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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22 11:11
1세기 교회질서30: 복음을 위한 고난(11)(딤후 4:2-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12  

1세기 교회질서30: 복음을 위한 고난(11)(딤후 4:2-8)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 4장 1-8절은 3장에서 행한 권면을 재차 강조한 말씀이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되면,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게 된다.”면서 디모데로 대표되는 복음을 유산으로 상속한 자들은 이 같은 자들을 본받지 말고, 나를 본받으라면서 3장 10-12절에서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하였다. 또 바울은 13절에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면서 14절에서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권면하였다.

디모데후서는 4장 6-8절에서 감지되듯이 바울이 교회에 남긴 유언서와 같다. 그가 교회에 남긴 유산은 그리스도교의 복음이다. 바울은 이 유산을 탕진하지 말고 복음사업 곧 전도를 열심히 잘해서 성장시켜나갈 것을 유언하였다. 그 길이 비록 가시밭길 십자가의 길일지라도, 자신이 본을 보인 것처럼, 2-5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권면하였다.

바울은 디모데로 대표되는 복음을 유산으로 상속한 자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였다. 첫째는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2:2) 곧 제자들을 양육하라고 했고, 둘째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1:8) 곧 복음의 유산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라고 했으며, 셋째는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말라”(1:8, 12)고 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는 1세기 그리스 로마인들의 종교관행에 연결되어 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를 대부분의 성경들이 ‘전제(처럼)로써 내가 이미 부어지고 있다.’로 번역하고 있으나 헬라어 원문의 뜻은 ‘왜냐하면 내가 이미 전제를 드리게 되고(1인칭 단수 현재 수동태), 나의 떠남의(내가 떠나야할) 시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은 가족 신들을 집에 모셨다. 가족 신들이란 가정의 수호신들이나 집을 지키는 조상신들을 말하며, 이들을 집에 모시기 위해서 그리스 로마인들은 집안 한쪽 벽에 벽감실(성감)을 갖추고 있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벽감실(성감) 앞에서 매일 제사(헌주)와 기도로 가족의 안녕을 빌었는데, 특히 출정하거나 군단에 복귀하는 군인 또는 긴 여행을 떠나야하는 자가 출발에 앞서 가족 신들을 모신 제단에 헌주하며 안전을 빌었다. 따라서 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는 떠나야할 시각(kairos)이 임박한 자가 떠나기 직전에 가족 신들에게 헌주하던 관행에 빗대어 바울이 자신의 죽음의 때 곧 하늘나라로 떠나야할 시각이 다가왔음을 지적한 것이다(엡 6:1-4과 딤전 3:14-16부분 그림 참조).

7절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는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AD 30년대 중반이후 죽음이 임박한 AD 60년대 중반의 순간까지도 곧 지난 30년 동안 앞서 당부한 세 가지를 충실히 이행해 왔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8절에서 이제 남은 것은 순교 후 하나님의 대전에 올라 주님께로부터 월계관을 받아 쓸 일뿐임을 피력하였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 하층부 우측(독자의 좌측)은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듣고 무덤에서 잠자던 성도들이 생명을 얻고 부활하는 장면이고, 그 위 중간층은 부활한 성도들이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상층부 천국으로 승천하는 장면이다. 중요한 것은 축복이 지상에서 천상의 보좌를 향해서 올라가고, 저주는 하늘에서 지상에로 쏟아진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요한 계시록과 ‘아드리엔 콜레르트’의 ‘최후의 심판’과 로댕의 ‘지옥의 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프레스코 벽화이고, 아드리엔 콜레르트의 ‘최후의 심판’은 판화이며, 로댕의 ‘지옥의 문’은 청동작품이다. 이들 작품 모두는 요한 계시록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사람이 위(천국)를 향하게 하였고, 저주받을 사람은 아래(지옥)로 향하도록 하였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켰으니”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중앙부 나팔을 부는 천사들과 좌측(독자의 우측)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들 사이에 한 남자가,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모습은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는 이마에 뿔이 난 마귀들에게 단단히 붙잡혀 벗어날 수가 없다. 마귀들이 이 남자의 양발을 단단히 휘감은 채 나락으로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공포와 두려움은 계시록 18장 4절에서 주님이 경고하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한다.

아드리엔 콜레르트(Adriaen Collaert, c. 1560-1618)는 플랑드르(Flanders, 벨기에 북부)의 디자이너 겸 판화 조각사였다. 콜레르트가 그린 판화 ‘최후의 심판’도 3층 구도로 되어 있어서 상층부가 천국이다. 상층부 중앙에 심판주 그리스도께서 구름과 무지개 같은 것 위에 걸터앉아 계시고, 성모와 구원 받은 성도들이 좌우에 옹위하고 있다. 중간층은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나팔을 부는 천사들이 묘사되어 있고, 하층부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자들과 부활하여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천국에 오르는 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하층부 우측(독자의 좌측)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무덤에서 천사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 상층부 천국에 오르는 모습이고, 하층부 좌측(독자의 우측)은 뿔난 마귀들에 붙들려 불붙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판화로 그렸다. 그리고 이 그림 밑에는 “그분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오실 것이다”(INDE VENTVRVS EST IVDICARE VIVOS ET MORTVOS)는 사도신경의 한 소절을 적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또 계시록의 저자는 천국에서 그리스도를 옹위한 구원받은 성도들이 받는 위로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받는 응보의 처참함을 보여준 후 14장 12절에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제자를 양육하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며, 고난을 당하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