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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17 15:51
1세기 교회질서18: 믿음의 선한 싸움(18)(딤전 6:3-10)
 글쓴이 : 조동호
조회 : 47  

1세기 교회질서18: 믿음의 선한 싸움(18)(딤전 6:3-10)

자족의 경건

디모데전서 6장 3-10절에서 바울은 경건에 관한 말씀을 주고 있다. 두 가지 경건을 말씀하였는데, 한 가지는 “이익의 방도”로써의 경건이고(godliness as a means to financial gain, 5절), 다른 것은 ‘자족으로써의 경건’(godliness with contentment, 6절)이다. 여기서 바울은 자족함이 없는 경건 즉 재정수입의 수단으로써의 경건을 경계하고 있다. 바울은 “이익의 방도” 또는 재정수입의 수단으로써의 경건을 “다른 교훈”으로, ‘자족으로써의 경건’을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으로 구별하고 있다. 9-10절에서 부자가 되려고 하면,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과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고, 심지어 믿음에서 떠나 근심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6-8절에서 자족하는 마음은 경건에 이익이 됨으로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권면하였다. 어떤 분이 이런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거지에서 백만장자에 이르기까지 자기 몫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천 명 중 한명도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세속이 정한 기준을 좇아 힘을 탕진하고 갖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그가 꿈꾸던 목적을 이루자마자 또 다른 것을 꿈꾼다. 이러한 시지포스의 노동은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 400만원을 버는 사람은 500만원을 벌기 위해 애쓰고, 연봉 5천만 원을 받는 사람은 6천만 원을 받기 위해 애쓴다. 오늘은 새 옷과 새 가구를, 내일은 오디오와 소파를 사야하고, 다음날은 자동차와 휴대폰을 새 걸로 바꿔야 하며, 그 다음에는 집을 넓은 평수로 옮겨야 하고 그러고 나서 또.... 그런 다음에는 과로로 인해 혹은 병을 얻어 죽는 것이다. 살아남는 자들도 저들과 똑같이 새로운 것을 사고 사들이는 생활을 계속하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깨닫지 못한 채로 죽음에 이른다.

1923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재벌들이 미국 시카고 에지워터 비치호텔에 모여 회합을 가졌다. 이 첫 모임이 있은 후 25년 뒤, 이들의 성공과 부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진 한 작가가 이들의 삶을 추적하여 1948년에 발표하였는데, 세계 최대 철강회사 사장이었던 찰스 스왑은 파산하여 빚더미에 눌려 살다가 죽었고, 세계 최대 전기회사 사장이었던 사무엘 인슐은 객사하였으며, 세계 최대 가스회사 사장이었던 하워드 홉슨은 정신병자가 되었고, 세계 최대 밀 회사 사장이었던 아더 커튼은 피살당하였으며, 뉴욕증권사 사장이었던 리처드 휘트니는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후 죽었고, 월가의 맥주회사 사장이었던 제시 리버모오는 자살하였으며, 세계 최대 전매회사 사장이었던 이반 크루거는 객사하였고, 국제은행의 은행장이었던 리온 프레이저는 자살하였으며, 내무장관이었던 앨버트 폴은 무직으로 살다 죽었다고 한다.

자발적 가난

알로이스 피어리스는 <아시아의 해방신학>이란 책에서 그리스도의 제자 됨의 영성은 가난한 사람이 되겠다는 신념과 가난한 사람들을 편들겠다는 신념이라고 하였다. 진정한 영성은 가난해지려는 싸움과 가난한 자를 위한 싸움이라고 하였다. 첫 번째 싸움은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려는 자신과의 싸움이고, 두 번째 싸움은 가난을 강요하는 자들과의 싸움이다. ‘종교사회주의’를 지향한 피어리스는 “가난은 가난으로 치유된다”고 말한 보프의 정신에 입각하여 자발적인 가난이야말로 기독교의 아가폐적 영성이라고 믿었다.

가난이 복이란 신념을 갖고 자발적으로 가난해진 사례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 수도자였다. 그는 부유한 포목상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무너진 내 교회를 다시 세우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를 사로잡았을 때 기사가 되려던 꿈을 버리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후 수도회를 만들어 청빈의 가치를 실천하였다.

