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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22 11:19
1세기 교회질서31: 복음을 위한 고난(12)(딤후 4:9-22)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6  

1세기 교회질서31: 복음을 위한 고난(12)(딤후 4:9-22)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로 이송된 상황에 대해서는 디모데후서 1장 15-18절에서 이미 설명하였으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디모데후서 4장 9-22절은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쓴 마지막 구절들이자 전도자로서 헌신한 삶의 결산서와도 같다. 바울은 자기를 불러 일군으로 세우신 예수님보다 10배가량 더 오랜 기간 제자들을 키우고 또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며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사역은 바울의 10분의 1인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임팩트는 바울보다 10배나 더 컸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취한 행동은 마땅히 비난받아야 했지만, 대부분은 복음전도에 헌신하다가 순교하였다. 적대자들도 있었고, 가룟 유다와 같은 배신자도 있었으며, 끝내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승리자가 되셨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걸었던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에비온파나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와 같은 적대자들이 있었고, 배교자들도 있었으며, 1장 15절에서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다.”한 것이나 4장 16절에서 “내가 처음 변명(법정에서의 변호)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위기 때에 자기만 살겠다고 줄행랑을 쳤던 사역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옥에 갇힌 바울을 버려두고 데살로니가로 떠나버린 데마조차도 어쩌면 선교지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두고 떠나버린 마가가 여전히 자신에게 유익한 일군이니, “데리고 오라”(11절)고 한 것에서 보듯이, 데마를 비롯하여 그레스게, 디도, 누가, 두기고, 브리스가와 아굴라, 오네시보로, 에라스도, 드로비모, 으불로, 부데, 리노와 글라우디아까지 모두가 복음의 유산을 지키고 발전시킨 신실한 일군들이었다. 바울은 자신은 물론이고 이들 일군들의 헌신으로 인해서 풍성한 수확을 후대에 유산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고독한 원망이 아니라 빛나는 월계관을 받아쓸 승리자가 누리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었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프랑스의 조각가이다. 그의 작품 ‘지옥의 문’은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180여명이 넘는 인물들로 구성되었는데 대체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구성이 비슷하다. ‘지옥의 문’ 상단에 세 사람의 망령들(shades)을 세웠는데, 오른쪽(독자의 좌측)에 고뇌하는 아담이 포함되어 있다. 높이 635센티미터, 너비 400센티미터, 폭 85센티미터의 거대한 ‘지옥의 문’ 양쪽 문설주에 새긴 조각들은 대체로 위(천국)를 향하고 있고, 양쪽 문짝에 새긴 조각들은 아래(지옥)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개의 문짝 위를 가로지른 상인방과 문틀 사이의 넓은 공간 중앙에는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 배치되어 있고, 그 우측(독자의 좌측)에는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이, 좌측에는 마귀와 해골과 뼈를 비롯한 지옥으로 떨어질 사람들이 묘사되었다.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질 인간들의 운명과 타락한 문명 때문인지 깊은 상념에 빠진 표정을 짓고 있다. 혹자는 로댕의 이 ‘생각하는 사람’이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 중앙부 나팔을 부는 천사들과 좌측(독자의 우측)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들 사이에 묘사된 한 남자에게서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남자의 모습은 엄격히 말해서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는 이마에 뿔이 난 마귀들에게 단단히 붙잡혀 있어서 헤어날 수가 없고, 반면에 마귀들은 이 남자의 양다리를 단단히 휘감은 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로댕은 당초 이 ‘생각하는 사람’을 ‘그 시인’(The Poet)으로 불렀으나 최종적으로는 ‘창조주’로 바꿨다.

상인방의 ‘생각하는 사람’ 우측(독자의 좌측)에는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을, 좌측에는 마귀와 해골과 뼈를 비롯한 지옥으로 떨어질 자들을 묘사하였다. 양쪽 문설주에 새긴 위(천국)를 향하고 있는 인물들과 상인방의 ‘생각하는 사람’ 우측(독자의 좌측)에 조각된 인물들은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과 성도들이고, 양쪽 문짝에 새긴 아래(지옥)로 추락하는 인물들과 상인방의 ‘생각하는 사람’ 좌측(독자의 우측)에 조각된 마귀와 해골과 뼈와 함께 한 인물들은 지옥으로 떨어질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단테의 <신곡>에 따르면, 저주받은 영혼들은 카론의 바닥없는 소가죽 배에 실려 지옥의 수문장 미노스에게 보내지게 되고, 미노스는 그들을 죗값에 따라 분류하여 9개의 등급으로 나뉜 지옥의 계곡들로 보낸다.

“주께서...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 양쪽 문짝에 장식된 조각상들은 단테의 <신곡>에 묘사된 지옥에 있다는 계곡들에서의 모습이다. 지옥은 죄목에 따라 들어가는 9개의 계곡이 있는데 로댕은 오른쪽(독자의 왼쪽) 문짝에 음모와 탐욕과 배반이 가득한 자들이 가는 제9계곡과 정욕(애욕)의 범죄자들이 가는 제2계곡 그리고 왼쪽(독자의 오른쪽) 문짝에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고통의 세계를 묘사한 ‘허무한 사랑’ 등을 조각하였다.

로댕의 ‘지옥의 문’은 로댕이 죽은(1917년) 후에 짜 맞춰졌고, 죽은 지 9년 후인 1926년에 청동상이 만들어졌다. 오른쪽(독자의 왼쪽) 문짝 상단 제9지옥계곡에 기아로 고통을 겪는 ‘우골리노와 그의 자녀들’ 조각상이 있고, 하단 제2지옥계곡에 금지된 사랑에 몸부림치는 시동생 파올로(Paolo)와 형수인 프란체스카(Francesca)가 있다. 그리고 왼쪽(독자의 오른쪽) 문짝 윗부분에 ‘허무한 사랑’(Fugit Amor) 조각상이 있다. 로댕은 본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조각상 아래에 이들의 ‘입맞춤’ 조각상까지 배치하였으나 전체적인 조화 때문에 ‘입맞춤’은 나중에 ‘지옥의 문’에서 제외되었다.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우골리노와 그의 자녀들 및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13세기에 실재했던 인물들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 ‘피사’(Pisa)의 폭군이던 ‘우골리노 델라 게라데스카’(Ugolino della Gherardesca) 공작이 ‘루지에리 우발디니’(Ruggieri degli Ubaldini) 대주교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여 두 명의 자식들과 두 명의 손자들과 함께 탑에 갇혀서 굶어 죽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생명을 유지했던 우골리노는 결국 배고픔에 못 이겨, 먼저 죽어간 자녀들의 시신을 먹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는 이야기이다.

단테의 <신곡>에는 애욕의 죄를 범한 영혼들이 형벌을 받는 제2지옥계곡을 지나던 중에 채찍처럼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서로를 끌어안은 채 떨어질 줄 모르는 연인들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형수와 시동생의 금지된 사랑으로 비련의 주인공이 된 파올로(Paolo)와 프란체스카(Francesca)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간음죄로 처형되어 장례미사도 없이 땅에 묻혔다.

단테의 <신곡> ‘지옥의 문’ 상판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나를 지나면 우환의 도시가 있다. 나를 지나면 영원한 고난이 있다. 나를 지나면 멸망의 백성이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지옥편 3:1-9). 이런 이유 때문에 계시록 14장 9-12절에서 성도들이 인내로써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