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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5 18:56
1세기 교회질서39: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8)(딛 3:3-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1  

1세기 교회질서39: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8)(딛 3:3-8)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3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다”는 앞서 언급된 1-2절의 동사 “기억하게 하라”(Remind)에 연결된다. 1-2절에서 바울은 네 가지를 성도들이 “기억하게 하라”고 목회자들에게 당부하였다. 첫째는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고, 둘째는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으며, 셋째는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고, 넷째는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이제 바울은 3-8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전에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직접 몇 가지로 상기시켜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전에”의 뜻은 ‘왜냐하면 우리가 이전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죄의 종노릇했기 때문이다’이다.

첫째는 우리가 이전에는 3절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란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각종 우상들을 섬겼던 어리석은 사람들이었고, 황소, 뱀, 그리핀,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들까지 포함해서 대략 3만이 넘는 신들을 섬겼으며, 참되고 유일하신 야훼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난봉꾼 제우스가 최고신인줄로 속고 살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둘째는 우리가 이전에는 3절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는 것이다. 로마시대의 삶은 지배와 복종게임이었다. 로마시대에 보통의 사람들은 가난, 질병, 노동, 착취, 폭력, 성적학대, 납치, 강간, 살인, 전쟁과 죽음의 고통 속에서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 살아가야했다. 따라서 사람들의 관심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능력에 맞춰져 있었다. 자기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은 착취하고,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는 굴종하는 식이었다.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는 도덕심이나 수치심이 별로 없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이제 바울은 4-8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는 피해자가 아니요 가해자도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의 수혜자가 되었다는 귀한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3절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5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하였다.

4절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강림하신 때를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진실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축복이 되어 왔다. 그분을 통해서 복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모양으로든지, 선교를 통해서든지 구제를 통해서든지 혹은 말씀의 은혜를 통해서든지 그분의 은혜를 입은 사람의 수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많다. 그분의 오심은 진실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눅 2:14)가 되었다. 그리스도는 인간이 최악의 상태일 때 출현한다고 볼 때, 당대는 특히 유대인들에게는 최악의 시기였다. 그런 만큼 그리스도교 복음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겠는가? 그리스도교 복음이 오늘날에도 고통스런 삶을 사는 이들에게 여전히 위로와 소망이 되고 있다.

5-7절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이 행위로써가 아니라,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곧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신자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믿고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는 구원의 과정에서 마지막 단계를 말한다.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바울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동일하게 보았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 하였다. 여기서 “한 성령으로”는 한분 성령님에 의해서 물로 침례를 받았다는 뜻이다. 또 “한 몸이 되었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늘 가나안땅의 상속자임을 성령님께서 보증하시고 인치셨고, 선취하게 하시고 또 그 땅에로 책임지고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디도서 3장 5절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는 그리스도께서 대속자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신자들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고, 하나님은 재판장으로서 신자들에게 무죄를 선언해 주셨으며, 성령님은 의사로서 침례 중에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시키시고 또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다시 살리셨다는 뜻이다(골 2:12).

바울은 의사이신 성령님의 이 사역을 일컬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했다. 이 과정 곧 침례 중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깨끗이 씻겼거나 “새롭게 하심” 곧 고침을 받았을 때를 일컬어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부르고, ‘초기성화’로 일컫는다. 그것은 마치 수정(잉태)으로부터 출산까지가 새 생명의 탄생의 과정인 것과 같고,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여 결혼에 골인하기까지가 부부탄생의 과정인 것과 같다. 따라서 침례는 중생의 시간으로, 혼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시간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세속인이 그리스도인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등록교인 곧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된다.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점진적인 성화의 삶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로서의 점진적인 성화의 삶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선한 일을 힘써야하는 이유를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하나님의 선물”로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엡 2:8). 그러므로 디도서 3장 8절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다.”는 에베소서 2장 10절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다.”에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