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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9 09:55
1세기 교회질서23: 복음을 위한 고난(4)(딤후 2:1-13)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  

1세기 교회질서23: 복음을 위한 고난(4)(딤후 2:1-13)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하고”

바울은 2장 1절에서 “강하라”고 권면하였다 이 말에 쓰인 헬라어는 ‘엔뒤나모우’(endynamou)로써 ‘~안에’라는 뜻을 가진 전치사 ‘엔’(en)과 ‘강하게 하다’ 또는 ‘능력을 불어넣다’는 뜻을 가진 동사 ‘뒤나모오’(dynamoõ)의 합성어이다. ‘엔뒤나모우’는 2인칭 수동태 명령형이기 때문에 ‘너는 강하게 되어져라’는 의미가 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한 강함은 수동태이기 때문에 디모데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강함이나 타고난 강함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어떤 강함이나 외부의 힘으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강함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강함은 어디에서 오고 또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첫째, 이 강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1절) 만들어진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지혜와 용기와 용맹의 여신 아테나의 격려와 위로와 능력의 덧입힘을 인해서 곧 아테나의 은혜 가운데서 헤라클레스는 타고난 능력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12가지 과업들을 성공리에 완수했고 또 타고난 불운과 역경을 딛고 일어선 불세출의 영웅이 될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최고신의 아들로서 타고난 괴력의 소유자였으나 그에게 닥친 불운한 운명, 곧 그에게 주어진 12가지 숙명적 과업들은 그의 괴력을 압도하는 것들이었다. 최고신의 아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괴력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과업들은 헤라클레스가 자신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십자가들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종국에는 모든 신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지혜와 용기와 용맹의 여신 아테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무거운 운명의 십자가들을 져냈기 때문이다. 신들에 대한 겸손한 믿음과 불굴의 인내가 최후에는 그에게 신들의 대전에 오르는 영광을 보상으로 받게 했다는 점이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항상 성령님의 충만하심 속에 머물기 위해서 시시때때로 기도하셨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셨다고 말해준다. 그분에게 주어진 고난의 십자가가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신 후에는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승리자(Ic Xc Nika)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인 오뒤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이자 트로이 목마의 고안자였다. 트로이전투를 승리로 장식한 영웅 오뒤세우스는, 그러나, 고향에 당도하기까지 운명적인 유랑 곧 20년간 파란만장한 방랑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뒤세우스는 아테나의 총애를 받던 영웅 중의 한명이었다. 아테나는 그에게 지혜로운 호의를 베푸는데,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20년 동안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절제된 도움을 준다. 여기서 ‘절제된 도움’이란 그리스도교의 신학으로 말하자면 성령님의 영감에 해당된다. 영감은 마치 고삐와 같아서 성령님이 고삐를 잡고 인생의 긴 여정 속에서 우리를 본향인 하늘나라로 인도하신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가 영웅들에게 능력을 덧입히기도 하였다. 헤라클레스에게는 스튐팔로스 숲의 새를 쫓을 수 있도록 청동으로 된 딱따기를 만들어주었고, 페르세우스에게는 메두사의 목을 벨 수 있도록 칼과 방패를 주었으며, 벨레로폰에게는 하늘을 나는 페가수스를 잡아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칠 수 있도록 황금고삐를 주었다. 이처럼 그리스 신화에서는 영웅들이 신의 은혜를 입음으로써 그 은혜 가운데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조상대대로 수백 년 이어져온 노예의 사슬을 끊어내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울 가나안땅을 향해서 역경의 길을 떠난 히브리인들을 인도한 것은 구름기둥이었다. 여기서 여신 아테나로 의인화된 지혜나 하나님의 쉐키나였던 구름기둥은 모두 삼위일체의 성령 하나님의 그림자요 모형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또 성령님의 인도 위로 격려 능력 덧입힘 속에서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한다고 했고, 디모데후서 1장 8절에서 디모데에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다. 또 골로새서 1장 11절에서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셨다”고 하였고,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강해질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린 다윗이 물매와 돌 다섯 개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삼상 17:45) 나아갔기 때문이고,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행 3:6) “일어서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첫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가운데서” 만들어지는 강함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은 이밖에도 그리스도인들이 강해질 수 있는 이유들을 10-12절에서 덧붙이고 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 때문에 강해질 수 있다(10절).

셋째,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 영원한 영광” 때문에 강해질 수 있다(10절).

넷째,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다(11절).

다섯째, 만주의 주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것”이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다(12절).

그리고 여기서 강함은 4절의 “병사로 복무하는 자,” 5절의 “경기하는 자,” 6절의 “수고하는 농부,” 8절의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9절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당한 바울에 연결된다. 병사나 경기하는 자나 농부나 예수 그리스도님이나 사도 바울도 모두 고된 훈련과 갖은 역경과 수고를 통해서 단련되고 숙련되어 대가를 기대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되었거나 된다는 뜻이다(4-6절).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몇 가지 당부를 금치 않았다.

첫째, 주께 받아 전한 복음의 내용들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2절).

둘째,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이었다(3절).

셋째, 주께 받아서 전한 복음의 내용들 곧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주님께서 범사에 깨달음을 주신다는 것이었다(7절).

넷째,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것이었다(8절). 그 끝이 “구원”과 “영원한 영광”과 영생과 “왕 노릇”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0-12절). 또 주님은 믿으실만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반드시 보상하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