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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9 10:02
산 소망 산 돌17: 그리스도인들의 삶(5)(벧전 5:1-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  

산 소망 산 돌17: 그리스도인들의 삶(5)(벧전 5:1-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1절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에서 교회들의 장로들은 누구인가?

베드로는 예루살렘교회의 세 명의 장로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다른 두 사람은 사도 요한과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수제자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사도 야고보는 주후 44년경에 헤롯 아그립바1세에게 참수를 당하였으므로 이름이 같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을 것이고, 예루살렘교회의 기둥 장로로 섬겼다(행 15:13, 행 21:18).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난 친 동생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교회들의 승인권을 가진 순회 사도들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비우는 기간이 매우 많아 수장 역할을 맡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1세기 교회들의 장로들을 세 명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당시 유대교 회당의 전통에 따라 장로들을 장립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유대교 회당에는 세 명의 장로들이 있었고(막 5:22, 행 13:15 참고), 그들은 회당장과 지방공회원(지방재판장)을 담당했는데, 1세기 그리스도의 교회들도 이런 유대교 전통을 따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1세기 교회들의 구조와 조직은 일차적으로 유대교 회당들의 구조와 조직에 연결된다. 예배당의 입구는 동쪽에, 성경궤(법궤)와 주의 만찬상은 서쪽에 있었다. 이것은 성전과 유대교회당의 구조를 따른 것이다. 교회마다 장로가 세 명씩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도 유대교 회당의 장로들(회당장들)이 세 명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수제자로 세우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이그나티우스의 서신들로 볼 때, 1세기 말부터는 설교와 예배의식과 침례식과 같은 교회의식을 맡아하는 오늘날의 목사와 동일한 기둥 장로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그를 일컫는 호칭도 감독(주교)으로 점차 바뀐 것으로 보인다. 150년경에 순교자 저스틴은 <변증서>에서 예배의식의 집례자를 일컬어 “형제들의 장”(the president of the brethren)이라고 하였다.

1세기 교회들의 교인들은 상당수가 유대인들이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한 전도자들도 초기에는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바울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를 세운 후에 유대교 회당에서처럼 장로들을 세웠는데, 이들이 바로 양 무리를 돌보는 목자들이었고, 감독자들이었다(행 20:17-38).

“양 무리의 본이 되라”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라는 부탁은 목회자인 장로들에게 주신 권면으로써 2-3절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당부하였다. 4절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이 내용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행한 고별설교의 내용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고별설교에서 바울은 먼저 자신이 어떻게 양 무리의 본이 되었는가를 열 가지로 설명하였다.

첫째, “모든 겸손과 눈물”로 주를 섬겼다, 둘째,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 셋째,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 전하여 가르쳤다.” 넷째,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다.” 다섯째,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완수함에 있어서 목숨을 아끼지 않겠다. 여섯째,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였다.” 일곱째,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다.” 여덟째, “모든 일에서... 본을 보였다.” 아홉째,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하다.” 열째,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한다”(행 20:19-35).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네 가지를 권면하였다.

첫째,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잘 살피고 양 떼를 잘 보살피라.” 둘째,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에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다.” 셋째, 장차 박해자와 이단자들이 교회를 해치려할 텐데, 심지어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텐데, “여러분은 깨어 있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눈물로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넷째,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다”(행 20:28-32).

5-11절은 베드로가 성도들에게 주신 당부의 말씀으로써 성도들이 목회자인 장로들에게 순종할 것과 모두가 서로서로 겸손의 옷을 입으라고 하였다. 원수인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아다니기 때문에 정신 차려서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였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젊은 자들아 ...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5절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는 하나님이 겸손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지혜와 능력을 덧입히신다는 뜻이다. 반대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신다.” 당시 헬라인들도 교만한 자를 신이 혐오하여 보응하고, 겸손한 자를 신이 사랑하여 긍휼을 입힌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테바이의 왕비였던 니오베는 자랑할 것이 많았지만, 교만으로 인해서 ‘신이 혐오하는 사람’이 되었고, 신의 미움을 받아 석상이 되고 말았다. 반면에 고린도의 난쟁이 조각가였던 피그말리온은 겸손으로 인해서 자신이 조각한 아름다운 여성 석상을 사람이 되게 하여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피그말리온은 신들을 믿고 감사예배를 바침으로써 ‘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신으로부터 긍휼을 입게 되었다.

7-11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에서 마귀는 단지 영적 존재일 뿐 신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이길 수 없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용사들을 궁극적으로 이길 수 없다.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게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을 덧입혀 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주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이 되는 한 가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해서 믿음과 선한양심을 가지라고 하였다. 바울은 이것들을 해전에서의 “군함”에 비유하였다. 반면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저버리는 것을 “파선”에 비유하였다(딤전 1:18-20).

12-14절은 끝 인사와 축복이자 베드로가 친필로 쓴 부분이다. 나머지는 유대인이었던 ‘실루아노’가 대필하였다. 실루아노는 히브리명이고, 그의 또 다른 이름 ‘실라’는 로마명이다. 13절에서 “바벨론에 있는 교회”란 로마교회를 말한다. 베드로는 네로 황제 때에 로마에 머물렀고, 마가는 그의 통역관이었다.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이라고 칭한 것은 ‘내 제자’란 뜻이다. 유대인들은 스승을 아버지로 부르곤 하였다. 14절에서 “사랑의 입맞춤”은 2세기경까지 지속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인사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형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끝으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평강을 기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