적 설명이다. 미국의 무악기 교회들은 대다수 그들 남부 시골교회들이 직면했던 19세기 사회상황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노예문제에 연루된 남북전쟁과 지역파벌주의(sectionalism)가 그들의 특질(ethos)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좀더 풍성하고 도시 공업화된 북부와 더 가난하고 대부분 발전하지 못한 시골지역인 남부사이에서 ‘제자들’(Disciples, 제자파와 독립파가 갈라지기 이전 호칭)과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 사이에 분열을 재촉하는 잔존하는 ‘문화적 갭’(cultural gap)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예배 시에 악기음악을 사용하는 이슈는 전적으로 해석학적 갈등으로써가 아니라, 오르간이나 멜로디언과 같은 호사를 솔직히 누릴 수 없는 남부지역 회중들의 견해를 달리한 표현으로써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한 가지는 무악기의 진짜 이슈가 성서권위의 적용문제라는 것이다. 성서권위의 상세한 적용, 이를테면, 신약성서가 침묵하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궁극적으로 ‘무악기 주창자들’은 ‘편리의 원칙’(principle of expedience)을 거부하고, 침묵을 금지로 해석하였다. 여기서 ‘편리의 원칙’이란 개혁가들이 의존한 세 가지 표준 가운데 비본질 문제에 대한 ‘자유로운’ 결정을 말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교회들’(Churches of Christ)은 비본질에 속하는 신약성서가 침묵하는 부분을 금지로 보았다. “성서가 말하는 것은 말하고, 성서가 침묵하는 것을 침묵한다.”에서 침묵을 금지로 해석한 것이다.
둘째, 침례를 신앙고백의 하나로 보지 않고, 행위로 보는 것은 침례를 오해하는 것이다. 침례가 구원과 무관하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기를 거부하고, 교리적 시각에서 색안경을 쓰고 보려는 네거티브 전략이다.
250년 키프리아노스 시대에 로마에서 병상침례가 있기는 하였어도, 오늘날의 약식세례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것은 십자군 전쟁 당시 군인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성례를 행하려다보니까 생겨난 것이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때인 12세기경에 십자군을 모집함에 있어서 일일이 침례를 주기가 어려워 약식세례를 주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고,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행한 그리스도교 대사전(1972)에도 “초기 교회에 있어서 적어도 12세기경까지 세례는 '침례'가 보통이었다. 그 후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물을 뿌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이유로는 병자와 유아를 침수시키기 어렵다는 데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헬라어가 모국어였던 동방교회 특히 희랍정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신념이 유독 강하다. 그들은 초기교회의 전통 그대로 물속에 세 번 담그는 침례를 시행하고 있다. 초기교회 때의 침례방식에 있어서 세 번 물속에 담갔다는 기록은 사도전승이란 책에도 있다. 교리적인 이유 때문에 침례대신에 세례를 행하는 것을 제외하고, 침례가 성서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성서나 역사 모두에 무지하거나 ‘작지만 순(順)한’ 집단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일 것이다.
스톤-캠벨운동권에서는 유아세례와 약식세례를 배제하고 성서적인 ‘신자의 침례’(beliver's baptism)를 시행하였다.
침례의 행위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믿고 그 신앙을 사람들 앞에서 고백한 후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믿음이 없이는 결코 침례를 받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수정난이 먼저 만들어져야 출산이 가능해지는 것과 같다. 믿음을 수정란에, 침례를 출산에 비교할 수 있다. 또 믿음을 사랑에, 침례를 혼인에 비교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출산보다는 수정 그 자체나 혼인보다는 사랑 그 자체에 더 큰 비중을 두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 아무리 중요하고, 수정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혼인이나 출산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부부로써 또는 한 인간으로 출발할 수가 없다. 참고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침례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다. 베드로전서 2장에서 침례 때의 서약을 선민서약 즉 ‘신약’(new covenant)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으로 하나님과 부부서약을 행함으로써 구약의 선민이 되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침례서약을 통해서 신약의 선민이 되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수정란을 생명체로 인정하여 낙태를 금하듯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는 확신은 매우 귀하고 소중하다. 그렇다고 해도 수정란이 배아가 되고 태아가 되어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이 무시 될 수 없듯이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는 과정 또한 매우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믿음으로부터 침례까지는 구원에 이르는 한 과정이다. 수정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듯이 믿음부터 침례까지의 과정 또한 그러하다. 출산을 통해서 한 나라의 시민이 되어 완전한 인간에로의 성장을 시작하듯이 침례를 통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며, 하나님의 나라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신학에서는 ‘시작된 종말’ 또는 ‘종말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알렉산더 캠벨을 ‘물중생론자’로 보는 것은 그를 크게 오해하는 것이다. 알렉산더에게 있어서는 침수세례와 약식세례의 차이가 구원의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하냐, 불완전하냐의 문제였다. 캠벨은 침수세례를 받은 자와 약식세례를 받은 자와의 차이를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자와 생명(영생과 구원)에는 전혀 지장이 없지만 신체의 일부가 불구인 자로 비교하였다. 침례와 구원에 관한 캠벨의 이런 명확한 결론에서 나온 표어가 "우리만이 그리스도인들은 아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인들뿐이다(We are not the only Christians, but Christians only.)"였다. ‘환원운동’의 두 가지 면들 가운데 한 면으로 펼쳐지는 ‘그리스도인 운동’(Christian-Only Movement)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셋째, 매주일 행하는 주의 만찬을 가톨릭예배의 회귀로 보는 것은 오해이다. 매주 혹은 예배 때마다 주의 만찬을 행하는 전통교회들이 많지만, 스톤-캠벨운동권에서 행하는 주의 만찬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톤-캠벨운동권에서는 간략하고 단순하면서도 오로지 기념과 회상으로써만 주의 만찬을 행한다. 성체신학, 공존설, 임재설 등을 거부하고, 긴 전통적인 예전 또한 거부한다. 순교자 저스틴이 150년경에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에게 보낸 ‘변증서’(The First Apology)에서 보듯이, 집례자가 간단하게 주의 만찬에 대해서 묵상메시지를 전하고, 떡과 물이 희석된 포도주에 대한 감사기도를 올린 후에 그것들을 참석자들에게 분배하고, 또 참석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자들에게 배달한다.
