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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6 09:13
1세기 교회질서33: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2)(딛 1: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33  

1세기 교회질서33: 선한 일을 힘쓰는 그리스도인(2)(딛 1:1-4)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디도서 1장 1절 전반부에서 바울은 자신의 신분을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였다. 이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분명한 바울의 자의식에서 나온 말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신 것도 분명한 예수님의 자의식에서 나온 말이다. 이 자의식은 사람의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매우 중요한 의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수난을 기피하지 않으신 것, 바울이 고난과 핍박을 기피하지 않고 적대자들과 정면승부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그분들이 영웅들 가운데 최고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자의식 때문이었다. 자의식이 살아있는 한, 왕자는 비록 자신이 거지차림을 했을지라도 왕자라는 의식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 반면에 거지는 비록 왕복을 입고 왕관을 썼을지라도 거지라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나는 하나님이 만세전에 예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고 칭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그리스도인이다.” “나는 하나님이 택하신 그분의 자녀이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이다.” “나는 하나님이 택하신 그리스도의 일군이다.”와 같은 자의식이 그리스도인들을 삶의 영웅으로 만든다.

또 바울은 1절 후반부에서 자신이 사도로 택함을 입은 목적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 진리의 지식”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믿음과 진리의 지식은 교리를 말한다. 바울은 이 교리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경건한 삶을 살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힘쓰게 한다고 했다.

또 바울은 2절에서 이 믿음과 지식 곧 교리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약속해 두신 영생에 대한 소망”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또 바울은 3절에서 하나님이 당신께서 정해놓으신 때가 이르자, 이것을 복음의 선포(kerygma)란 것 곧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드러내셨고(고전 1:21), 구주 하나님이 명령으로 바울 자신과 디도에게 맡기신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4절에서 “같은 믿음을 따라” 같은 일에 수고하는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기를 빈다.”고 하였다.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1)

디도는 바울을 대신해서 선교교회들이 직면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인물이다. 디도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주후 51년경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총회 때로 볼 수 있다(갈 2:1-5, 행 15:1-2). 디도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헬라인이었다.

예루살렘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지 대략 20년이 흐른 때에 안디옥교회와 예루살렘교회의 에비온파 사이에 불거진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교리문제였다. 안디옥교회를 대표한 바울과 바나바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서 시리아의 수도 안디옥에 최초의 이방인교회를 세운 사람들이며, 그리스도교 복음의 세계화, 탈국경화, 탈민족화를 시도한 인물들이었다.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핵심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태생의 유대인들로서 대부분이 예수님의 형제와 제자들이었으며, 바울과 바나바가 갖지 못한 사도적 결정권과 승인권을 가진 큰 사도들이었다. 그런 큰 권한아래 있었던 예루살렘교회의 에비온주의들은 그리스도교를 유대교의 틀 속에 가둬두려고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행 15:1)와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 15:5)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유대교의 축일들인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킬”(갈 4:10) 것을 가르쳤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골 2:16)고 하였고, 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다”(갈 5:6)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특징을 자유와 평등과 박애에 두었다. 하나님은 한분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온 인류의 하나님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온 인류에게 평등하시고, 차별이 없으시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복음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고,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고, 혈통과 민족의 차별이 없다. 국경도 없다. 그러므로 유대민족의 종교적 신념인 할례와 절기 지키는 일을 타민족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님은 한분뿐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고는 다른 신이 없다. 하나님 말고는 다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고는 모두가 다 평등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 지음 받은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2)

인간학에서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월등히 우수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아무리 미개한 종족이라도 문명세계를 접할 기회를 주면, 곧바로 문명인이 되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다. IQ테스트에서도 미개한 종족이 문명이 깬 종족보다 더 높게 나타난 사례들이 보고된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민족의 우월성은 타고난 것이기보다는 높은 도덕수준을 자랑하는 그들의 야훼신앙과 오랜 고통과 시련의 역사 속에서 다듬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유일신 사상에 그리스도교 복음의 특징인 자유해방과 평등사상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복음에서는 그 어떤 종류의 신성도 우상도 거부한다. 하나님 말고는 절대적인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고는 유일무이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와 평등과 박애는 유일신 사상에 기초를 둔 그리스도교 복음의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이 가치를 위한 투쟁이 바로 주후 51년경에 예루살렘에서 열린 총회에서 이뤄진 일들이고, 성령님의 강한 개입과 역사 속에서 예루살렘교회를 대표하는 사도들이 안디옥교회를 대표하는 바울과 바나바의 입장을 대폭 수용함으로써 좋은 결말을 얻게 되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이요 무할례자인 디도를 대동하였는데, 아마도 그는 무할례자들인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된 훌륭한 사례 곧 그 증거로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역사적 사건에 증인으로 참여한 디도는 이후로 훌륭한 바울의 동역자로서(고후 8:23), 제자로서, 참 아들로서(딛 1:4) 평생을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서 바치게 되었다.

디도는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울이 눈물로 쓴 편지를 가지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하여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잘 처리하였고, 또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서 모금하는 귀중한 사역을 감당하기도 하였다. 이런 일련의 일들과 관련해서 디도의 이름이 고린도후서에서만 아홉 차례나 언급되었다(고후 2:13; 7:6,13; 8:6,16,23; 12:18). 그리고 이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말년인 66년경에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써 목회지침서나 다름없는 훌륭한 글이다.

디도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는 그가 달마디아 곧 오늘날의 유고슬라비아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가이사랴의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는 그가 쓴 <교회사>에서 디도를 그레데 섬의 감독으로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