미국에는 일체의 현대문명을 거부한 채,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24만여 명에 이르는 아미쉬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이들은 자동차, 전기, 전화기, TV, 라디오, 컴퓨터, 핸드폰 등을 일절 금하며, 마차를 타고, 말과 쟁기로 밭을 갈며, 패물착용을 금하고, 검정색이나 회색으로 소박한 옷차림을 한다. 또 외부의 공격과 폭력에 보복하지 않으며, 법적소송을 금한다. 아미쉬 그리스도인들은 “Jesus first, Others next, Yourself last” 곧 예수님을 가장 먼저, 상대방을 그 다음, 자기 자신을 맨 마지막에 놓기를 힘쓴다. 그것이 JOY 곧 기쁨이라고 믿는다.

법정 스님이 강조한 무소유도 ‘자발적 가난’이었다. 법정은 ‘자발적 가난’의 의미를 열심히 일해 부를 쌓고, 필요이상의 부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씀으로써 스스로 가난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E. F. 슈마허의 <자발적 가난>에 따르면, 자발적 가난은 창조적 가난이고, 자유를 얻기 위한 성스러운 가난이다. 가난에 대한 공포는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최악의 도덕적 질병이다. 버리면 얻을 수 있는 행복이 많은데도 쥔 것을 놓지 않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 “Less is more.” 즉 적은 것이 많은 것이다. 자발적 가난은 빈곤이 아니라 나눔이며, 소박하고 단순하게 살려는 신념이다. 자발적 가난은 돈에 얽매이지 않고, 돈을 탕진하지 않으며, 돈에 휘둘리지 않고, 자족하는 마음의 태도이다.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

최춘선 목사는 일제 말 동경 유학시절인 20대 때에 낮은 곳, 가난한 자들, 밑바닥 삶을 지향하면서 빈민운동을 했던 가가와 도요히코의 교회에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의 섭외부장으로서 김구 주석 밑에 있다가 종전 후인 30대 때에 김포에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당시 50대였던 김은석 목사와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활동하였다. 최춘선 목사는 김은석 목사의 성경메모에 수차례 언급되어 있다. 최춘선 목사는 지하철 통로에 서서 종종 이렇게 외쳤다. "예수 십자가는 생명의 젖줄기, 평화의 젖줄기, 그래서 십자가 젖줄기 하나, 교회 하나, 교단은 여러 개가 있을지라도 교회는 하나다!" 이 외침 ‘교회는 하나다!’는 그가 한때 김포 그리스도의 교회의 개척설립자요 진실한 목회자였음을 말해준다.

최춘선 목사는 5개 국어를 할 줄 알았고, 5남매를 목사와 교수 등으로 길러냈으며, 김포공항으로 들어가는 큰 길에서 인천 국도까지 수십만 평의 땅을 유산으로 받았던 엄청난 부자였다. 최춘선 목사는 유산으로 받은 땅을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믿고 실향민과 가난한 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3천 평을 자신의 몫으로 남겼다. 그러나 그마져도 하나님의 것이라며 등기를 하지 않았다. 그걸 알고 누군가 그 땅을 자기 앞으로 등기해 그마저도 다 빼앗겨 버렸지만 힘든 표정 한번 짓지 않고 찬송을 부르면서 6.25직후 거두기 시작한 수백 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서른 번도 넘게 이사를 다녔다. 최춘선 목사는 독립유공자였기 때문에 도장만 찍으면 연금과 자녀들 학비까지 받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신청을 거부하였다. 그 후 50살이 되는 1970년경부터 2001년 9월 8일 80세의 일기로 소천 하던 순간까지 남북통일이 되면 신겠다며 30년을 넘게 추우나 더우나 맨발로 다니며 전도하였고, 소천 하던 바로 그 날도 지하철에서 전도하던 중에 의자에 앉은 채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분의 유해는 지금 대전 현충원 제2애국지사 묘역에 모셔져 있다.

최춘선 목사는 이 땅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였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처럼 가장 큰 복을 누렸다. 그분이 남긴 어록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는 나의 힘이요... 예수 천당, 날마다 천당...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자비의 초대,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의 초대...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고, 무서운 사람이 없고, 보기 싫은 사람이 없고, 얼마나 감사한지요. 부러운 것, 부러운 사람이 없는 사람은 법률 없이 일등 부자예요. 미운 사람이 없는 사람은 세상의 일등 권세예요. 세상 왕들의 억만 배 권세예요... 말세에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믿는 자를 볼 수 있겠느냐, 진리는 고독해도 날로 담대합니다.”