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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9 09:45
산 소망 산 돌15: 그리스도인들의 삶(3)(벧전 4: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6  

산 소망 산 돌15: 그리스도인들의 삶(3)(벧전 4:8)

의식주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

베드로전서 4장 12절부터는 후반부 내용으로써 고난으로 인해서 신앙의 위기를 맞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권면하는 내용이다. 그 첫 부분인 4장 12-19절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은 용광로의 불처럼 단련하는 불길이 될 터인데, 그와 같은 시련의 불길이 닥치더라도 놀라지 말고, 오히려 기뻐할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자신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였다.

톨스토이는 <대자>(Godson)라는 민화에서 구도자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특징이 살림의 일에 있다고 하였다. 대자는 나이 들어서 숲 속에서 수도생활을 했는데, 그의 사명은 불에 타다 꺼져 죽은 숯검정이가 되다시피 한 세 개의 사과나무 막대기를 땅에 심고 물을 주는 것이었다. 그는 날마다 냇가에 내려가 입에 물을 머금어다가, 이미 죽은데다가 불에 타기까지 해서 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마른 막대기에 물주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소문이 나자 신도들이 찾아들었고, 대자는 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살았다. 사람들은 대자를 존경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사람 죽이는 재미로 사는 잔악무도한 살인강도였다. 이 강도는 일종의 스토커로서 수시로 대자를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죽은데다가 불에 타기까지 한 사과나무 막대기는 다름 아닌 바로 이 강도의 심령상태였다.

아무튼 대자는 이 강도를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30년이었다. 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왜 이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느냐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대자가 먹고 입고 사는 의식주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데 걸린 시간이 10년이나 되었고, 죽느냐 사느냐의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데 또 10년이 걸렸고, 자기를 무시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살인강도를 뜨겁게 사랑하는데 또 10년이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대자가 의식주문제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과 자기를 무시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살인강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데 걸린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면, 살인강도가 변화를 받는 시간도 그만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시간이 무려 30년이나 되었기에 살인강도가 변화를 받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3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버리라.

대자(Godson)가 강도를 만나 마음고생을 시작한 것은 수도생활을 시작한 직후였다. 대자는 강도가 두려웠다. 강도가 무서워서 신자들이 암자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할지 늘 근심걱정이 많았다. 그런 세월이 무려 1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수도생활 10년 끝에 대자는 깨달은바가 있어서 암자를 버리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없는 깊은 숲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야 비로소 대자가 자신에 대한 걱정을 그치고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인생살이 문제들은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찾을 수 없는 더 깊은 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살인강도만은 대자의 그런 참뜻을 읽고 있었고, 대자가 숨어들어간 곳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도는 대자의 먹을 것을 자루에 넣어 몰래 가져다주었다. 대자의 깨끗한 마음에 살인강도의 마음 한구석에 변화가 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강도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는 대자의 설교를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변화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타버리고 말라버린 사과나무 막대기 세 개 중의 하나에 대자가 계곡의 물을 입에 머금어다가 뿜어 준지 10년 만에 기적처럼 싹이 돋기 시작했다.

대자가 사람들을 피해 더 깊은 숲속에 들어가 수도한지 다시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대자는 이 20년 수도 끝에 더 이상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옳은 것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무서운 강도라 할지라도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강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안에 단단히 고정시켰을 때, 굽힐 줄 모르던 강도의 고집이 꺾이기 시작한 것이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변화의 기적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타버리고 말라버린 또 하나의 사과나무에 싹이 돋기 시작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라.

또다시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자는 이제야 비로소 30년 수도생활 끝에 잔악무도한 강도를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자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온갖 욕설을 퍼붓는 강도의 영혼을 정말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뜨거운 사랑에 강도의 차디찬 마음이 얼음 녹듯이 녹아내렸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회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자 마지막 남은 막대기마저도 싹이 돋기 시작했다.

타버리고 말라버린 세 개의 사과나무가지에 생명이 불어넣어지기까지 30년이 걸렸다. 대자가 산등성에 심고 계곡의 물을 입에 머금어 담아와 뿜어주며 30년을 키웠던 타버리고 말라버린 세 개의 사과나무는 다름 아닌 그를 시험하고 괴롭히던 잔인무도한 살인강도였다. 결국 이 살인강도는 대자의 깨끗한 걸레에 닦이고, 탄탄한 버팀목에 걸려 휘어졌으며, 강한 밑불에 녹아졌다. 결과적으로 이 살인강도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은 대자를 이어 구도자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였다. 대자가 일평생 수도를 통해서 도달했던 깨끗한 걸레와 탄탄한 버팀목 그리고 강한 밑불은 소생될 가망이 없던 한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요 지혜였다.

대자가 타버리고 말라버린 사과나무 막대기와 같았던 살인강도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의 싹이 돋게 한 힘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 톨스토이는 <대자>(Godson)를 통해서 독자에게 세 가지 덕목을 요구하였다. 첫째는 의식주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물질문제, 금전문제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버리고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하라는 것이다. 셋째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지, 의식주문제나 생사문제를 염려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뜨겁게 사랑하며 감사하며 전도하며 살림의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타버리고 말라버린 막대기와 같았던 살인강도의 마음을 움직인 힘이었다는 것이다. 마른 막대기와 같던 우리의 마음을 녹인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