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CCS 홈페이지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
main_5.GIF main_6.GIF main_7.GIF main_8.GIF

 

 

 

 

 

 

 

 
작성일 : 19-10-26 06:54
1세기 교회질서22: 복음을 위한 고난(3)(딤후 1:15-18)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4  

1세기 교회질서22: 복음을 위한 고난(3)(딤후 1:15-18)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15절에서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다.”고 하였다.

주후 64년 7월 18일에 로마의 대경기장 상가에서 발화된 불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크게 번져 9일 동안 전체 로마시 가운데 3분의 1이상을 잿더미로 만든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었다. 항간에는 네로가 방화범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이에 네로는 자신에게 집중된 화살을 피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방화범으로 몰아세워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체포된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거나 짐승 가죽을 뒤집어 쓴 채 사나운 짐승에 물려 죽었다. 바로 이 시기에 바울은 로마와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소아시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우두머리로 지목받았고, 드로아 가보의 집에서 갑자기 체포되어 로마의 지하 감방(Mamertine Prison)에 갇히게 되었으며, 네로가 자살하기 일 년 전쯤인 67년경에 처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절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다.”는 말씀은 드로아에서 긴급히 체포될 당시의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바울은 58년 초여름부터 60년 초가을까지 2년 조금 넘게 가이사랴에 주둔한 유대총독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로마로 이감되어 거기서도 62년 가을까지 대략 2년 정도 셋집에 연금되어 있다가 풀려난바가 있다. 그리고 바울이 드로아에서 다시 체포된 때는 64년 초가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에서 풀려나 활동을 시작한 지 만 2년 만에 또다시 로마로 끌려가게 된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때, 마치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실 때 제자들이 줄행랑을 쳤던 것처럼, 바울이 드로아 가보의 집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체포될 당시 바울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바울을 피신시키지 않고 자신들이 먼저 줄행랑을 쳤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때의 기억이 생생했던 바울은 15절에서 “디모데 너도 알다시피 피겔로(Phygelus)와 헤르모게네(Hermogenes)를 비롯해서 아시아 사람들이 다 나에게서 떠나가 버렸다.”고 서운함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흥미로운 것은 ‘오네시보로’(Onesiphoros)가 문자적으로 ‘유익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인 반면, ‘부겔로’(Phygelus)는 ‘도망자’(Fugitive)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도망하다’는 뜻을 갖는 헬라어 동사 ‘퓨고’(pheugo)와 어근이 갖기 때문이다. 또 ‘헤르모게네’(Hermogenes)는 ‘헤르메스한테서 태어난 자’란 뜻을 갖는다. 헤르메스는 전령의 신으로써 날개 달린 모자((Petasos)를 쓰고 있고, 날개 달린 샌들(Talaria)을 신고 있어서 새처럼 잽싸게 날아다닐 수 있다. 이름대로 오네시보로는 바울에게 많은 유익을 가져왔지만, 이름대로 부겔로와 헤르모게네는 바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바울을 버리고 자기들만 잽싸게 도망하였다.

‘오네시보로’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두 번, 디모데후서에서만 나타나 있다(딤후 1:16, 4:19). 외경 <바울행전>을 보면, 오네시보로가 이고니온의 주민으로 언급되어 있고, 이고니온으로 오고 있는 바울을 마중 나간 이야기가 나온다. 이때 오네시보로가 본 바울이 “작은 체구, 맞닿은 양미간, 코는 조금 길고, 대머리에 다리는 휘었고, 단단한 체격에 은혜가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의 지하 감옥 ‘마메르티노’(Mamertinum)에서 디모데후서를 써서 에베소교회의 감독 디모데에게 보낼 당시에는 오네시보로와 그의 가족이 에베소에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드로아 가보(Carpus at Troas)의 집에서 체포되었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디모데후서 4장 13절에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한 말씀 때문이다. 바울은 갑자기 체포되었기 때문에 소지품을 미처 챙기지 못하였고, 그 시기는 아직 항해가 가능한 64년 초가을이었을 것이며,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쓴 디모데후서가 디모데에게 전달된 시기는 이듬해 65년 초여름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당시에는 겨울항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디모데가 바울의 소지품을 챙겨 로마에 갇힌 바울을 찾았을 때쯤은 이미 바울이 갇힌 지 1년쯤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소아시아의 드로아와 마케도니아의 빌립보를 거점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오고갔다. 드로아에는 누가의 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가보의 집이 있었다. 디모데후서 4장 13절은 바울이 가보의 집에 머물렀다는 것을 말해준다. 빌립보에서는 두아디라와 빌립보를 오가며 자주색 옷감장사를 하는 루디아의 집에 머무르곤 하였다.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전설에 의하면 오네시보로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잔인하게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네시보로는 다르다넬스해협 인근 드로아에서 야생마에게 묶여 사망할 때까지 난폭하게 끌려 다녔다. 바울이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간 곳에서 오네시보로도 체포되어 장렬하게 순교한 것이다.

디모데후서 1장 15-18절에서 바울은 오네시보로 개인에게 문안을 보내지 않고 오네시보로 집에 보내고 있고, “주님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빕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그에게 자비를 내리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원하였다. 또 바울은 오네시보로와 관련해서 과거시제를 사용하여 “그는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로마에 와서는 나를 찾느라고 굉장히 애쓴 끝에 나를 만났다. 내가 에베소에 있을 때에 그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였는지 너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고 하였다.

바울이 언급한 “오네시보로의 집”이 오네시보로가 이미 사망했으므로 그 유족들을 말한 것인지, 아니면 오네시보로를 포함한 가족 전체의 헌신과 희생 때문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중요한 것은 오네시보로가 소아시아 교회들의 부겔로와 헤르모게네 및 기타 그리스도인들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는 점이다.

첫째, 오네시보로는 바울일행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었을 때에도 매우 헌신적이었지만, 특히 바울이 갑자기 체포되어 끌려갔을 때, 금전적 손실이나 여행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을 찾아 나셨고 로마에까지 갔다.

둘째, 16절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씀은 오네시보로가 남의 시선이나 비난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뜻이고, 죄수의 친구란 점을 창피스럽게 생각하거나 바울을 가까이하다가 자신도 혹시 공범으로 몰려 체포되지 않을까하여 두려워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오히려 오네시보로는 바울이 어디로 끌려갔는지를 알아내려고 최선을 다했고, 로마로 끌려간 것을 알고서는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그 먼 로마에까지 달려갔으며, 또 바울이 어디에 수감됐는지를 알아내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고, 기어코 바울이 수감된 곳을 알아내어 자주 면회하여 격려하였으며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주었다.

셋째, 오네시보로의 헌신은 그의 가족의 희생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을 빌었고, 주의 재림의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