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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29 09:34
산 소망 산 돌13: 그리스도인들의 삶(1)(벧전 4:1-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9  

산 소망 산 돌13: 그리스도인들의 삶(1)(벧전 4:1-6)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1절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에서 “같은 마음으로”는 “같은 각오로”(공동, 가톨릭), “같은 태도로”(same attitude, NIV), “같은 의도로”(same intention, NRSV), “같은 목적으로”(same purpose, NASB)란 뜻이다. 이 말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고난 받을 것을 각오하고 마음을 단단히 다지라는 뜻이다, 마치 목숨을 걸고 싸워야하는 검투사가 싸우러 나갈 때마다 단단한 각오로 무장을 하듯이 박해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도 그와 같이 하라는 권면이다.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에서 “육체의 고난”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과 상관없이 당하는 고난을 말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말한다. 또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다”에서 “죄를 그쳤다”는 “죄와 인연을 끊었다.”(새번역)는 뜻이다. 죄와 인연을 끊었다고 해서 죄지을 성질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육체부활이 있기 전까지는 신령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본능(죄지을 성질)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이라면, 죄와 인연을 끊은 사람이고, 죄와의 관계를 끊은 사람이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분이 아시니, 그분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올 것이다”(욥 23:10)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고난은 용광로에 들어간 것과 같고 불로 단련되어 모든 불순물이 걸러지고 순금으로 나온 것과 같아서 죄와의 관계 또는 죄와의 인연을 끊었다고 할 수 있다. 고난과 박해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박해 때 목숨을 아끼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로서 고의로 악행을 저지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서 악행을 거부할 것이고 악과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침례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죽고 장사된 사람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그 영혼이 부활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3무(無)한 사람이고, 3P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다. 3무는 무벌(無罰), 무구속(無拘束), 무죄(無罪)를 말하고, 3P에서 자유하다는 의미는 죄의 형벌(punishment), 죄의 권세(power), 죄의 실재(presence)로부터의 자유 곧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롬 6:16-22)이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2-5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는 그리스도인들이 침례식 때 받았던 권면을 상기시키는 것으로써 죄와 불신자들과의 관계를 청산할 것을 당부한 말씀이다. 죄와 불신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육신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고 침례까지 받은 사람이므로 육신의 남은 때를 인간의 욕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성도들이 자기네와 함께 방탕한 삶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해서 괴이하게 생각하며 욕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그들의 죄와 허물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베드로는 바울과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처럼 구원 받은 사람들의 행실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다. 구원의 목적이 선한 행실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헬라의 신들은 능력을 행하고 죽지 않는다는 것 빼고는 상당수가 인간들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었다. “그리스인들에게 신을 만들어준 사람은 호메로스(800?-750 BC)와 헤시오도스(740-670 BC)이다”는 말이 있다.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저자이고, 헤시오도스는 신의 족보를 정리한 <신통기>의 저자이다. 신화는 통치자들에게 필요했지만, 오락이 필요한 평민들에게도 필요했다. 신들의 이야기는 연극무대에서 희화되었고, 인간보다 못한 신들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종종 오버랩 되었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신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신앙에서 신화를 철저히 배제시켰다. 그 신들이 모두 가짜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진실하시며 참 되시고 의로우셨다. 그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상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지극히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본래적 신앙을 목적으로 삼고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행위, 또 하나님과 이웃을 자기 유익의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삼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자유와 권한까지도 제한하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의한 열매들을 맺게 되는데,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2-26절에서 그 같은 것들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꼽았다. 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므로... 성령으로 행해야 하며,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아야한다.”고 권면하였다.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6절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에서 “이를 위하여”라는 말은, 첫째로, 3P로부터의 해방을 위해서란 말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첫째 P는 무벌 곧 죄의 형벌로부터의 자유이고, 둘째 P는 해방 곧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이며, 셋째 P는 무죄 곧 죄의 실재로부터의 자유이다. 3P에서 자유하다는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롬 6:16-22)이 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하여”라는 말은, 둘째로, 2절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다”란 뜻이다.

“죽은 자들에게도”에서 “죽은 자들”은, 첫째로,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이 아니라, 죄로 인해서 영적으로 죽은 자들 곧 죄와 인연을 끊지 못한 사람들(1절), 사람의 정욕을 따르는 사람들(2절),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끊지 못한 사람들(3-4절)을 말한 것일 수 있다.

둘째로,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자가 아니라, 이미 육체적으로 죽은 자를 말한 것일 수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 6:23). 따라서 ‘죽은 자들’은 살아있을 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자를 말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에서 “영으로는” 하나님의 선물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을 보장받은 그리스도인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여기서 영혼구원은 현재구원 곧 거듭남(중생)을 말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칭함을 받은 것을 말한다. 그리고 영혼구원은 미래구원을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고 그 약속을 성령님이 보증하심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이런 축복을 무상으로 주시는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