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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1 11:39
신행일치19: 인내의 믿음(1)(약 5:7-11)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9  

신행일치19: 인내의 믿음(1)(약 5:7-11)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7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에서 ‘강림’이란 단어는 헬라어 단어 ‘파루시아’(PAROUSIA), 라틴어  ‘아드벤투스’(ADVENTVS)의 번역이다. 주후 30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님은 승천하셔서 하늘 지성소 곧 보좌방에 계신다. 그 그리스도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기 때문에 ‘강림(降臨)’이라고 한 것이고, 두 번째 오시는 것이기 때문에 ‘재림(再臨)’이라고 한 것이다. ‘파루시아’나 ‘아드벤투스’는 모두 도착, 귀환, 왕림 등을 뜻한다. 이 말은 주로 황제의 도착(ADVENTVS AVG)에 쓰였다. 고대의 황제들은 자칭 ‘신의 현현’ 또는 ‘신의 아들’이었고, 특히 로마황제들은 ‘평강의 왕,’ ‘관용의 왕,’ ‘민중의 수호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칭호를 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들의 신성참칭이 거짓인 것을 알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평강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시며, 구세주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 같은 칭호를 오직 그리스도님께 바쳤습니다. ‘그리스도의 강림’(ADVENIENS CHRISTUS)이란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로마제국시대에 황제가 로마에 도착 또는 귀환하는 일은 축하하고 기념할만한 중요한 행사였다. 전시(戰時)에 황제들은 전장(戰場)에 나가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돌아왔고, 종종 속주들의 도시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황제의 도착(ADVENTVS AVG)을 새긴 주화에서는 보통 말(백마)을 탄 황제가 오른손을 들어 환영인파에게 답례하는 모습이지만, 종종 그 곁에 말잡이 군인이나 오른쪽 앞발을 올린 말 아래에 쪼그려 앉은 포로의 모습을 담기도 하였다.  

황제의 도착(ADVENTVS AVG)을 새긴 주화는 트라야누스 황제(AD 98-117) 때 처음 발행되었으나 통용되지는 않았다. 통용이 된 황제의 도착(ADVENTVS AVG)을 새긴 주화는 하드리아누스 황제(AD 117-138), 카이사르 코모두스(AD 180), 셉티미우스 세베루스(AD 193-211), 필립1세(AD 244-249), 트라야누스 데키우스(AD 249-251),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AD 251-253), 클라우디우스2세(AD 268-270), 프로부스(AD 276-282), 맥시미아누스(AD 285-305), 디오클레티아누스(AD 284-305)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AD 307-337) 때에 마지막으로 발행되었다. 로마 시가 아닌 타 도시에서 화폐가 주조되었을 경우에는 황제가 그 화폐를 주조한 도시에 도착한 것을 나타낸다.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8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에서 저자는 주의 강림이 있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환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처지를 농부에 비유하여 마치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하였다. 건기에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간절한 심정으로 주님의 강림을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권면이다. 참고 기다리면 반드시 비가 내리듯이, 환난을 참고 견디며 마음을 굳세게 하면 반드시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권면이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수리시설이 없었던 데다가 겨울에만 비가 500-600mm 정도 내리는 준 메마른 지중해성 기후여서 물이 매우 귀했다. 건기에 해당되는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단지 이슬만 내리고, 우기에 해당되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비가 내리는데, 대부분의 비는 1-2월에 내린다. 강수량은 예루살렘이 560mm 정도, 갈릴리 호수가의 나사렛이 640mm 정도이다. 갈릴리호수와 요단강의 물은 대부분 백두산 높이의 헐몬산에서 흘러든 물이지 빗물은 아니다.

‘이른 비’는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내리는 비를 말하고,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는 비를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이슬이 축복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창27:28, 신33:28, 수8:12), 긴 건기에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이유는 거의 매일 내리는 이슬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슬은 현격한 일교차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환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판소리 <춘향전>이다. 이도령을 사랑한 성춘향이 한양으로 떠나간 낭군을 학수고대하던 중에 변 사또의 수청요구를 받았고, 이를 단호히 거부했지만, 회유와 고문을 피할 수 없었으며, 결국 칼을 쓰고 옥에 갇혀 처형만 기다리던 최악의 상황에서 암행어사 이도령이 나타나 악행을 저지른 변 사또 일행을 처벌한 후에 끝까지 정절을 지킨 성춘향과 백년가약을 맺었다는 것에서 보듯이, 우리도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길이 참고 마음을 굳세게 해야 할 것이다. 만일에 춘향이가 돈과 권력과 명예를 좇고, 일신의 안일과 허영을 좇고, 거짓과 술수와 무법이 판치는 진흙탕 속에 제 몸을 던졌다면, 소식이 끊겠다는 핑계로 이몽룡을 배신했다면, 그의 부인이 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성도들은,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을지라도, 마음의 눈을 열어 장차 전개될 역전의 상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9-11절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에서 저자는 농부이외에 추가로 고난과 박해를 잘 참아냈던 역대 선지자들과 욥의 인내를 본으로 삼을 것을 권하였다.

고난과 비와 관련된 선지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 엘리야이다. 아마 저자도 엘리야를 염두에 두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엘리야시대에 북이스라엘왕국은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국제무대에 알렸고, 모압이나 암몬과 같은 이웃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고 있었다. 국력이 막강했던 터라 이웃나라들이 동맹을 맺고 싶어 했고, 다윗 왕에 버금가는 왕이었던 오므리는 아들 아합을 시돈 왕 엣바알(‘바알과 함께한 자’란 뜻)의 딸 이세벨과 결혼동맹을 맺게 하였다. 엣바알은 바알에게 헌신한 바알 신의 제사장이었던 사람으로 시돈의 왕 펠레스(Pheles)를 죽인 후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시돈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던 곳이었다. 시돈의 아스다룻 숭배가 키프로스와 고린도에서 아프로디테 숭배로 발전되었을 정도로 아스다롯 숭배는 음란한 예배로 악명을 떨쳤다.

바알 제사장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막강한 힘을 가진 왕이었던 아합을 꼬드겨 바알숭배자가 되게 하였고, 그의 힘을 빌려 북이스라엘왕국에서 야훼신앙을 폐지시키고 바알신앙을 국교로 삼았다. 갈멜산에 집합한 바알의 선지자가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가 400명 총 850명이나 되었을 정도로 야훼신앙은 말살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홀연히 나타나 바알신앙을 무력하게 만든 영웅이 엘리야 선지자였고, 아합과 이세벨의 집안을 멸문시키고 야훼신앙을 복원시킨 영웅이 엘리사 선지자였다. 이 역사적 사건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삼년 반’이다. ‘삼년 반’이란 말은 박해로 인한 고난은 짧지만, 끝까지 견딘 인내와 믿음이 주는 영광이 매우 길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저자 야고보는 욥의 믿음과 인내를 예로 들었는데,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욥은 자기와 집안에 닥친 극한 고난과 재앙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써 “이전보도 더 많은 복을”(욥 42:12) 받았던 구약시대의 전설적 인물이다. 비록 성도들이 견뎌야하는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