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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16 10:29
1세기 교회질서26: 복음을 위한 고난(7)(딤후 2:22-26)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8  

1세기 교회질서26: 복음을 위한 고난(7)(딤후 2:22-26)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미켈란젤로보다 8살 연하인 라파엘로 산치오(1483-1520, Raffaello Sanzio)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으로 교황의 개인 도서실 ‘서명의 방’에 그린 벽화 가운데 ‘아테네 학당’(1509-10년, 바티칸 미술관)이란 프레스코화가 있다. 원근법이 뛰어난 이 ‘아테네 학당’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1508-12년)보다 1년 늦은 1509년에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 그림 속에는 54명의 역사적 인물들이 잘 묘사되었는데,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예술의 신 아폴론과 지혜의 신 아테나가 벽면 높은 곳에서 이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들은 이 영웅호걸들에게 능력을 덧입히고 영감을 주며 격려하고 위로한 신들이다. ‘아테네 학당’에 묘사된 인물들에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크세노폰,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디오게네스, 제노, 에피쿠로스, 플로티노스와 같은 철학자들, 아르키메데스와 유클리드, 프톨레마이오스와 같은 수학자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줄리아노 다 상갈로와 같은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차라투스트라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되었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의 나이는 27세 무렵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은 문예부흥시대의 산물이란 점에서 보면, 그가 인문학이 부활하는 새천년시대를 내다본 것이 분명해 보인다. 라파엘로가 가톨릭의 성지인 바티칸 궁전의 교황의 개인 도서실, 그것도 ‘서명의 방’ 벽면에 이교의 신들과 이교도들로 가득 메운 그림을 그린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라파엘로는 이 그림을 통해서 가톨릭신학과 인문학의 조화, 신중심신학과 인간중심학문의 조화를 말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근원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한다는 메시지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이 ‘근원(뿌리)으로부터(Ad Fontes)’ 곧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문예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종교개혁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고, 교황과 사제들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던 개인들에게 직접(대사제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또 라틴어 성경과 라틴어 미사만 허용되던 시대에 모국어로 성경을 읽거나 특히 예배 중에 모국어로 읽어 주는 성경말씀들을 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 정중앙에 플라톤과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묘사하였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논쟁하는 모습이다. 라파엘로는 플라톤의 얼굴을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그렸다. 플라톤은 대화록 <티마이오스>(Timaios)를 허리에 끼고 오른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것은 이데아 세계 곧 보이지 않는, 하늘의, 참된, 영원한, 빛의, 진리의 세계를 암시한다. 라파엘로는 또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을 자신의 제자 줄리아노 다 상갈로로 그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을 들고 오른손바닥을 땅으로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보이는, 땅의, 윤리적인, 현실적인, 현상세계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이로 보건데, 플라톤은 신약성경과 그리스도교로 상징되고, 구약성경과 유대교는 아리스토텔레스로 상징된다.

또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 정중앙 하단에 만물의 변화를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세속적 가치를 거부한 견유학자 디오게네스를 그렸다. 그리고 독자의 좌측에 금욕주의자 제노와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를, 우측에 기독교 신비주의와 유대교 신비주의에 영향을 끼친 신플라톤주의 창시자인 플로티노스를 그렸다.

라파엘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얼굴을 미켈란젤로로 그렸다. 사색에 잠긴 듯이 묘사된 헤라클레이토스는 우주만물의 변화와 진화를 강조한 철학자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영원성과 불변성을 논했다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거나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말로 변화의 중요성을 논하였다.

또 라파엘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아래에 세속적 가치를 거부한 반라의 고린도인 디오게네스를 그렸다. 그의 생활신조는 욕망을 작게 갖는 것(아스케시스),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것(아나이데이아), 자족하는 것(아우타르케이아)이었다. 온갖 재물과 명예 같은 것들은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여 쾌락을 멀리하고 간소한 생활을 추구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통속에서 개처럼 살면서도 일광욕을 즐겼고, 밝은 낮에도 의인을 찾는다며 등불을 들고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행위들은 모두 플라톤의 동굴처럼 고린도사회가 어둠과 무지에 갇혀있음을 질책한 것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가 약관의 나이에 페르시아원정군 대장이 된 알렉산더에게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서라고 말한 것을 폭력과 전쟁으로 세상을 어둡게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라파엘로는 예술의 신 아폴론 아래쪽에 스토아철학의 창시자인 제노와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를 그렸다. 제노는 이성을 중시하여 자기부정의 금욕주의를 통한 초연한 경지(아파테이아)를 추구하였고, 에피쿠로스는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된 쾌락(아타락시아)을 추구하였다.

스토아철학은 자연을 세계의 정신으로 보는 범신론이자, 제우스까지도 운명에 지배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당대의 사람들은 예언을 받거나 점을 쳐서 운명을 알고자 했고, 불운을 행운으로 바꾸고자 했다. 또 자기부정의 금욕주의를 추구하면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에 무감정 무관심으로 대처했고, 욕심을 버려 마음의 평정을 얻고자 했다. 반면에 에피쿠로스 철학은 영혼불멸과 사후보응을 부정하였다. 신의 존재는 인정하였으나 물질 또한 영원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신의 창조와 통치와 섭리를 모두 부정하였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묘사된 철학자들과 그 사상을 간략히 요약해 본 이유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22절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한 말씀의 뜻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까싶어서였다. 하늘의 것, 영원한 것, 참된 진리와 빛을 추구한 플라톤, 냉철한 이성으로 자기부정의 금욕주의 삶을 살았던 제노, 개처럼 살면서도 자족하며 벌건 대낮에 등불을 켜들고 의인을 찾아다녔던 디오게네스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충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무엇보다도 디모데에게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고 했는데, “함께”라는 말에 방점이 있다. 함께하면 그 능력이 배가되고 오래 지속되지만, 혼자하면 힘이 약하고 그나마도 금방 빠져버린다.

또 바울은 23절에서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며 재차 권고했고, 24-25절에서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하라.”고 하였다. 이는 권면을 받는 자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얻어야 25-26절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하실까 함이라.”고 말씀에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