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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9 09:39
산 소망 산 돌14: 그리스도인들의 삶(2)(벧전 4:7-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1  

산 소망 산 돌14: 그리스도인들의 삶(2)(벧전 4:7-11)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7-11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는 베드로전서의 전반부의 마지막 부분이다. 4장 1-6절에서 죄와 불신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권면한 베드로는 7-11절에서 성도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권면하기를 성도들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며,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봉사하라고 하였다. 또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자답게 하라고 하였다.

톨스토이가 쓴 23개의 민화 가운데 <대자>(Godson)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대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늘 새로운 통찰과 반성의 기회를 준다. 톨스토이는 이 글을 그리스도인들을 교훈하기 위해서 썼을 것으로 본다. 당대에는 러시아인 상당수가 정교회 교인들이었다. 아무튼 이 글에서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인들을 구도자로 보고 세 가지 덕목을 말하였다.

첫째, 자신의 걸레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다. 걸레가 깨끗하지 못하면 청소가 깨끗하게 되지 않는다. 깨끗하게 빨지 않은 걸레는 악취가 나고, 그 상태로 걸레질을 하게 되면 얼룩과 악취가 남게 된다.

이 걸레는 우리 구도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신앙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말하기도 한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 신앙이 바르지 못한 사람, 가치관과 세계관이 잘못된 사람은 이웃에게 얼룩을 남긴다. 악취를 남긴다.

깨끗하지 않은 걸레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그러나 삶거나 비누로 깨끗하게 빨아 말린 걸레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간주된다. 따라서 구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걸레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걸레를 깨끗하게 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톨스토이는 걸레를 의식주 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의식주 문제에 얽매인 삶을 불결한 걸레로 본 것이다. 의식주 문제에 집착하거나 얽매어 살게 되면 반드시 이웃에게 얼룩과 악취를 남기게 된다고 본 것이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상대적이다. 먹고사는데 큰 불편이 없는데도 자기보다 좀 더 잘 사는 사람을 보게 되면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 반드시 그 사람은 자기 이웃에게 얼룩과 악취를 남기게 된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말한다. 그것이 걸레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일 무슨 일이 있어날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 살라는 뜻이라고 했다.

둘째, 자신의 버팀목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하면 버팀목에 걸어서 휘거나 꺾으려 했던 것에 오히려 휘둘리게 된다.

이 버팀목은 우리 구도자들의 믿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신념과 생사관을 말하기도 한다. 이 버팀목이 강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이웃에게 휘둘리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보이고, 그 영향력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오히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끌러가고 휘둘리는 경우들이 많다. 믿음이나 신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휘둘린다. 이웃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이웃을 꺾어 휘어지게 할 수 없다. 이웃에 지배를 당하게 된다. 그러나 믿음이 확고하고 신념이 강한 사람은 이웃에게 존경을 받는다.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구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버팀목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버팀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일까?

톨스토이는 버팀목을 생사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했다. 생사문제에 얽매인 삶을 튼튼하게 박히지 못한 버팀목으로 본 것이다. 생사문제에 집착하거나 얽매어 살게 되면 반드시 이웃에게 휘둘리게 된다고 본 것이다. 이웃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구도자로서의 사명인 복음전도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톨스토이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는 것이다. 그것이 버팀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살림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가 <대자>(Godson)에서 말하고자 한 내용이다. 예수님도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하셨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다. 죽기를 각오하면 일당백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셋째, 자신의 밑불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밑불이 강하지 못하면 불 위에 얹히는 젖은 것들, 잘 타지 않는 것들을 태우지 못한다. 밑불이 강하지 못하면 자기불도 꺼뜨리게 되고 매캐한 연기만 가득 남기게 된다.

이 밑불은 우리 구도자들의 충만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충만을 말하기도 한다. 사랑과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이웃에게 매캐한 연기만 가득 남기게 된다.

밑불이 약한 사람은 자기 불을 꺼뜨리는 사람이다. 이웃들의 욕설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반대에 부딪히면 불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이웃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그러나 사랑이 충만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이웃들의 욕설도 태워버릴 수 있고,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원망도 반대도 다 태워버릴 수 있다. 그러니 시험 들어 좌절하거나 낙심하여 쓰러질 리가 없다. 따라서 구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의 밑불, 성령님의 밑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밑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일까?

톨스토이는 밑불을 이웃에 대한 불같은 사랑과 연결해서 생각했다. 이 불이 약한 사람을 매캐한 연기만 남기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잘되는 것은 자기 탓이고, 잘못 된 것은 이웃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또 톨스토이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죽음을 걱정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사람이 사는 것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이 사랑의 불이 뜨겁지 않으면 자기 인생에 매캐한 연기를 내게 되고, 매우니까 눈물을 뿌리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걸레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 밑불이 강하지 못한 사람은 살림의 일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