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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4 06:29
1세기 교회질서20: 복음을 위한 고난(1)(딤후 1:1-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5  

1세기 교회질서20: 복음을 위한 고난(1)(딤후 1:1-10)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

유대인들의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상들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 고백은 살아계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 조상적부터 자자손손 대대로 자기 민족과 함께 하셨다는 신앙고백이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은 디모데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이”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먼저 있었다고 말하면서 디모데의 믿음이 3대에 걸쳐있음을 강조하였다. 대를 잇는 믿음은 가정에서의 자녀신앙교육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로이스와 유니게의 믿음을 귀하게 여겼다. 오늘날까지 그녀들이 가정에서의 자녀신앙교육의 훌륭한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 까닭이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유대인 여성들이었다. 그들이 바울을 처음 만난 것은 40년대 후반기에 이뤄진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선교여행 때였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부녀로서 기도회 시간마다 루가오니아 지역 루스드라의 유대교 회당에 출입하였을 것이다. 루스드라는 오늘날 ‘하툰사라이’라 불리는 터키 중남부 지역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로써 대중교통수단이 전무할 정도로 낙후된 곳이다. 그러나 바울 당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소아시아에 세워진 리디아왕국의 수도 사르디스(사데)에서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Susa, Elam)로 이어지는 대로가 인근에 있었다. 또 이곳은 반자치(semiautonomy)가 허용된 로마시민들의 정착지였다. 따라서 루스드라는 자체 주화들을 발행할 수 있었고, 발굴된 주후 1-2세기의 주화들에는 “율리우스의 정착지” 또는 “로마시민의 정착지”라는 말이 새겨져있다. 루스드라뿐만 아니라, 이고니온과 더베가 포함된 루가오니아와 안디옥이 포함된 비시디아 지역 전체가 주후 1-2세기경에 로마시민들, 특히 로마군단에서 제대한 군인들의 정착지였다.

비시디아와 루가오니아 지역에 거주한 유대인들은 대부분 노예들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주전 63년 폼페이가 이끄는 로마군단에 의해서 유럽과 이곳 아나톨리아 땅으로 끌려왔다. 꽤 많은 유대인들이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및 이탈리아에까지 고루 분산되었고, 점차 동유럽과 스페인이 포함된 서유럽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유대인들의 유럽지역 분산은 근동이나 아랍과 아프리카 지역으로의 분산에 비해서 오히려 늦은 시기에 이뤄졌다.

“거짓이 없는 믿음”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주전 722년, 605년, 597년, 586년에 각각 지금의 이라크, 이란지역으로 끌려갔고, 주전 312년에 프톨레미 라구스에 의해서 이집트로 끌려갔기 때문이다.

바울시대에는 이미 유대인들이 지중해 연안 모든 나라들에 흩어져 살았고, 기도회 장소인 유대교 회당이 10가구 이상 거주하는 곳에는 반드시 조직되어 있었다.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는 바로 이들 유대교 회당을 공략하는 것에서 출발되었다. 이 같은 선교전략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유대교 회당 기도회에 유대인들만 참석한 것이 아니라, 많은 수의 헬라인들 특히 유력한 헬라인들과 귀분인들이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그리스도교가 구약성경의 예언 성취와 유대인들의 희망 성취와 깊이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바울과 바나바의 복음전도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교 복음을 수용하기 힘든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반발심이 뜨거웠고, 헬라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구원을 위해서 만세전부터 감춰두셨던 비밀(신비)이 드러났기 때문에 뜨거웠다. 이 반응의 결과는 상당수의 헬라인 ‘하나님 경외자’(유대교 절반 개종자)들에게 자기들에게 전해진 복음을 수용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반면에 교인들을 잃게 된 유대인들에게는 바울에 대한 증오와 박해로 발전되었다. 율법을 문자적으로 실천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당연히 돌로 쳐 죽여야 할 이단의 괴수로 여겨졌을 것이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바울과 바나바가 전한 복음을 받아드린 몇 안 되는 유대인들이었다. 로이스의 딸이자 디모데의 모친 유니게의 남편은 헬라인이었다. 그가 유대교 회당기도회에 출입한 ‘하나님 경외자’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이 당시 생존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 로이스와 유니게가 바울과 바나바의 제1차 선교여행 때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는 점뿐이다. 바울은 이곳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로부터 돌에 맞아 기절했고, 유대인들은 바울이 죽은 것으로 생각하여 바울을 성문 밖에 내다버렸다. 돌에 맞아 망신창이가 된 바울을 극진히 간호하고 돌본 성도들이 로이스와 유니게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랬을 가능성을 전제로 판단해 볼 때, 그때의 일로 바울과 디모데 가족은 각별한 사이가 되었을 것이고, 바울과 바나바가 그 집에서 보호를 받는 동안 그들은 어린 디모데를 장차 신실한 주의 일꾼이 될 재목으로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또 로이스와 유니게는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한 많은 시간들로 인해서 그리스도교 복음에 대한 확신이 날로 커져갔을 것이다. 디모데의 부친이 그리스도교에 개종을 했었는지, 혹은 그 당시 생존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들이 사랑하는 어린 디모데를 바울과 함께 사지로 가게 하여 주의 일꾼이 되게 한만큼 그들은 매우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울이 몇 번이나 이곳 루스드라 교회를 방문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로이스와 유니게의 집은 드로아 가보의 집처럼, 빌립보 루디아의 집처럼, 고린도 그리스보의 집처럼 바울 일행이 지친 몸을 뉘이고 씻을 물과 먹을 양식을 공급받았던 곳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정황 속에서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된 것임을 밝혔고(1절), 디모데를 일컬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불렀다(2절). 디모데는 적대자들로 인해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디모데에게 바울은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일 듯”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랐다(6절). 따라서 바울은 7-8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였다. 여기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또는 나처럼 고난에 동참하라는 뜻이다(join with me in suffering for the gospel). 그러나 그 고난은 값진 것이요,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는 고난에 동참하되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또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바울은 9-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시고, 둘째, 거룩한 부름으로 불러주신 분이시다. 이 부르심은 첫째, 우리의 행실을 보고 결정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이며, 둘째, 만세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것이다. 그 사실이 셋째,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밝히 드러났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시고 폐하셨으며,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다. 바울은 이것이 바로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또는 나처럼 고난에 동참해야하는 이유라고 설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