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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24 14:29
1세기 교회질서38: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7)(딛 3:1-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72  

1세기 교회질서38: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7)(딛 3:1-2)

목회서신의 기록연대 추정

디도서의 기록연대는 디모데전서보다는 늦고 디모데후서보다는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2년 정도 연금되었다가 63년경에 풀러 나와 다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가이사랴 감옥에 갇힌 58년 초여름부터 풀려난 63년경까지 최소 4년에서 5년 만에 이뤄진 활동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울의 활동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64년에 발생한 로마시 대화재로 인해서 64-5년경에 다시 체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황제 네로는 64년 7월 18일부터 9일간 로마시의 삼분의 일을 태운 대화재사건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전가하였고, 그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방화범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우두머리로 지목을 받았다.

바울이 체포될 당시 소아시아의 드로아 가보(Carpus at Troas)의 집에 머물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디모데후서 4장 13절에서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갑자기 체포되었기 때문에 소지품을 미처 챙기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아직 항해가 가능한 64년 초가을이나 이듬해인 65년 초여름이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쓴 디모데후서가 디모데에게 전달된 시기는 아무리 빨라도 이듬해 65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겨울항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또 디모데가 바울의 소지품을 챙겨 로마에 갇힌 바울을 찾았을 때쯤은 이미 바울이 갇힌 지 6개월 이상 1년쯤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의 맘머티메 토굴에 갇힌 직후인 64-5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고, 디도서는 그 이전인 63-4년 여름이나 64-5년 여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디모데전서는 63-4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정은 모두가 바울의 투옥시기와 석방 및 장거리 여행과 바닷길이 열리는 항해시기를 고려한 것이다.

니고볼리

니고볼리(Nicopolis)는 ‘승리의 도시’란 뜻이다. 주전 31년에 악티움(Actium) 인근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함대를 물리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에 즉위한 주전 29년에 해전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자치도시로써 로마시민증을 수여받은 퇴역군인들의 정착지로 개발되었을 것이다. 니고볼리는 에피루스 지방(Epirus Vetus)의 수도였다. 옥타비아누스는 이미 빌립보 전투 직후에도 로마시민증을 수여받은 퇴역군인들의 정착지로 빌립보를 자치도시로 지정한바가 있다. 주전 29년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에 즉위한 옥타비아누스는 빌립보에 ‘이우스 이탈리쿰’(jus italicum) 곧 ‘이탈리아의 권리’(이탈리아에 적용되는 동등한 권리)라는 특권을 부여하고, 자신의 딸을 기념하여 ‘아우구스타 율리아의 정착지 빌립보’(Colonia Augusta Julia Philippensis)라는 이름을 수여하였는데 이탈리아에 적용되는 동등한 권리 곧 자유와 자치가 니고볼리에도 주어졌다. 옥타비아누스는 악티움해전의 승리의 영광을 아폴론 신에게 돌리기 위해서 악티움 경기를 제정한바가 있고, 로마군이 진을 쳤던 너른 터에 니고볼리를 세웠으며, 자신의 막사가 있던 자리에는 로마의 바다의 신 넵투누스(Neptunus, 그리스의 포세이돈) 신전을 건립하였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니고볼리에 있던 대다수 공공건물들이 헤롯의 관심과 재정 도움으로 세워졌다고 한다<고대사, 16권, 5장, 3절>.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연금되어 있다가 주후 63년경에 풀려난 이후 64년 로마시의 대화재사건으로 인해서 다시 체포된 64-5년경 사이, 곧 63-4년 겨울이나 64-5년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였고, 디도가 그곳으로 와주기를 바랐다(디도 3:12). 그러나 바울이 디도서를 이곳에서 기록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니고볼리가 아닌 다른 지역을 순회하던 중에 디도에게 편지를 보내 니고볼리에서 겨울을 보낼 계획이니까 그곳에서 만나자고 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니고볼리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사이의 중간 바다 곧 이오니아 해(Ionian Sea) 그리스 땅 에피루스(Epirus) 지방 서해안에 세워졌다. 앞서 언급한 악티움해전(Battle of Actium, 31 BC)과 소아시아의 노예출신이자 고문으로 절름발이가 된 해방노예신분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 AD 50-135)가 거주했던 유명한 도시였기 때문에 전도하기에도 좋고, 디도가 바울을 만나기 위해 그레데에서 배를 타고 오기에도 편리한 곳이었다.

“기억하게 하라”

바울은 디도서 3장 1-2절에서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하였다. 이 두 구절의 핵심단어는 “기억하게 하라”(Remind)이다. 이 단어 “기억하게 하다”는 반복적인 권면을 통해서 성도들의 기억을 일깨우고 되살리라는 뜻이다.

“바울은 디도나 장로/감독에게 성도들을 일깨워 기억나게 할 것들로 네 가지를 당부하였다. 첫째는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해야” 한다는 교훈을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말씀은 애국심도 애교심도 애향심도 사라져가고 있고, 권위와 위계를 무시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로 착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야훼는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권세와 권위의 근본이시다.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의 위임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청지기와 같은 것이다. 또 모든 권세와 권위는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합의(계약)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천심이 민심이고, 민심이 곧 천심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권세를 위임받은 청지기들은 의무와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고 정의롭게 행사해야 한다. 또 구성원들은 그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해야한다. 이 같은 것을 자주 권면하여 기억나게 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비유에서 보듯이, 언제 어느 때라도 필요한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를 항상 갖추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일깨우라는 뜻이다. 소방대원들처럼 언제 어느 때라도 시행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춰야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라는 뜻이다.

셋째는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아무도 비방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며 남을 비방하고 다투려하는 자기의 본성을 제어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내도록 자주 권면하라는 뜻이다.

넷째는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로써 전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