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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13 14:32
1세기 교회질서24: 복음을 위한 고난(5)(딤후 2:14-19)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26  

1세기 교회질서24: 복음을 위한 고난(5)(딤후 2:14-19)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14절 전반, “너는 그들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는 그들에게 디모데후서 2장 2-13절에서 언급한 것들을 늘 가르쳐 그들이 기억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 내용은 네 가지로써 첫째, 주께 받아 전한 복음의 내용들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라는 것(2절); 둘째,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3절); 셋째, 주께 받아서 전한 복음의 내용들 곧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라는 것, 그러면 주님께서 범사에 깨달음을 주신다는 것(7절); 넷째,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것(8절), 그 끝이 “구원”과 “영원한 영광”과 영생과 “왕 노릇”이기 때문이라는 것(10-12절), 또 주님은 믿으실만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보상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13절).

14절 후반,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는 사소한 일에 말로 논쟁을 일으켜 서로 감정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전혀 유익하지 못한 언쟁을 하지 말도록 권면하라는 말씀이다.

우리 사회가 정치사회적 이슈들이나 윤리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그 입장이나 견해가 대체로 반반으로 나뉘어져있다. 양진영 모두 사실(fact)에 근거하기보다는 자기편 진영논리에 빠진 경우가 많아서 토론이나 다툼이 사실상 무익하다. 따라서 교우들끼리의 사소한 말다툼은 입장이나 견해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난하거나 경멸하거나 심지어 감정싸움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교우들끼리 자기 견해나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수용하도록 강요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의 절반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드리고 또 그 같은 생각이나 판단이, 싫겠지만,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가능하다는 것, 사회적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피차 상대방의 견해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릴수록 나의 설득력은 작아지게 되고, 상대방을 존중할수록 나의 설득력은 더 커진다. 설득은 상호신뢰에서 만들어지지 지식의 유무나 사실여부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15절 전반,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에서 “진리의 말씀”은 바울이 주님께 배워서 전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말한다. 아직 신약성경이 없었던 때인 만큼 “진리의 말씀”은 구약성경에 대한 해석을 뜻한다. 구약성경은, 유대교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실천의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필요가 없게 된다. 구약성경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해야 하는 상황은 첫째, 유대교적 그리스도교를 주장하는 에비온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라는 것이고; 둘째, 주님께 배워서 전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이고 기준이며 기초이고 잣대라는 사실을 알라는 것이며; 셋째,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구약성경을 유대교인들처럼 문자적으로 그대로 실천한 것이 아니고, 장차올 더 좋은 것들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해석한 것임을 알라는 것이고; 넷째, 비록 그리스도교가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는 있지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전혀 다른 믿음체계임을 알라는 것이며; 다섯째, 그러므로 에비온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주장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성령, 다른 하나님인 것을 알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단일 하나님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고, 유대민족만의 종교가 아니라 열방민족의 종교이다. 그리스도교 복음은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성인이나 유아나 차별이 없고, 또 토라율법의 준수나 할례를 받음으로써 받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또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으로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며, 이 신앙을 고백하고, 침례를 받음으로써 이뤄진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일컬어 “진리의 말씀”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말한 것은 에비온파처럼 강하게 들이대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이지 말고 사도의 가르침에 굳게 서라고 권면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것이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는” 자가 되는 것이다(15절). 그렇게 하는 것이 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는 것이다.”(16절) 다른 예수와 다른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교 경건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악성 종양”을 퍼뜨리는 자들이다(17).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그 같은 자들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다”고 하였다(17절). 후메내오(Hymenaeus)는 결혼의 신 ‘히멘’에서 따온 이름이고, 빌레도(Philetus)는 ‘사랑받는’ 또는 ‘사랑할 만한’이란 뜻이다. 이들은 유대교 율법적 영지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였다. 또 자신들이 유일하게 신약성경으로 인정한 아람어 마태복음 27장 52-53절,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를 근거로 미래부활을 부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18-19절에서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고 하였다.

유대교는 교리종교가 아니라, 실천종교이기 때문에 신앙고백서가 없다. 가장 널리 수용되는 유대교 신앙은 중세시대 랍비 마이모니데스가 정리한 열 세 개의 믿음의 원리들이다. 1)하나님은 존재하신다. 2)하나님은 한분이시고 유일하시다. 3)하나님은 육체가 없으시다. 4)하나님은 영원하시다. 5)기도는 오직 하나님께 직통으로 연결되고 다른 누구에게도 연결되지 않는다. 이 5번은 삼위일체신앙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다. 6)예언자들의 말씀은 진실하다. 7)모세의 예언들은 진실하다. 8)성문 토라 즉 모세오경과 구전 토라 즉 탈무드와 기타 문서들에 포함된 율법들이 모세에게 주어졌다. 이 8번과 관련해서 그리스도교가 유대교나 가톨릭교와 다른 점은 구전과 외경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참다운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유대교적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신약성경에 기초를 둬야 한다. 9)성문 토라와 구전 토라 이외에 다른 토라는 없다. 이는 또한 신약성경을 부정하기 위한 말이다. 10)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아신다. 11)하나님은 선한 사람들을 보상하시고, 악한 사람들을 벌하신다. 12)메시아는 오실 것이다. 이 12번은 2천 년 전에 이미 오신 메시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13)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 부활신앙은 헬라시대에 추가된 믿음이다. 죽은 자의 부활은 메시아사상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언제 누가 부활할지에 대해서는 유대교인들의 견해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