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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4 06:50
1세기 교회질서21: 복음을 위한 고난(2)(딤후 1:11-14)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58  

1세기 교회질서21: 복음을 위한 고난(2)(딤후 1:11-14)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8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위하여 자기처럼 고난에 동참하되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고난에 동참하라고 명하였다. 그 이유를 바울은 9-11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행실을 보지 않으시고 만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당신의 계획과 은혜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름으로 불러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폐하셨으며,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바울은 11-1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복음을 위하여” 여러 직분을 주셨는데,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디모데전서 1장 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다.”는 말씀에 연결된다.

12절에서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이라고 한 것은 첫째, 말할 수 없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이김을 주셨고”(고전 15:57), 세상을 이기는 믿음(요일 5:4)의 끈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셨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난을 당하여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도 않은 것은 자신이 믿어왔던 분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고, 그 누구도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롬 8:39)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이라고 한 것은 둘째, 주님께서 자기에게 맡기신 복음전파의 직무를 자기가 완수하는 “그 날까지 그분이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의 이 말씀은 그리스신화를 잘 알고 있던 당대의 헬라인들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해되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인들은 인간에게 귀감이 되는 영웅들을 묘사할 때마다 그들 곁에 조력자인 지혜와 용기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함께 했다는 것을 말하곤 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헤라클레스였다. 헤라클레스는 헤라로부터 부과된 숙명적인 과업들을 수행하느라 엄청난 고난을 감내했는데, 늘 아테나가 그의 곁에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이 점에 있어서는 이아손과 페르세우스와 같은 다른 영웅들도 마찬가지였다. 아테나는 그들에게 능력으로 덧입혔고, 그들을 충성되게 여겼으며, 그들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임무를 수행하느라 고난을 겪을 때마다 그들 곁에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테나는 헤라클레스가 조국 테베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을 때 그의 곁에서 함께 싸웠고, 스튐팔로스 숲의 새를 쫓을 때는 청동으로 된 딱따기를 만들어주었으며, 케르베로스를 사로잡고자할 때는 음부로 가는 길을 안내하였다. 또 페르세우스에게는 방패와 칼을 주었으며, 벨레로폰에게는 황금고삐를 주어 페가수스를 타고 괴물 키마이라를 물리치게 하였다.

반면에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그 같은 이야기들을 알고 있었어도 사람들의 생각에만 존재하는 가짜 신들을 결코 의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자신들을 능하게 하시고 충성되게 여겨 직분을 맡기신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바울은 13-14절에서 자신이 디모데에게 전하여 준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기를 원하였는데, 두 가지 수단을 언급하였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이란 수단으로써 하라고 명하였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라”에서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주님께 배워서 가르치고 전한 복음과 전통을 말한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대항하여 싸운 유대인 율법적 영지주의 에비온파가 전한 “다른 예수” 또는 “다른 복음”과 아주 상반된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일컬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였고, 이것을 “지키라”고 명하였다. 8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을 위하여 자기처럼 “고난을 받으라.”고 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하라고 명한바 있다.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받고, 아름다운 복음을 전파할 때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내게 들은 바 바른 말” 곧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올바른 복음을 표준삼아 가르치라고 명하였다. 이로보건데 오늘날 우리가 전파해야할 복음은 1세기 그리스도교의 복음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가르치고 기록으로 전한 신약성경을 표준삼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고대 근동의 종교와 신화들은 유대교와 구약성경이라는 한층 높은 차원의 영성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 몽학교사였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대교와 구약성경 및 고대 그리스 로마 종교들과 신화들은 그리스도교와 신약성경이라는 한층 더 높은 차원의 영성이 가능하도록 도움을 준 몽학교사였다고 볼 수 있다(갈 3:24). 그것은 마치 한국 그리스도교가 무교와 도교와 불교와 유교라는 밑거름이 풍성한 토양위에서 성장한 것과 같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되기 이전의 종교들은 그리스도교 성장을 위한 밑거름 곧 질소 인산 칼리가 섞인 혼합비료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 이전 종교들이나 신화들은 그 계시의 빛이 별빛과 달빛 정도에 불과하였다. 고대 근동세계와 고대 그리스 로마세계의 종교들과 신화들의 계시의 빛이 별빛에 불과했다면, 유대교의 계시의 빛은 달빛 정도였다. 달빛계시는 별빛계시보다 한층 뛰어나기 때문에 달빛계시아래 있던 사람에게는 별빛계시가 필요 없다. 또 햇빛계시는 달빛계시보다 한층 더 뛰어나기 때문에 햇빛계시아래 있는 사람에게는 달빛계시가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이전 종교들이나 신화들이 필요치 않았다. 그것은 마치 최병헌(1858-1927) 목사가 <셩산유람긔>(聖山遊覽記)에서 지적하였듯이, 초식을 하던 사람이 옥식을 만나 후에는 더 이상 초식을 찾지 않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백성이 기름지고 맛난 음식(膏粮玉食)인 신약성경에 기초한 그리스도교를 만나지 못하여 거친 음식인 구약성경에 기초한 유대교를 믿었고, 풀죽(疏食菜粥)인 유교 불교 도교 무교 및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딤전 4:7) 믿었을 뿐이다.

이것은 토착화나 혼합화하고는 다르다. 한국의 종교들이 그리스도 복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발전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믿음에는 무용한 것과 같다. 그대 근동의 종교들과 신화들이 유대교 발전에 얼마간 영향을 주었지만 유대교 신앙에는 무용한 것과 같다. 같은 점에서 그리스 로마의 종교들이나 신화들이 그리스도교 복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에는 전혀 가치가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교 신앙에 얼마간 영향을 끼쳤을 타종교문화와 신화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훨씬 더 높은 차원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영성과 믿음과 능력을 확인하고 그들의 순수성과 본래성과 능력을 회복하자는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