넷째, 목회자의 호칭이 ‘목사’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목사’라는 호칭은 '사제'라는 말을 '목사'로 바꾼 종교개혁가 마르틴 부쳐(Martin Bucer/1491-1551)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미사'를 '주의 만찬'으로 '제단'을 '성만찬상'으로 바꾼 개혁가였다.
성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지역교회의 붙박이 목회자들은 ‘장로’들이었다. 이 ‘장로’가 나중에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 등에서 ‘사제’(제사장)로 불리게 되었다. 목회자를 ‘사제’로 부른 이유는 그들의 예배가 떡과 포도주를 제물로 바치는 제사예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가톨릭교회, 동방교회, 성공회 등에서는 장로들이 목회자들이고, 그들에 대한 호칭이 ‘사제’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교회에서는 평신도 장로들이 없다. 집사들도 평신도급이 아니라, ‘부사제’ 또는 ‘보사제’급으로 보면 틀림없다.
그리고 ‘장로’의 역할은 두 가지로 사도행전에 밝혀져 있는데, ‘목양’과 ‘치리’이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말이 ‘목자’이다. ‘목자’는 다시 ‘목사’라는 높임말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영어 'pastor'의 뉘앙스는 ‘목양자’이다.
그런데 ‘전도자’는 순회목회자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지역교회 붙박이 목회자인 ‘장로’와는 달리, 지역교회들을 순회하면서 전도하는 떠돌이 목회자들 가운데 한 부류를 지칭하는 말이 ‘전도자’였다. 요즘처럼 목회자들이 개 교회들에 초빙을 받아서 일정기간 섬기다가 또 다른 교회의 부름을 받아서 떠나고 하는 식의 상황이라면, ‘전도자’라는 호칭이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스톤-캠벨운동권에서는 가장 초창기부터 사제의 권위가 그대로 답습된 ‘pastor’(목사) 혹은 ‘reverend'(성직자)란 호칭을 쓰지 않기로 성명을 발표했고, 그 대신에 'minister'(섬기는 자)란 호칭을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안수에 관한 오해이다. 전통적으로 전통교회들에서 사제들(집사와 장로들)은 남성들이었다. 이 전통은 구약시대 제사장의 전통에서 그대로 답습되어진다. 예배의 제사개념(미사 곧 성만찬 예배를 제사로 보는 전통교회들의 견해)이 바뀐 16세기 종교개혁이후에도 이 전통에는 변화가 없었고, 시대가 바뀌고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증대된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성서해석상의 문제로 불거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바울서신에 명시된 부분들에 대한 해석상의 문제가 존재한다. 보수 정통주의 유대교에서는 아직도 회당에서의 여성들의 역할을 심하게 제한하고 있다. 이런 전통이 하나님의 뜻인지, 유대교나 고대 그레코로만시대의 문화적 특징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끝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보수적인 스톤-캠벨운동권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랫동안 여집사 조차도 인정치 않고 있다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부터 변화를 보이고 있다. 1988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미국 독립파 그리스도의 교회들 가운데 약 10%가 여집사를 두고 있으며, 그 수는 약 8천여 명에 이르고 있고, 약 1%에 해당하는 교회가 100여명의 여장로를 두고 있다. 그리고 약 38%의 교회가 960여명의 여교역자를 고용하고 있다. 이들 여교역자들은 대부분 교육, 음악, 초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으며, 아직 부목이나 원목으로 사역하는 여교역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여성의 교회에서의 위치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Glenn M. Zuber, "Results of a 1988 Survey: Women as Deacons, Elders, and Ministers," The Christian Standard(Cincinnati: The Standard Publishing Co., August 6, 1989), pp. 8-9.]
이상으로 간략하게나마 환원운동의 오해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독자들 가운데는 필자의 의견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견이나 답이 다르다고 해서 당장에 무슨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심사숙고하면서 정답을 찾아가면 된다.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만한 시간이 농익었기 때문이다. 주일학생이 자라면 학생부를 거쳐 성인이 되고 그가 교회의 중진이 되어 봉사하게 되듯이 지금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며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신실하게 주님께 충성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실한 교회들과 당신의 종들에게 반드시 복을 주고 복 주실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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